벼조사를 위해서는 수분측정기, 전자저울, 홀태, 그리고 낫은 필수 도구이다.
이곳에 오기 전에 낫을 사기 위해 집 주변 철물점에 갔다. 두어 군데를 들렀는데도 도시에서 왼손잡이용 낫을 파는 곳은 거의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할 수 없이 오른손잡이 낫을 하나 샀다.
낫을 들고 논두렁을 걷는다. 표본조사를 위해서는 재배 면적에 따라 벼 포기를 베어야 한다. 워낙 낫질을 해본 지 오래이기도 하였고, 왼손잡이인 내가 오른손잡이 낫을 쓰는 것이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어색하였다. 며칠째 조심조심 낫질을 하니 이젠 제법 익숙해졌다. 그러나, 방심이 화를 불렀다. 순간, 손가락을 스치는 오싹한 전율이 머리끝까지 스몄다. 날카로운 날이 손가락 끝을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급히 차로 돌아와 휴지로 닦아내도 피는 쉽게 멈추지 않는다.
나는 낫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어릴 적, 어설프게 어른 흉내를 내며 낫으로 풀을 베다가 자칫 손가락을 잘릴 뻔한 적이 있었다. 손가락 끝을 씀벅 스치던 그 섬찟한 느낌은 내 뇌리에 지금까지도 강렬한 기억으로 각인되어 있다. 아직도 오른손 검지 끝마디에 남아있는 상처를 볼 때면, 그 오싹한 기억이 되살아나 몸서리를 치곤 한다. 반백년이 지나도록 절대 마주하고 싶지 않던 일이 오늘 또 터진 것이다.
계약자 어르신이 달려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본다. 나는 씩 웃으며,
"왼손잡이가 오른 낫을 쓰다 보니 서툴러서 사고를 쳤네요" 했다. 그 말을 들은 어르신이 당신 차에 가더니, 쓰시던 낫을 가져와 선뜻 내게 건넨다. 당신도 왼손잡이라서 왼낫을 쓴다며, 집에 몇 개 더 있으니 가지라 하신다. 두어 번 사양하다가 염치없이 넙죽 낫을 받았다. 어르신의 따뜻한 마음을 받았다.
어르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