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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환 Apr 03. 2024

라스베이거스

MOAB(모압)을 떠난 지 여덟 시간가량을 달려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했다. 갑자기 늘어난 차량들이 고가도로를 따라 빌딩 숲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 행렬을 좇아 메인도로에 들어서니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행렬이 눈에 띈다. 한낮에는 사람들이 뜸할 법도 한데, 제법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보인다. 여덟 시간 만에 사람 사는 모습을 다시 본다. 무척이나 오랜만인 듯 사람들이 반갑다.


숙소인 패리스 호텔(PARIS HOTEL)에 도착하니 체크인 시간이 4시란다. 두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주차장에 차를 파킹하고, 아내와 나는 체크인 시간까지 잠시 차 안에서 쉬기로 했다. 긴 시간 운전을 했더니 피곤이 온몸을 짓누른다. 오는 길에 차에서 한숨 자고 난 뒤 활기를 찾은 아들과 딸은 둘이서 한 바퀴 돌고 오겠다며 신이 났다.


우리 가족이 라스베이거스에 온 것은 이번이 세 번 째다. 한 번 오기도 힘든 이곳에 세 번씩이나 온 것은, 딱히 내가 겜블링을 탐닉해서는 절대 아니다. 첫 번째 중부여행 때는 세계적 명성이 있는 이곳에 꼭 한 번 와보고 싶어서였다. 그때도 지금과 비슷한 노선을 따라 3박 4일 일정으로 여행을 했었다. 그날 우리는 밤이 되어서야 이곳에 도착했다. 깜깜한 네바다 사막에서 멀리 시야에 들어오는 불야성의 도시를 보던 순간의 황홀경은 오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아이들도 그때의 기억을 생생하게 얘기할 만큼 그 인상이 강하게 남아있었나 보다. 강렬한 첫인상은 언제나 오래 남는다. 그날 우리 가족은 피곤한지도 모르고 자정이 다되도록 인파의 행렬에 휩쓸려 스트립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두 번 째는 굳이 이곳을 거치지 않아도 되었지만, 아이들이 다시 한번 가고 싶다고 해서 서부 캘리포니아로 가는 길에 이곳에서 다시 1박을 했었다. 그날은 호텔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즐길거리를 중심으로 조금은 여유 있게 하루를 보냈다.


마리화나와 도박이 합법적인 도시. 사람들의 탐욕과 환락이 이글거리는 도시, 라스베이거스.


Las Vegas는 본래 스페인어로 '목초지'라는 뜻이라 한다. 말 그대로 그 옛날 이곳은 소, 말, 양 떼들과 목동들이 함께한 목가적인 삶의 터전이었으리라. 그랬던 이곳이 미국의 상징적인 관광 도시로 변했다. 

라스베이거스는 Sin City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Sin'의 의미는 '죄'이지만, 종교 윤리적으로 금지된 '도박'으로 먹고 산다는 의미에서 '종교적인 의미의 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진정한 범죄도시라면 Crime City라 했을 것이다. 몇 년 전 총기난사 사건으로 세계를 경악하게 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이곳은 미국의 다른 대도시에 비해 치안이 잘 되어 있어서 안전한 도시로 꼽힌다. 

라스베이거스는 세계 제1의 도박수입을 자랑하는 도시였다. 그러나 2007년 이후에는 도박 수입에서 중국의 마카오에 추월당해 현재까지도 계속 세계 2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딱히 놀랄만한 일도 아닌 것은, 중국 본토인들이 지리적으로 가까운 마카오에서 해마다 수천만 ~ 1억 명 이상씩 돈을 쓰고 가니, 마카오가 라스베이거스의 매출을 추월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 게다.


저녁식사는 아이들이 인터넷으로 검색해 놓은 시푸드(Sea Food)로 결정했다. 식당엔 소문 듣고 찾아온 한국인들이 이미 두어 개의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다. 역시 소문대로 한국인 입맛에 딱 맞는 맵고 짭짜롬한 음식이 제격이다. 마무리로 밥을 비벼먹을 수 있게 한 것도 신의 한 수였다. 아이들도 매우 만족한 모양이다. 한국을 떠난 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얼큰한 음식을 먹고 나니 행복하다.


메인 도로인 스트립 거리를 걷는다. 거리는 이미 세계 각국에서 흘러들어온 엄청난 인파들이 네온의 향연 속에 휩쓸리고 있다.  스트립 거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호텔과 카지노, 리조트 건물들이 즐비하고, 시험적인 현대 건축물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미국의 상징적인 관광지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벨라지오 호텔의 분수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고, 다양한 거리 공연들이 지나는 사람들의 흥을 돋우고 있다.

 

최근에는 이곳을 상징하는 새로운 명물도 생겼다. 3조 원이라는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여 작년에 개관한 MSG 스피어(SPEAR)는 지름 159m, 높이 112m 규모의 구형 건축물로, 외벽을 모두 LED 스크린으로 덮고 있다. 시시각각 다양한 형상을 표출하고 있는 외벽은 마치 지구상에 내려앉은 외계의 행성처럼 초현실적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또, 세계 최고의 높이를 자랑한다는 원형 대관람차(High Roller)가 눈길을 끈다. 높이 167.6m, 직경 158.5m 규모의 관람차는 2014년 3월 개장 이후 라스베이거스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한 바퀴 도는데 30분이 소요되는 이 관람차는 라스베이거스 밤풍경을 보기에는 이것만 한 게 없었다. 이 관람차가 생기기 전에는 패리스호텔의 에펠탑이 야경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명소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새로운 자본가에게 그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이곳에 세 번째 왔는데도 라스베이거스의 자랑 '태양의 서커스'를 보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비싼 관람료에도 불구하고, 특히 주말에는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관람이 쉽지 않다. 우리 가족 모두가 일등석에서 관람하기 위해서는 거의 100만 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일반 좌석조차도 비용이 만만치 않아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이 인터넷 조회를 하더니, 군데군데 따로 떨어진 좌석 몇 개가 남아 있을 뿐이라 한다. 고민하다가 눈 딱 감고 참기로 했다.


스트립 거리와 호텔 몇 군데를 더 둘러보고 숙소인 패리스호텔로 돌아왔다.

라스베이거스 호텔의 백미는 역시 카지노이다. 밤을 새워 운영하는 카지노는 이곳이 잠들지 않는 도시임을 증명하고 있다. 호텔마다 가득한 사람들이 오락과 도박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 누구나 처음에는 오락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인간의 심리를 파고드는 묘한 마성이 있는 것이 카지노 게임이다. 결국 그 마성에 빠져들게 되면 오락은 없고 도박만이 남을 뿐이다.  



카지노에 들어선 아이들이 처음으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매우 흥분해 있다. 그 옛날 이곳에 왔을 때는 출입이 금지된 아이들이었다. 우리 부부는 그 아이들을 입구에 두고 잠시 잠시 겜블링을 했었다. 호기심 어린아이들이 카지노장에 들어왔다가 보안원에게 쫓겨난 일도 있었다. 그런 아이들이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얼마나 기대가 크겠는가!!


나는 카지노에 오기 전에 우리 가족 모두 총 100달러를 넘지 않는 선에서 게임을 하자고 미리 다짐을 했다. 아이들에게 각 20불씩 나누어 주고 게임 방법을 알려주었다. 처음에는 망설이던 아이들이 이곳저곳을 돌며 제법 따기도 하고 잃기도 하면서 재미를 붙이고 있다. 경험자인 애엄마가 가장 먼저 빈손이 되더니 눈을 찡긋하며 아쉬움을 토한다. 

아이들은 첫 경험 치고는 엄마보다 금손이었다. 20불 가지고 두어 시간 재밌게 논 아이들이 "이런 재미로 겜블링을 하는구나!" 하며 나름대로의 멋진 첫 경험을 얘기한다. 

카지노 게임은 오락 수준에서 즐겨야지, 도박으로 경계를 넘으면 안 된다는 이치를 아이들이 깨우치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자정이 다 되어 호텔 방으로 돌아와 커튼을 여니, 잠들지 않는 카지노의 도시가 황홀한 불빛 아래 여전히 술렁이고 있다. 라스베이거스는 언제 와도 사람을 끄는 마력이 있는 도시인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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