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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환 Apr 12. 2024

네 개의 주를 한 곳에서 만나다


붉게 물든 카이옌타(KAYENTA)의 아침이 밝았다.

어젯밤, 늦은 시간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썰렁하고 을씨년스럽던 분위기와는 달리, 도시의 아침은 차분하고 평화롭다. 들개가 어슬렁거리고, 사람 하나 보이지 않던 거리가 아침 햇살과 함께 밝게 빛나고 있다. 이곳 카이옌타는 자그마한 도시이지만, 인근에 관광명소인 '모뉴먼트 리(Monument Valley)'가 위치하고 있어 많은 관광객이 거쳐가는 이다.

주유소에 들러 가솔린을 채우는 동안, 아들과 딸이 그로서리 샵에서 아침식사를 위해 패스트푸드 몇 개를 골라왔다. 아이들은 패스트푸드에 익숙한 세대라서 이런 선택에 불만이 전혀 없다. 우리 부부 또한 많이 익숙해져서 크게 싫지는 않다. 운전을 하며 차 안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했다. 오늘도 패스트푸드의 끼니 행렬은 계속된다.  


Four corners monument로 가는 길은 온통 붉은 황톳 빛이다. 이곳은 인디언들의 불행한 역사가 점철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1800년대 중반, 미합중국이 이곳에 살던 인디언 나바호족을 뉴멕시코주로 강제이주 시키는 과정에서 수많은 인디언들이 전쟁과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바호족의 끈질긴 투쟁 결과, 1868년 연방정부는 강제 이주의 잘못을 인정하고 나바호족의 고향 복귀를 허락하는 협정을 맺게 된다. 연방정부로부터 땅을 보장받은 나바호족은 기나긴 행군(Long Walk) 끝에 조상 대대로 이어오던 그들의 삶의 터전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후 점차 땅을 확장하여, 지금은 그들이 관리하는 영역이 71,000 평방 km에 이른다고 한다. 나바호족은 그들의 거주지역을 나바호의 나라(Navajo Nation), 나바호의 땅(Navajo Land)이라 부르며, 애리조나주에 있는 윈도 록(Window Rock)을 수도로 하고 있다. 미국 속에 또 다른 국가가 존재하는 셈이다. 그들이 관리하는 구역에는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Four corners monument를 비롯, 모뉴먼트 밸리, 앤틸로프 캐니언, 리틀 콜로라도 등 7개의 유명 관광명소가 있어 이들의 주 수입원이 되고 있다.


나바호 랜드

1시간 여를 달려 Four corners monument에 도착했다.

Four corners monument는 콜로라도, 애리조나, 뉴멕시코, 유타 등 네 개의 주가 한 곳에서 만나는 유일한 곳이다. 이곳은 함께 유학 왔던 후배가 꼭 가보라고 추천한 곳이어서 한 번은 와보고 싶었다. 그러나 입구에 도착하니 허허벌판에 건물 하나 덩그러니 서있고, 깃발 몇 개가 꽂혀 있을 뿐, 황량하기 그지없다. 이런 곳에 무슨 볼거리가 있을까 싶었다. 차량의 출입도 거의 없어 문을 닫았는가 싶을 정도였다. 특히, 32불(1인당 8불)이나 되는 입장료가 너무 비싸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며, 그래도 무언가는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한 바퀴를 돌았다. 역시 입구에서 생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바람 만이 거칠게 부는 황량한 벌판이 외롭고 쓸쓸해 보일 뿐이었다.


모뉴먼트 주변 풍경

이곳 모뉴먼트 상징물이 정 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각 주를 상징하는 4개의 깃발이 펄럭이고, 바닥에는 둥근 원판에 각 주의 영역표지가 박혀있다. 바닥 지표를 따라 한 바퀴를 돌면, 단 몇 초만에 네 개의 주를 한꺼번에 밟을 수 있다. 한 바퀴 돌고 나니,  콜로라도를 시작으로, 유타, 애리조나를 거쳐 이곳까지 온 우리 가족의 여행길을 상징하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넷이서 각자 한 개 주의 땅을 밟, 의미를 담아 기념사진 한 장 남겼. 상징조형물을 빙 두르고 있는 기념품 가게가 보인다. 이곳을 관리하는 나바호족이 직접 만든 기념품을 판다는 가게들은 휴일이 아니어서인지 폐장인 채 썰렁하다.


돌아 나오는 길, 외롭게 펄럭이는 깃발과 황량한 벌판만이 낯선 이방인의 길을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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