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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환 Apr 14. 2024

그땐 그랬었지.....

Four Corners Monument를 벗어나 뉴멕시코를 잠시 밟은 도로가 이제 본격적으로 콜로라도 땅에 들어섰다. 콜로라도는 지금까지 돌아온 유타와 애리조나와는 사뭇 다른 맵시를 보이고 있다. 광활한 대지엔 제법 푸릇한 기운이 돌고, 생명들이 살아갈 최소한의 환경을 허락받은 벌판에는 소와 말, 양 떼들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콜로라도에 들어오니 먼 타향을 돌고 돌아 그리운 고향 땅을 밟은 듯 왠지 포근하다.

나는 아이들한테 "아빠의 제1 고향은 전라도 전주이고, 제2의 고향은 콜로라도 덴버다"며 농담반 진담반 얘기를 하곤 했다. 

전라도와 콜로라도, 콜로라도와 전라도..... 기막히게 그 운율이 서로를 닮았다. 

또, 마음으로 그리워하는 곳, 그곳이 고향 아닌가 싶다. 비록 2년밖에 살지 않았지만, 이토록 먼 이국 땅에 마음속 그리운 곳 하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오늘은 종일 차를 몰아야만 한다. 당초, 그레이트 샌듄, 콜로라도 스프링스 등 두어 군데를 여행 일정에 포함했었지만, 오늘 밤 덴버로 돌아가려면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 그곳의 추억은 그냥 옛 기억으로 묻어두기로 했다. 벌써 여행의 절반이 지났다. 새벽잠을 아껴가며 부지런을 떨었지만, 열흘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우리가 계획한 일정은 다소 무리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비행기로 오가는 시간을 제외하면 오롯이 여행할 수 있는 날은 겨우 일주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시 오기 힘든 이 여행이 아쉬움으로 남지 않도록 일분일초를 아껴야 한다. 우리 가족 모두는 힘든 여정을 행복이란 이름으로 치환하며 잘 버티고 있다. 이토록 시간 가는 것을 안타까워해 본 적이 있었던가 싶다.


또다시 고독한 도로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차창으로 스치는 풍경을 바라보며, 아내와 아이들이 그 옛날 동부와 서부를 여행할 때의 기억들을 꺼낸다. 오로지 우리 가족만이 공유하고 있는 추억들이다. 하나하나 소환하는 옛 추억들이 좁은 차 안에서 그리움으로 펄럭인다.


그랬다. 그땐 그랬었다.


덴버의 시간이 흐르면서 낯설고 물설던 이국 땅이 익숙한 땅이 되고, 아이들도 학교에 차츰 적응이 되어갔다. 그렇게 10개월이 지나고 첫 여름방학을 맞으면서, 우리 가족은 한 달가량 일정을 잡고 긴 여행을 떠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동안 틈틈이 1박 또는 2~3박 여행 경험을 통해 쌓인 노하우로, 여행 일정을 짜고 여행장비와 먹거리를 챙기는 데는 우리 가족 모두가 익숙해져 있었다.


7인승인 내 차의 뒷 좌석은 분리가 가능했다. 뒷좌석을 떼어내고 그 자리에 두툼한 매트리스를 깔면 피곤할 때 잠시 누워 잘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뒷 트렁크에는 텐트와 가스버너, 코펠을 비롯해서 작은 전기밥솥과 쌀 20kg 한 포, 라면 한 박스와 물, 고추장과 김, 통조림, 아이들 간식 등 언제든지 취식이 가능하도록 장비와 기본 식재료를 가득 실었다. 또, 아내가 직접 담근 김치도 아이스 박스에 담겨 우리와 함께 여행을 했다. 여름 나절 김치가 익는 데는 며칠 걸리지 않았다. 김치가 익어갈 무렵부터 차 안은 김치 냄새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 익숙한 냄새를 맡으며, 우리는 맛있는 김치찌개와 함께할 저녁식사를 떠올렸다.


첫 번째 여름방학에는 도시를 좋아하는 아이들의 의견에 따라 동부를 먼저 여행했다. 시카고를 필두로 나이아가라 폭포를 거쳐 캐나다 동부 도시, 토론토, 오타와, 몬트리올, 퀘벡 등지를 돌아서 미국 메인주를 시작으로 보스턴, 뉴욕, 워싱턴, 리치먼드, 애틀랜타, 올랜도 등 주요 도시와 플로리다 땅 끝 키웨스트(Key West))까지 돌아왔다. 

두 번째 여름방학에는 서부지역을 여행했다. 라스베이거스를 거쳐  캘리포니아 남단 샌디에이고를 시작으로 LA, 샌프란시스코, 포틀랜드, 시애틀 등을 거쳐 캐나다 서부 도시 밴쿠버, 밴푸와 중부의 캘거리까지 먼 길을 돌았다.

또, 아이들의 봄. 가을 방학이나 연휴 때를 이용하여 텍사스, 루이지애나, 뉴멕시코, 유타, 네바다. 애리조나주 등 중부지역을 틈틈이 돌았다. 어떤 날은 밤을 꼬박 달려 목적지까지 이동을 하기도 했다. 뒷자리에서 밤새 눈을 붙이고 일어난 아이들이 한숨도 안 자고 달려온 아빠를 보며, '아빠는 철인'이라며 엄지를 추켜세웠다.

시카고, 뉴욕, 퀘벡, 나이아가라 폭포

한 달씩 여행을 하려면 경비가 만만치 않았다. 허리띠를 졸라 멜 수밖에 없었다. 여행경비 중 가장 큰 것은 먹고 자는 일이다. 유류비도 만만치 않았지만, 미국의 기름값은 한국의 반값도 안되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여행 경비 절감을 위해 가급적 숙박료가 싼 모텔을 찾아다니고, KOA(캠핑 그라운드, Kamp grounds of America)에서 텐트를 치고 잠자리에 드는 날도 많았다. 때론, 모텔을 잡지 못해 대형마트 주차장에 차를 대고 차 안에서 쪽잠을 청하기도 했다. 

미국의 KOA는 수백 개소에 달하는 전국망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는 화장실과 샤워시설은 물론, 야외 바비큐 시설까지 갖춰져 있을 뿐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간단한 레저시설도 있어 가족단위 자동차 여행객이 많이 이용하는 편리한 곳이다. 이곳을 이용할 때면, 고기도 굽고, 김치찌개와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어 아이들이 더 좋아했다. 또 밤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들의 잔치를 보며 잠자리에 드는 귀한 호사를 누릴 수도 있었다. 


KOA에서의 한 때

모텔에 투숙할 때면, 전기밥솥으로 밥을 지어 김치와 간단한 반찬으로 한 끼를 때웠다. 특히, 모텔에서는 다음날 먹을 밥까지 미리 지을 수 있어 든든했다. 배가 고프면 휴게소(Rest Area)에 차를 세우고, 커다란 양푼에 김치와 고추장, 찬기름을 넣고 비벼서 한 끼를 포만감으로 채웠다. 아이들은 이 비빔밥을 ' 엄마표 양푼 비빔밥'이라 불렀다. 때론, 차 안에서 김밥을 말아 썰지도 않은 채 한 줄씩 들고 어구적 어구적 먹으면서 이동을 했다. 그 조촐하고 어설픈 끼니가 그렇게 꿀맛일 수 없었다. 날이 갈수록 애엄마는 비빔밥과 김밥 만드는 데는 거의 수준급 요리사(?)가 되어 갔다. 잠자리도 불편하고 먹는 것도 시원찮았지만, 어린아이들이 아프지도 않고 불평 하나 없이 잘도 견뎌냈다.

그렇다고 늘 이렇듯 어설픈 식사만 한 것은 아니었다. 도시에 가면 맛집을 찾아 그럴듯한 식당에서 모처럼 칼질도 하고, 해변가 도시에서는 랍스터 등 풍성한 시푸드(Sea Food)를 즐기며 그동안의 궁핍을 한방에 날리기도 했다. 

그렇게 다니다 보니, 미국의 50개 주 중 6개 주를 제외한 44개 주를 돌아볼 수 있었다. 그 넓디넓은 땅을 한정된 시간 동안 돌다 보니 주마간산처럼 스치고 지나친 곳도 많았지만, 도시는 물론, 주요 국립공원과 명소, 박물관과 유명 대학 등 가보고 싶었던 곳은 최대한 둘러보려고 노력했다.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은 아비의 마음으로, 아이들 말처럼 정말 철인처럼 달리고 달렸다. 그때 내 나이 40대 중반이었으니, 아직 힘이 넘치고도 남음이 있었던 때였던 것 같다.


20년의 세월이 흐르고, 이제 내 나이도 60대 후반으로 접어들고 있다. 아내도 환갑을 넘기고, 아들이 30대 중반, 딸은 20대 후반의 나이가 되었다. 이제 그 옛날 어린아이들이 아니건만, 내 눈엔 여전히 어리게만 보인다. 이젠 다 컸다며 으스대던 아이들이 이곳에 와서는 옛날을 회상하며 그 시절 어린아이로 돌아가 있다. 

옛 얘기로 추억을 회상하며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번 여행을 결행하길 참으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게 행복이 아니다. 다시없을 지금 이 순간이 행복이다.


옆자리 조수석에 앉아 있는 아들, 백미러에 비친 뒷좌석의 딸아이가 또랑또랑한 눈으로 풍경 하나라도 놓치지 않을 것처럼 창밖을 응시하며 이따금씩 감탄사를 연발한다. 그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도시에 가면 흥분하며 좋아하던 아이들이 끝없이 너른 대자연을 달릴 때면 심드렁해져서 곧 잘 꿈나라로 떨어지곤 했다. 아내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다가 밥 먹을 때가 되면 다시 생기를 찾아 끼니를 재촉하던 아이들이 밋밋하기 그지없는 풍경조차도 즐기고 있다. 


딸아이가 핸드폰을 조회하더니 아빠가 좋아하던 올드팝이라며 노래를 들려준다.

먼먼 타지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노래, Five hundreds miles가 흘러나온다. 이어서 Take  me home country road, California dream,  Yesterday 등 주옥같은 올드팝이 흐른다. 그 옛날 여행을 하면서 많이 들었던 팝송이다. 아득한 그때의 그리움을 담아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목소리를 높여 합창을 했다. 노래 하나에 추억이 실려 어느새 우리 가족 모두는 20년 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지금 우리가 돌고 있는 코스는 그 옛날 연휴를 맞아 돌았던 코스와 많이 닮아있다. 아치스 국립공원, 라스베이거스, 그랜드캐니언 등 우리가 밟았던 추억의 길을 따라 달리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곳을 가는 것도 좋지만, 그 옛날을 회상할 수 있는 곳은 더욱 행복하다. 추억은 참으로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다.



덴버에 가까워질수록 산악지역이 많아진다. 로키산맥의 장엄한 산들이 머리에 하얀 띠를 두르고 길게 뻗어있다. 산간지역으로 들어서니 갑자기 눈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미끄러운 눈길에 힘든 운전을 하고 있는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딸아이는 눈 내리는 산길이 운치가 있다며 환호성을 지른다. 그 모습이 이쁘다. 산악지역을 빠져나가니 서서히 눈이 그친다.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해가 어느덧 서녘으로 기울고 있다. 

눈에 익숙한 I - 70 하이웨이가 나온다. 이제 1시간 정도 달리면 오늘 숙소가 있는 블랙혹에 도착할 것이다. 

오늘 밤은 아내와 많은 추억이 있는 그곳에서 하룻밤 묵을 예정이다. 마음은 이미 그곳에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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