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낙동강 종주를 마치고, 9월이 가기 전에 다시 영산강 종주에 나섰다. 우리가 기다려 온 계절인 만큼 이번 달은 두 번째 출정이다. 8시 10분 센트럴시티에서 고속버스가 출발했다. 인천에서 출발한 춘이 아우와 중간 정암휴게소에서 합류하여 담양터미널에 도착했다.터미널 근처 식당에서 백반으로 배를 채우고, 물통에 시원한 물까지 채웠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영산강은 전라남도 담양군 병풍산 북쪽 용흥사 계곡에서 발원하여남도와 함께 울고 웃으며 숨 쉬어 온 강이다.
오늘부터 이틀간 우리는 담양댐에서 목포 하굿둑까지 굽이굽이 남도의 젖줄을 따라 130여 km를 달릴 것이다. 늘 그랬듯이 두 바퀴에 오르니 가벼운 흥분이 인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강과 산과 들, 우리가 만나게 될 멋과 맛을 찾아 천천히 페달을 밟는다.
담양천 관방제림(官防堤林)
담양읍내를 돌아 담양천으로 갔다. 둑방에 들어서니, 잘 조성된 울창한 숲길, 관방제림이 나온다. 관방제림은 관에서 조성한 제방과 숲을 의미한다. 1648년(인조 26년), 당시 담양 부사 성이성이 홍수를 막기 위해 제방을 쌓고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들었다. 이후 철종 때 부사 황종림이 연간 3만여 명을 동원하여 제방과 숲을 재정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한다.
둑방을 따라 약 2㎞에 이르는 길에는 푸조나무, 팽나무, 갈참나무 등 고목들이 노익장을 자랑하듯 줄지어 서 있다. 큰 나무는 300∼400년 전 인조 때 심어진 것이고, 작은 나무는 철종 때 심은 것이라고 한다. 역사를 품고 있는 나무마다 자랑스럽게 이름표를 달고 있다. 국가로부터 천연기념물로 보호받는 나무는 대우도 남다르다. 햇살 따가운 오후, 둑방 길에는 더위를 피해 휴일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빈다.자전거를 끌고 선인들의 땀과 세월이 만들어낸 길을 따라 역사의 숨결을 들으며 걷는다.
관방제림과 담양천
담양의 다양한 볼거리
담양은 대나무의 고장이다. 담양 지역에서는 고려 초부터 비가 많이 오는 시기인 음력 5월에 대나무 심는 날을 정해 마을 주변에 대나무를 심었다고 한다.대나무와 수백 년의 인연을 맺은 담양의 자랑, 죽림원에 갔다. 대표적인 명소인 만큼 모두들 죽림원은 한두 번씩 가본 적이 있다. 결국, 두어 시간은 족히 걸릴시간 절약을 위해 죽림원 계단 앞에서 사진 몇 장만 남기고 지나치기로 했다. 대신, 죽림원 앞 카페에서 죽순향 물씬 풍기는 아이스크림으로 더위를 달래니 어린아이처럼 행복해진다.
담양댐 인증센터에 들러 돌아 나오다 보면 담양의 또 다른 명소, 메타세콰이어길이 나타나고, 20여 km를 더 달리면 담양 대나무숲길을 만난다. 곧게 뻗은 메타세콰이어길은 언제나 행복을 준다. 도로 양 옆으로 빼곡히 늘어선 대나무숲길도 색다른 맛을 준다.담양은 매력이 넘치는 고장이 분명하다.
메타세콰이어길과 대나무숲길
승촌보
대나무숲 인증센터에서 잠시 물과 에너지바로 몸을 보충하고 승촌보를 향했다. 승촌보 가는 길은 업힐 구간이 많지 않고 강을 따라 이어지는 길이 여유롭다.
승촌보에 도착했다. 전망대에 오르니 잘 조성된 공원이 넓게 펼쳐있고, 구름 낀 하늘에는 햇살이 옅게 흩어져 있다.시민들의 넉넉한 쉼터가 되고 있는 공원과 승촌보까지 한 바퀴 돌고 나니 해가 점점 기울고 있다. 해가 지기 전에 오늘의 목적지인 나주시 영산포까지 가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한다. 다시 두 바퀴에 몸을 싣는다.
승촌보와 공원
영산포와 홍어
해 질 녘 시간에 쫓기기도 했지만, 영산포의 명물 홍어가 우리를 부르고 있는 것 같아 더욱 바삐 페달을 밟았다. 해가 거의 질 무렵 영산포에 도착해서 영산대교를 건너는데, 다리 중간을 넘어서니 그 특유의 홍어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모두들 그 야릇한 냄새에 취해 곧 있을 홍어파티를 생각하며 환호성을 지른다.
모텔에서 샤워를 마치고 거리에 나서니, 이미 해는 서녘으로 넘어갔다. 강물에 비친 붉은 노을이 홍어 빛을 닮았다. 영산포 아치다리에 형형색색의 불이 들어오면서 홍어내음이 더욱 물씬 풍긴다.
어느 곳이든 맛이 없으랴만, 그래도 영산강 밤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홍어 1번지 3층 창가로 자리를 잡았다. 홍어 특식 한상차림이 오늘 하루 흥건히 고인 피로를 풀어준다. 역시 홍어엔 막걸리가 최고다. 막걸리가 홍어를 부르고, 홍어가 막걸리를 부른다.
영산포가 주요 포구가 된 것은 목포가 개항되고 일본인 미곡상들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목포에서 이곳까지 배가 들어오고 1960년대까지는 포구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신안, 목포 등지에서 실은 홍어가 영산포에 이를 때쯤 적당히 삭혀진 맛이 제일이라 이곳에 홍어집들이 많이 생겨났다고 한다. 영산포 홍어의 역사가 흥미롭다.
홍어 파티
강 따라 걷다가 2차로 홍어탕집에들렀다. 젊은 사장님이 끓여준 홍어라면은 이미 배가 부른 우리들의 입에서도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비싼 홍어를 라면과 함께 끓인다는 것은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그러나 톡 쏘는 홍어 맛과 라면이 이렇게 멋진 조화를 이룰 수 있을 줄이야! 오래 기억에 남을 맛이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영산대교와 주변 건물들의 불빛이 강물에 투영되고 있다. 강물이 시시각각 변하는 영산대교의 불빛을 빨아들이며 환상적인 영상쇼 한 편을 보여 준다. 오늘 밤, 영산강은 멋진 빛의 연출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