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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운전

by 윤기환


오늘도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계약자의 농지를 찾아간다.

간선도로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도로가 좁아지면서,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논길로 이어진다. 자칫하면 바퀴가 빠져 논배미 아래로 굴러 떨어질 것 같은 마음에 조심스레 차를 몬다. 어쩌다 길을 잘못 들거나, 장애물이 있어 후진으로 좁은 논길을 빠져나올 때면 더욱 곤혹스럽다. 식은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긴장이 된다.


나는 어언 30년이 넘도록 운전을 했다. 그동안 여러 대의 차를 바꿔 타며 전국 각지를 몰고 다녔고, 2년 동안 미국 유학생활을 하면서는 가족과 함께 북중미 각지를 부지런히 돌아다녔었다. 물론 무사고 운전이었다. 그만큼 나는 운전에는 자신이 있었고, '베스트 드라이버'라고 자부하며 살았다.

적어도 손해평가 업무를 시작하기 전 까지는.....


농작물 손해평가를 하기 위해서는 울퉁불퉁한 산길과 꼬부랑 논밭길을 무시로 돌아다닐 수밖에 없다. 과수원 착과수와 낙과수 조사, 고추 피해조사 때도 그랬다. 가끔씩은 내비게이션으로도 확인이 되지 않는 길이 있어 목적지를 찾는데 애를 먹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대부분의 농로는 경지정리가 잘되어 있어 다행이지만, 때로 차 한 대 겨우 다닐 정도로 좁다란 길이 나타날 때면 운전하는데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어제는 동료 평가사가 몰던 차가 농로에 빠져 견인차를 부르는 작은 사고도 있었다. 이렇듯 손해평가사의 업무는 운전과 필수불가결한 끈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언제나 안전이 최우선이다.



이 업무가 아니더라도,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운전은 날로 조심스럽다. 아무리 능숙한 운전자라도 자만해서는 안 되는 것이 운전이다. 부주의는 곧 큰 사고와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초보의 마음으로 논두렁 길을 따라 조심조심 차를 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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