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종주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온몸이 천근만근 찌뿌듯한데 마음만은 그리 급할 것 없는 여유로운 아침이다. 여장을 꾸린 후에 삼랑진 읍내 초입에 있는 해장국집을 찾았다. 하루의 시작은 늘 해장국이 최고다. 오늘의 일정을 얘기하며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오늘은 50여 km정도만 달리면 낙동강 하굿둑에 도착할 수 있다.
엉덩이의 굴욕
어제까지 350km가 넘는 길을 달렸다. 하루 평균 120km 정도 달린 셈이다. 나흘 간의 라이딩은 이번이 처음이라 몸이 많이 지쳐있다. 지친 몸을 달래며 버텼지만 몸 여기저기서 아우성이 들린다. 어깨가, 손목이, 허리가 제 각각 힘들다고 야단들이다. 그러나 어제부터 아무 말도 못 하고 소리 없이 아우성치는 놈이 있다. 엉덩이다. 엉덩이는 자전거를 오래 탈 때 가장 고생하는 놈이다. 바지의 패드가 채 흡수하지 못한 땀으로 인해 엉덩이가 쓸리기 쉽다. 특히, 항문 주변이 물러지면서 쓰리고 아프다. 처음 자전거를 타는 라이더들은 안장통으로 고생을 하기 마련이지만, 나는 이제 안장통은 거의 없다. 대신, 덥고 습한 날 오랜 시간 라이딩을 할 때면 엉덩이 쓸림 현상으로 고생할 때가 종종 있다. 어제부터 계속 신경 쓰이게 했던 엉덩이가 오늘은 못 참겠는지 쉬어가라고 떼까지 쓴다. 잠시 쉬며 몸을 달래고 일어나려는데, 지친 몸이 일어나려 하지 않는다. 지치긴 많이 지친 모양이다. 그래도 얼마 남지 않은 길을 나서야 한다. 다시 두 바퀴에 몸을 싣는다.
낙동강하굿둑(을숙도) 인증센터
양산 물문화관
양산 물문화관 인증센터를 지나니 부산광역시 권역 표지가 눈에 들어온다. 내려갈수록 하천 폭은 점점 넓어지면서 길은 부도심으로 들어선다. 둑 길 양옆으로 조성된 벚나무가 하늘을 덮어 터널을 만들며 끝없이 이어진다. 산책로와 함께 조성된 길에는 부산 시민들의 여유 있는 삶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뒤엉키는 길을 조심조심 지난다. 언젠가 벚꽃 피는 봄날, 이곳을 찾을 수 있는 날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도심 속 휴식공간을 따라 달린다. ‘서부산 낙동대교’를 건너 을숙도 낙동강 하굿둑 보에 도착하니, 드디어 강이 바다가 되고 바다가 강이 되어 서로 얼싸안고 춤을 춘다. 출렁이는 물결 따라 반짝이는 윤슬이 찬란하고 눈부시다.
오후 1시, 낙동강 하굿둑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우리가 국토대장정을 떠나면서 정서진에서 보던 것과 닮은 '웰컴 아치(Welcome Arch)'가 우리를 반긴다. 드디어 3박 4일의 낙동강 종주를 마쳤다. 중간에 춘이 아우가 부상을 당하는 사고가 있었지만, 어려운 상황에도 열혈청춘 모두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이 순간이 벅차다. 인증센터에서 또 하나의 마무리 샷을 찍고, 자전거를 높이 들어 우리 만의 행복을 찍었다.
벚나무 길과 을숙도 공원
자갈치시장의 추억
이제 우리는 부산역으로 간다. 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중간에 지하철을 타고 부산역에 도착했다. 4시에 예약한 기차가 출발하기까지는 두어 시간이 남았다. 부산역 광장에 자전거를 묶어 놓고, 택시로 자갈치시장에 갔다. 비릿한 냄새를 맡으며 왁자한 시장거리를 구경삼아 걷는다.
돌이켜보니, 내가 자갈치시장에 온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자갈치 시장에 처음 온 때는 지금으로부터 45년 전쯤이었다. 얼마 안 있으면 군대 갈 예정인 두 친구와 함께 추억 만들기 여행을 떠났었다. 완행열차를 타고 청주와 대전, 대구를 들러 부산까지 내려왔다. 어릴 적 평야에서 자라 바닷가 경험이 별로 없는 나에게 자갈치 시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뙤약볕이 시들어 가는 저녁나절, 부둣가와 시장바닥엔 비릿하고 꿉꿉한 냄새가 질펀하게 퍼져있었다. 싱싱한 생선회의 유혹을 외면한 채, 그 당시엔 가장 싼 고래 고기와 곰장어 구이를 안주 삼아 소주를 마구 들이켰다. 안주는 떨어져 가는데 술은 아직 취하지 않고, 지갑이 비어있는 젊은 청춘들은안주를 더 시킬 수가 없었다. 안주 한 점이라도 더 먹는 놈에게 눈총을 던지며, 깡소주서너 병 더 들이키던 내 젊은 시절이 있었다. 소중한 추억이 묻혀있는 시장바닥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 그 시절 먹고 싶어도 꿈도 못 꾼 신선한 회 한 접시와 물회 한 사발을 안주 삼아 푸짐한 행복을 즐겼다.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소금에 절인 배춧잎처럼 축 늘어진몸이 기차에 오른다.나른한 행복을 실은 기차가 서울로 서울로 달린다. 눈이 감기고 , 스르르 잠 속으로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