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변 여주의 아침이 밝았다. 부지런한 막내 춘이 아우가 시끄럽게 깨우는 바람에 졸린 눈을 떴다. 피로가 풀리지 않은 몸이 뻐근하고 무거웠지만 마음만은 상쾌하다. 해가 채 뜨지 않은 아침, 창을 여니 운무 깔린 남한강이 뿌연 용트림을 하며 꿈틀거린다. 서늘한 아침공기가 가슴으로 스민다. 행복이 스민다.
하나 둘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나 샤워하랴, 짐 챙기랴 부산하다. 어제 종일 달렸으니 엄청 힘들 만도 한데, 젊은이들 부럽지 않게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을 떠는 모습이 재밌다. 시끌벅적 웃고 떠들며 행복한 아침을 연다.
천년고찰 신륵사
신륵사 일주문
여장을 꾸려 곧바로 여주 봉미산 기슭의 천년고찰 신륵사로 향했다. 입구 일주문을 지나니 고즈넉하게 자리한 사찰이 드넓게 펼쳐진다. 사찰을 휘감은 남한강이 천년의 세월을 증언이라도 하듯 유유히 흐르고 있다. 강을 따라 경내를 걷다 보니, 이곳에서 입적한 고려 말 나옹선사의 다비식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는 강월헌(江月軒)이 눈에 들어온다. 강가 가파른 절벽 암반 위에 세워진 정자가 아침 햇살을 받아 수묵화 한 폭을 그려내고 있다. 정자에 올라 남한강을 바라보니, 이제 막 떠오르는 태양이 강물 위에 피어오르는 운무를 헤집고 있다. 어느 선계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신비롭고 장엄한 풍경이다.
경내에 우뚝 서있는 천년 노송과 육백 년 향나무가 세월이 흐르는 대로 가지를 뻗어 자신들의 몸을 휘감으며 구불구불 엉켜 있다. 천년 고찰의 아름다운 문화재들이 자연을 품어 더욱 깊고 편안함을 준다. 해송 우거진 숲길 따라 걷는다. 강물과 함께 흘러간 세월을 따라 걷는다.
신륵사의 아침 풍경
두 개의 영릉
신륵사를 나와 인근 해장국집에서 아침을 해결했다. 어젯밤 기분에 달떠 마셔댄 막걸리가 약간의 숙취로 남아있던 터에 해장국은 만족한 아침식사였다.
식사를 마치고 인근 영릉을 들르기로 했다. 여주에는 두 개의 영릉이 있다. 조선 제4대 왕 세종과 소헌왕후의 합장능인 영릉(英陵), 제17대 왕 효종과 인선왕후의 능인 영릉(寧陵)이 그것이다. 영능은 신륵사에서 자전거로 10여분 걸리는 곳에 있다. 입구 카페에서 모닝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고 난 후, 묘역을 향했다.
세종대왕과 효종의 영릉
세종대왕의 영릉은 역사상 가장 추앙받는 왕의 묘역답게 능역도 넓고, 박물관과 유물들이 잘 정비되어 있다. 세종대왕의 묘 자리는 풍수가들이 인정하는 천하 대 명당으로, 태조의 건원릉, 단종의 장릉과 더불어 3대 명당으로 손꼽힌다 한다. 일설에는 세종 같은 성인을 이러한 대 명당에 모셨기 때문에 조선 왕조의 수명이 최소 100여 년은 연장되었다는, 소위 '영릉가백년(英陵加百年)'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다 한다.
효종의 영릉(寧陵)은 세종대왕의 영릉(英陵)과 숲길로 연결되어 있다. 산길을 따라 걷다 보면 효종의 영릉을 만난다. 한 시간여 동안 숲길을 산책했다. 숲 향기 그윽하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더없이 행복을 주는 길이다.
영릉의 숲길과 묘역
3대가 함께하는 라이딩
신륵사에서 영릉으로 이어지는 역사탐방으로 한결 행복해진 마음을 싣고 다시 여주보를 향했다. 여주보를 거쳐 이포교로 가는 길은 여느 자전거 도로 보다 잘 정비되어 있다. 포근한 날씨 때문에 라이더들이 눈에 많이 띈다.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는 우리들 앞으로 연인과, 친구들과, 동호인이 함께 하는 라이더들이 열 지어 스쳐간다. 바야흐로 라이더의 계절이 돌아온 것을 실감한다.
그곳에서 뜻밖에 삼대가 함께 하는 가족을 만났다. 70대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40대 아들, 초등학생인 손자 둘과 함께 남한강 종주를 하고 있다. 이들은 서울에서 3대가 함께 살고 있다 한다.
우리 모두 입을 모아 “너무 부럽다!”고 하니,
“아이들과 함께 라이딩하다 보면 뭇사람들이 많이 부러워해요. 식당에 가면 서비스도 많이 주고요! “
할아버지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며 웃는다.
요즘 세상에 이런 모습 흔하지 않은데 자랑할 만하다. 할아버지의 그 자랑이 미치도록 부럽다. 환갑과 칠순을 넘긴 우리 ‘열혈청춘’ 중에서 청이 아우만 유일하게 손녀를 두고 있을 뿐이니 왜 그렇지 않겠는가!
“나도 저렇듯 행복하게 늙어가고 싶다!”
저마다 한 마디씩 던진다. 참으로 부럽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알바와 끌바
뒤처져 달리던 내가 길을 잃고 말았다. 한참을 달려도 동료들이 보이지 않는다. 엉뚱한 길로 들어선 게 분명했다. 갈래 길에서 다른 길로 들어섰던 모양이다. 라이더들이 흔히 말하는 ‘알바’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때는 늦는다. 앞서 가던 청이 아우한테 전화를 받고, 가던 길을 돌아 기다리던 동료들을 만났다. 형과 아우들한테 애정 섞인 핀잔을 듣고 다시 페달을 밟았다.
이포교 인증을 하고 능내역으로 향하는데 가파른 언덕이 앞을 가로막는다.
"가뜩이나 힘든데 또다시 오르막이라니!"
젖 먹던 힘을 다해 페달을 밟다가 결국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끌바'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뒤를 따라오며 응원하던 청이·춘이 아우가 천천히 오라며, 쌩하니 달려가 버린다.모두들 잘도 올라가는데 혼자서 자전거를 끌고 가쁜 숨을 헐떡이며 올라가는 내 모습이 처량하다. ‘끌바’를 하며 내가 지나온 길을 돌아본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길도 언제나 평탄하고 쉬운 길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원하지 않는 길을 가야만 했고, 때론 돌아가기도 했으며, 끝이 보이지 않는 버거운 길을 만나 좌절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잠시 쉬며 크게 심호흡 한 번하고 다시 길을 찾아 떠나곤 했다. 앞으로 내가 만나야 할 길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얼마나 남아있을지 모르는 그 길 또한 잘 헤쳐 나가야겠지......
자전거길 위에서 잠시 삶을 돌아보며, 다시 두 바퀴 위에 몸을 싣는다.
여주보와 남한강 철교
남한강 철교를 지나 5시가 넘어서 능내역에 도착했다. 연이틀 라이딩으로 지쳐 있는 몸을 음료수로 적시고, 다시 팔당대교를 건너 검단산 역까지 달렸다. 검단산역 근처 식당에서 우리의 첫 1박 2일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틀간160여 km 라이딩을 마치고 나니, 이젠 "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불끈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