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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환 Apr 17. 2024

아이들 학교에 가다



아이들 학교로 가는 길에 우리가 살던 곳을 다시 한번 들렀다. 덴버에 와서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었지만, 아이들은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 했다. 아이들이 아빠 엄마의 마음을 읽었나 보다.


며칠 만에 다시 봐도 여전히 정겹다. 단지 입구에 들어서자, 아파트 표지석이 아침 햇살과 함께 두 팔 벌려 우리 가족을 반긴다.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단지를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아이들은 마치 오늘이 첫 방문인 것처럼,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기억들을 들추며 카메라를 연신 눌러댄다. 추억은 언제나 아름답고 소중하다.


아파트 옆 유니언 스퀘어 파크(Union Square Park)는 우리가 자주 놀러 왔던 곳이다. 이른 봄 공원은 다소 썰렁했지만, 푸른색의 간판과 공원 분위기는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분수가 있는 호수에서 옛 기억을 더듬어 기념사진 몇 장 남기고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유니언스퀘어 파크

딸내미가 다니던 South Lakewood Elimentary School을 먼저 들렀다. 딸이 초등학교 2학년과 3학년을 다닌 곳이다. 주택가 도로변에 자리한 학교는 예전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건물 뒤편에 있는 놀이터가 조금 바뀐 것 빼고는 학교 건물도, 운동장도 그대로이다.  

딸아이는 "아빠! 하나도 안 변했어요! 어쩌면 이럴 수가 있어요?" 하며 20년이나 지난 세월이 무색하다는 듯 놀란다. 딸아이는 앳된 어린애처럼 얼굴에 홍조를 띠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세월을 살피고 있다.

아침 10시를 조금 넘긴 시간, 아이들이 수업 중이어서 학교 밖은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잔디 깔린 너른 운동장을 바라보니, 문득 아이들 운동회 때 모습이 떠오른다.  달리기, 줄다리기, 공놀이를 하며 운동장을 가득 매운 꼬맹이들의 깔깔대던 웃음소리가 지금도 아련히 들리는 듯하다.

딸아이가 출입구에 서서 창문 안쪽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긴 복도가 눈에 들어온다. 그곳을 뛰어다니던 어린 시절이 아련했는지 한참을 그곳에 서 있다. 뒤에서 그런 딸아이를 바라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는 아이의 입학 수속을 밟기 위해서였다.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 온 서류를 들고 담당 선생님과 만나던 날, 딸아이는 알아듣지 못하는 대화를 하고 있는 아빠와 선생님을 번갈아 바라보며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영어를 전혀 못하는 딸아이가 적응을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는 나의 말에, 인상 좋은 선생님은 딸아이가 이쁘고 똑똑하게 생겼다며, 곧 적응할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그때까지는 부모님이 신경을 많이 써달라며, 유인물과 함께 입학에 필요한 여러 가지 사항을 자상하게 얘기해 주었다. 

입학 초창기에는 이런저런 일들로 내가 학교에 자주 와야 했다. 특히, 아이가 아프다고 선생님한테 전화가 올 때면, 가슴이 철렁해서 급히 차를 몰고 학교에 달려오곤 했다. 그런 일이 초창기에는 자주 있었다. 딸애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처음에는 진짜 아팠고, 나중에는 관심받고 싶어서 꾀병을 부린 적도 있었다고 실토한다. 그 얘기를 듣고 어이가 없어 모두 웃었지만, 아이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하는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학교생활이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그래서 머리도 아프고, 배도 아프고 했을 것이다. 또 그런 상황이 힘들어서 꾀병도 부렸으리라. 이쁘게 잘 자라 어엿한 사회인이 된 딸아이를 보며, 이제는 그런 일들조차도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아들은 Creiton Middle School과 Lakewood High School에서 중3과정(9학년)과 고1과정(10학년)을 거쳤다. 미국의 학제는 우리와는 달리, 초등학교 5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4년 과정으로 되어있다. 아들은 한국에서 중학교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왔기 때문에, 이곳 학제에 맞춘다면 고등학교 1학년(10학년)으로 입학이 가능했다. 입학 상담 선생님은 9학년과 10학년 모두 입학이 가능하니, 부모님이 잘 판단해서 선택하라고 했다. 가족회의 끝에 영어가 서툰 아이를 위해 9학년에 입학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먼저 Creiton Middle School에 갔다. 이번엔 아들이 적지 않은 흥분을 한다. 차에서 내린 아들이 여기저기  둘러보더니, 학교가 많이 변했다며 조금은 아쉬워하는 눈치다내가 보기에는 크게 바뀐 게 없어 보이는데 아들의 설명을 듣고 보니, 주차장이 학교 뒤로 옮겨지고 건물도 증축을 해서 많이 달라져 있었다.


입학 초기에는 스쿨버스에 익숙하지 않은 두 아이들을 내가 직접 학교에 태워다 주었다. 딸아이를 먼저 내려 주고, 아들 학교에 와서 교실로 들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차 안에서 지켜보고 돌아오곤 했다. 축 늘어뜨린 어깨를 하고 교실로 들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은 외로워 보였다.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아들은 힘들어도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그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자꾸 마음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애엄마와 함께 복도에서 유리창 너머로 아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몰래 지켜본 적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의 표정이 점점 밝아지는 것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했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아들이 학교에서 Mathematics Wizard Award(수학의 귀재 상장)을 받아오던 날은 더없이 행복했다. 이젠 모두 지난 일이 되었지만, 아이를 지켜보며 가슴 졸이던 먼 옛날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Lakewood High School로 갔다. 고등학교 건물은 한눈에 봐도 중학교 보다 훨씬 많이 변해 있었다. 건물이 새로 지어지고 증축이 되면서, 진입로도 바뀌어 20년 세월의 변화를 느끼게 했다. 아들의 20년 후배 학생들이 수업을 마쳤는지 삼삼오오 의자에 앉아 한가로운 잡담을 나누고 다. 백인, 흑인, 히스패닉계들이 뭉쳐 다니며 웃고 떠드는 모습이 여유로워 보인다. 젊고 밝은 모습이 부럽다. 

세월이 흐르고, 학교의 모습은 변해도 이곳의 학생들은 여전히 내일의 멋진 삶을 꿈꾸며 자라고 있다.


교정 앞에서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는데, 중년의 백인 여성 한 분이 다가와 자신은 학교 보완관이라고 소개하더니, 친절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로 "학교에는 무슨 일로 왔냐?"며 말을 건넨다. 아마도 서성대는 모습이 낯설어서 누군가 신고를 했거나, CCTV에 낯선 우리 모습이 잡혔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선뜻 나서더니, 이 학교 졸업생인데 가족끼리 덴버에 온 김에 들렀다고 하니, 반색을 하며 이내 표정이 풀린다. 몇 마디 더 나누고 아들과 사진 한 장 찍어도 되겠냐고 하니 흔쾌히 응한다. 


아이들이 덴버에 오면 가장 보고 싶은 1순위가 우리 살던 곳이었다. 그리고 2순위는 바로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라고 했다. 그 마음은 부모인 나와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우리 가족은 오랫동안 가슴에 두었던 그리움 위에 또 다른 추억 하나를 덧칠하고 간다. 오늘의 추억은 먼 훗날 또 다른 그리움으로 우리의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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