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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환 Apr 07. 2024

그랜드캐년

후버 댐에서 애리조나 광활한 대지를 지나 4시간 만에 그랜드캐니언에 도착했다.

비지터센터를 지나면서 이미 설렘은 시작되고 있다. 딸아이는 옛날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며 빨리 보고 싶다고 난리다. 20년 전 이곳에 왔던 그때는 지금보다 열흘 정도가 늦은 3월 중순이었는데도, 엄청 바람이 거세고 눈보라 치는 변덕스러운 날이었다. 딸아이는 View Point에서 사진 몇 장 찍으면 차 안으로 들어가기 바빴다. 거친 날씨를 이겨내며 대자연을 즐기기에는 어린 나이였으리라.

오늘은 날도 청명하고 바람도 없이 포근하다. 맘껏 대자연을 줄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날이다.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답고 장엄한 대자연의 위용.

20억 년 지질학 역사의 산 증인.

계곡을 관통하며 힘차게 굽이치는 콜로라도 강.

유네스코 세계자연문화유산, 그랜드 캐니언(Grand Canyon)이 눈앞에 펼쳐진다.


대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절로 불러일으키는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은 두말할 것 없이 모든 여행객들이 한 번은 꼭 찾아보고 싶어 하는 곳 중에 첫 번째로 꼽히는 곳이다. 5,000k㎡에 달하는 방대한 면적에 깊은 계곡과 다채로운 빛깔의 바위, 장엄한 절경을 이루는 절벽과 빼어난 장관을 연출하는 협곡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모든 것이 20억 년의 장구한 역사 속에서 역동적인 지각 활동과 이곳을 관통하는 콜로라도강침식활동으로 형성된 것이라 한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강물의 침식 작용이 계속되면서 긴 협곡과 그 지류를 따라 곳곳에 반들반들해진 바위가 거대한 풍경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매더 포인트(Mather Point)를 시작으로 파월 포인트(Powell Point), 하피 포인트(Hopi Point), 모하비 포인트(Mohave Point) 등 다양한 시각에서 환상적인 전경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멋들어진 곳이 트레일을 따라 이어진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대자연의 향연이다. 대부분의 미국 자연공원이 그러하듯이, 그랜드캐니언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기 위해 공원 내에는 인공적인 시설물 설치를 최대한 억제하고 있다. 그래서 인생 샷 욕심으로 조금이라도 깊숙이 들어간다면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곳이 많다. 아들과 딸은 엄마와 아빠가 낭떠러지 쪽으로 발길을 옮기기라도 하면 위험 경고를 하며 생난리다. 그 옛날에는 아비인 내가 그 역할을 했었다. 이제 아이들의 눈에는 엄마 아빠가 나이 먹은 노인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아직도 아빠 눈에는 지들이 더 걱정인데......



그랜드캐니언은 트레일을 따라 전망 좋은 곳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그러나  비지터 센터에서 나누어 준 안내 리플릿에 의하면, 사우스림(South Rim) 코스를 따라 나귀를 타고 가거나, 콜로라도강을 따라 급류 래프팅을 한다면 대자연을 함께 호흡할 수 있고, 또 헬리콥터를 타고 계곡의 상공을 가르며 발 아래 절경을 감상할 수도 있다고 한다. 언젠가 나는 '하늘에서 본 그랜드 캐니언'을  TV에서 시청한 적이 있다. 그 황홀한 유혹은 시간과 경비 면에서 아쉽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 척박한 곳에도 북아메리카 고대 문화 최초로 인간이 거주한 것으로 알려진 2,600여 개의 선사 시대 유적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이토록 가혹한 기후와 척박한 땅에서 인간이 자연에 순응하며 살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런 생명력이 이 땅의 인류를 번창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으리라.


백 년도 못 사는 인간이 20억 년의 나이테를 켜켜히 간직한 대자연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 앞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오로지,  아! 하는 외마디 감탄사 뿐이었다. 건축, 조각, 미술 작품 등 인간이 이루어 낸 아름다운 창조물 앞에서 우리는 그들의 무한한 상샹력에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신의 창조물인 대자연과 그 어찌 비견할 수 있겠는가!


그랜드캐년을 한 바퀴 둘러보면서, 경이로운 대자연 앞에서 자꾸만 작아지는 나를 본다.

대자연은 인간들에게 더욱 겸손해지라는 메시지를 넌지시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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