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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환 Sep 23. 2024

우리네 삶을 품어준 낙동강 2

(‘23. 9. 5. ~ 9. 8.)

이른 아침 창을 연다. 잠이 덜 깬 구미 시내가 옅은 안개 이불을 살포시 걷어내며 기지개를 켜고 있다. 나흘간의 일정을 감안하여 어젯밤 술잔을 줄이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더니 아침이 상쾌하다. 돼지국밥으로 빈 속을 달래고, 이른 시간에 둘째 날 라이딩을 시작한다. 한달음으로 칠곡보를 거쳐 다시 강정고령보까지 달리니 점심때를 놓쳤다. 조금은 지친 몸을 늦은 점심으로 달래고, 다시 달성보로 향했다.


다람재 사고


3시가 다되어 달성보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여기까지는 큰 무리 없이 왔지만 지금부터가 문제다. 라이더들에게 악명 높기로 유명한 낙동강 개의 고개가 기다리고 있다. 이름하여 다람재, 무심사고개, 박진고개, 영아지고개가 그것이다.


제일 먼저 우리가 넘어야 할 다람재를 향했다. 사실, 박진고개를 제외하면 세 개의 고개는 우회로가 있기 때문에 그 길을 택하면 조금은 편히 갈 수도 있다. 나는 동료들에게 은근히 우회길을 유도했지만, 아무도 내 말에 동조를 하지 않는다. 청이 아우를 살짝 꼬드겨 우회길로 함께 가자고 했으나, 믿었던 아우조차도 "어차피 한 번 부딪혀 보자"고 한다. 대세가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


다람재 고갯길에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도동서원’이 있다. 도동서원을 향해서 다람재 사거리로 진입하던 중이었다. 후미에서 달려오던 춘이 아우가 차도로 이어지는 높은 경계석을 미처 보지 못하고 자전거와 함께 곤두박질을 치는 사고가 나고 말았다. 정말, 사고는 예고도 없고 순식간에 발생한다. 지나가는 차가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무릎에서 피가 많이 흐르고, 팔꿈치와 팔목도 금새 부어올랐다. 급히 차도 밖으로 이동하여 다친 무릎과 팔에 비상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 응급치료를 했다.

춘이 아우의 사고

우리 모두는  라이딩을 포기하고 응급차를 불러야 할 상황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혈기 왕성한 청이 아우는 우리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극구 라이딩을 계속하자고 한다. 그 대신 다람재를 넘는 것은 포기하고 우회도로인 도동서원 터널을 통과하기로 합의를 했다. 도동서원으로 가는 길에 뒤따라가며 괜찮은지 계속 물었지만, 돌아오는 건 "괜찮다!"는 대답뿐이다. 힘이 많이 들 텐데, 아무렇지 않은 채하는 아우에게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이 교차한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도동서원


도동서원 터널을 지나니 곧바로 서원이 나타난다.

도동서원은 조선 초기 학자인 김굉필을 배향한 서원으로,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로, 병산서원 · 도산서원 · 옥산서원 · 소수서원과 더불어 5대 서원이다. '도동(道東)은 '성리학의 도가 동쪽으로 왔다'는 의미라 한다.


입구 앞마당에는 서원 건립을 기념하여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늙은 가지를 힘겹게 드리운 채 흘러간 500여 년의 세월을 묵묵히 지키고 있다.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니 세월의 떼가 덕지덕지 묻어있는 중정당 건물이 보인다. 선조 왕에게 하사 받았다는 '도동서원(道東書院)' 편액이 위엄을 지키고 있다. 마루에 걸터앉아 탁 트인 풍광을 둘러본다. 산자락에 포근하게 자리한 서원이 한낮의 햇살을 받아 조는 듯 고즈넉하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찾아오기 힘든 도동서원을 둘러본 것은 두 바퀴 여행이 주는 행복한 선물이다.

도동서원


무심사고개


이제 우리 앞에는 낙동강 종주 중 최대 난코스라고 하는 무심사고개가 기다리고 있다. 부상을 당한 춘이 아우가 이번에도 우회로를 택하지 말고 고갯길을 넘자고 한다. 염려하는 우리들을 향해, ‘사나이 가는 길에 우회는 없다’고 소리친다. 그런 아우의 말을 아니 들을 수 없다.


무심사 가는 길은 끌바를 하지 않고는 오르지 못하는 구간이 있다. 노면이 울퉁불퉁할 뿐만 아니라, 비포장도로에 경사까지 급해서 끌바로 올라가는데도 턱끝까지 숨이 찬다. 두어 번 쉬어가며 강변 산자락에 자리한 사찰 경내에 들어서니 여러 개의 석상과 석불이 보이고, 불경 소리와 풍경소리가 은은하게 퍼진다. 산허리 아래로 낙동강이 한 폭의 그림이 되어 유유히 흐른다. 우회로를 택했으면 보지 못했을 낙동강의 또 다른 모습을 눈에 담는다. 무심사는 라이더들의 안식처로 알려져 있다. 힘들게 올라온 라이더들에게 숙식까지도 제공한다고 한다. 우리는 경내에 흐르는 약수 한 모금으로 위안을 받고 떠난다.

 

무심사 고갯길은 내려가는 길조차 힘이 든다. 풀이 웃자라 있는 비포장 도로는 내려가는 길임에도 끌바를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도 이 길을 포기하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무심사를 내려와 합천창녕보를 향해서 페달을 밟는다.

무심사와 낙동강

오후 5시쯤 합천창녕보에 도착해서 물을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근처 모텔을 알선해 주는 분이 명함을 내민다. 지친 우리에게 고마운 명함이다. 모텔을 향해 달리는데 아무리 달려도 목적지가 나타나지 않는다. 길을 잘못 들어 반대 방향인 황강을 따라가고 있었다. 결국, 해가 지고 난 뒤에야 창녕 작은 마을에 있는 모텔에서 지친 몸을 눕혔다.


오늘은 뜻하지 않은 사고로 힘든 하루였다. 자전거 여행은 작지 않은 위험을 수반한다. 늘 조심하고 조심하지만, 발생해서는 안될 사고가 났다. 그래도 아우가 오늘의 주행을 마무리한 걸 보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오늘 밤을 자봐야 괜찮은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큰 부상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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