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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환 Aug 23. 2024

행복을 싣고 달리는 남한강 1

(2023. 3. 4 ~ 3. 5)

라이더들에게 겨울은 긴 침묵과 같은 기간이다. 지난해 겨울 초입에 아라뱃길과 북한강 라이딩 이후 봄이 오길 많이도 기다렸다. 그렇다고 마냥 봄을 기다리기만 한건 아니다. 겨울 한철, 따스한 햇살이라도 비치는 날이면 ‘열혈청춘’은 근질근질한 몸을 풀 겸 가까운 소요산이나 한강 등지를 돌며 봄을 기다렸다. 남녘에서는 서서히 꽃소식이 올라오고 있지만, 봄이라 하기에는 아직 일러 메마른 나뭇가지가 을씨년스러운 3월 초, 1박 2일 남한강 종주를 떠난다.


9시 30분, 동서울버스터미널을 출발한 버스가 충주터미널에 도착하니 11시가 조금 넘었다. 다행히 날씨는 바람 한 점 없이 포근하다. 인천에서 출발한 춘이 아우와 터미널에서 합류하니 '열혈청춘' 완전체가 되었다. 터미널 인근에 있는 맛 집에서 ‘짜글이’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탄금대로 향했다. 탄금대는 새재길 시·종점이기도 하여 추후 인증을 해도 되지만, 충주댐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탄금대를 먼저 들르기로 했다. 인증 후 약 12km 떨어져 있는 충주댐으로 향했다.


남한강은 강원도 태백시 금대산 검룡소에서 발원, 충청북도 북동부와 경기도 남동부를 흘러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하여 한강 본류로 흘러드는 강이다. 총길이는 375㎞에 달하나, 우리가 자전거로 달릴 수 있는 구간은 이곳 충주댐에서 팔당대교까지 약 160여 km이다. 우리 국토의 젖줄인 5 대강에 자전거길이 열리고, 그 길을 따라 달릴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맙고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목계나루

목계대교와 목계나루터

충주댐 인증센터를 기점으로 목행교를 거쳐서 북쪽으로 달렸다. 조정지댐을 지나 달리다 보니 목계대교가 눈에 들어온다. 입구의 작은 공원에는 이곳이 그 옛날 '목계나루터' 였음을 알리는 표지석이 서있다. 앞서 달려간 동료들이 그냥 지나친 이곳에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서울로 가는 길목에 있는 '목계'는 남한강의 수많은 나루터 중 가장 번잡했던 곳으로 큰 장터를 이루었다 한다. 잠시 공원 벤치에 앉아, 이곳 목계를 배경으로 민중들의 고달픈 삶을 노래한 신경림 시인의 시 '목계장터'를 떠올린다. 한때는 이 시가 좋아  술 한잔 걸치면 읊조리던 때가 있었다. 힘든 직장생활, 판에 박힌 일상이 싫어, 그저 장돌뱅이처럼 훨훨 날아다니고 싶은 심정이었으리라.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신경림의 목계장터 중에서)


한때는 민초들로 북적였을 나루터엔 쪽배 하나 둥실 떠있다. 무심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니, 구름처럼 바람처럼 이 장터 저 장터를 떠돌아다녀야 했던 민초들의 고단했던 삶이 보이는 듯하다.

목계나루터 옛 모습(출처-구글)

비내섬


비내섬에 도착하니 어느덧 해가 뉘엿 기울고 있다. 남한강을 따라 억새밭이 일렁이는 아름다운 섬, 비내섬.

갈대와 나무가 무성해서 해마다 이를 베어(비어) 내야 했던데서 '비내'섬이라 이름하였다 한다. 예사롭지 않은 이름이 궁금했는데, 그 의미를 알고 보니 사뭇 재미있어 웃음이 나온다.


이곳은 철새들의 낙원이기도 하며, 해 질 무렵 노을과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가 어우러진 풍경이 아름다워 10월에는 비내섬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입구에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촬영지라고 알려주는 사진들이 나란히 서있다. 강변과 숲을 따라 걷기 좋은 비내길이 조성되어 있다고 안내판이 일러준다.  잠시 강길걸으며 사진 몇 장 남겼다. 4시간여를 달려온 탓에 피로와 타는 목마름이 온몸으로 기어든다. 입구 휴게소에서 시원한 음료수로 목을 축이니 짜릿한 행복이 밀려온다.

비내섬

두 개의 태양, 네 개의 젊은 심장


강천보 인증을 하고 나니, 서녘엔 붉은 노을이 서서히 지고 있다. 핏빛으로 물든 강을 따라 달린다.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려는 듯, 종일 우리를 따라다니던 태양이 강물에 풍덩 빠졌다. 서녘 하늘과 강물 위에 두 개의 태양이 붉게 이글거린다.  이따금씩 작은 물고기들이 물 위로 솟구치며 자맥질 놀이를 하고 있다. 햇살에 언듯 반짝이며 비치는 작은 생명들이 눈부시게 이쁘다. 강가에 선 나뭇가지가 가볍게 흔들리며 손짓을 한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장엄한 수채화 한 폭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다. 그 강을 따라  행복을 실은 여덟 개의 바퀴가 나란히 달린다. 자연과 하나 된 네 개의 젊은 심장이 벅찬 가슴을 안고 달린다.

두개의 태양이 뜬 남한강

설레는 첫날밤


시나브로 날이 어두워지고 있지만, 예약해 둔 숙소가 있는 여주까지는 아직 멀다.  야간 라이딩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조등과 후미등을 켜고 점점 어둑해지는 밤길을 달린다. 다들 지쳐서  "숙소가 언제 나오냐?"며 아우성을 칠 무렵, 저 멀리 강 건너편에 우리가 예약해 놓은 콘도가 보인다. 축 처진 몸에 갑자기 힘이 솟는다.


 남한강이 내다보이는 강변에 자리하고 있는 숙소가 지친 우리를  반긴. 콘도의 이미지답게 깔끔하다. 우리의 첫 숙소로는 만족할 만한 곳이다. 샤워를 하고 인근 식당에서 삼겹살과 함께 열혈청춘이 마주 앉았다. 많은 날들을 함께 했건만, 열혈청춘으로 뭉치고 난 후, 낯선 곳에서 맞이하는 첫날밤은 사뭇 우리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열이 형의 선창으로 "열혈청춘 만세!!  열혈청춘 파이팅!!"을 외치며 우리의 첫날밤이 익어간다.

삼겹살로 배를 채우고, 막걸리로 행복을 채웠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혈청춘의 첫날밤이 깊어간다.

첫날밤은 늘 설레는 밤이다


남한강의 첫날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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