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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환 Oct 07. 2024

남도의 젖줄, 영산강 2

(‘23. 9. 24. ~ 9.25.)


나주곰탕, 그 깊은 맛


나주 시내 모텔에서 아침을 맞았다. 오늘 아침은 나주곰탕으로 하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서울에서도 가끔씩 맛볼 수 있는 나주곰탕이지만, 본 고장에서 원조 먹거리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구시가지 곰탕거리까지 가는 길은 복잡한 도심의 도로를 따라가야 한다. 출근길 도로는 차량도 많고, 인도와 자도에도 등교하는 학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어 라이딩이 쉽지 않다. 20여 분 주행 끝에 구시가지에 있는 원조할머니 곰탕집에 갔다. 식당에 들어서니 밤새 끓여낸 구수한 곰탕 냄새가 입맛을 자극한다. 주방에서 끓고 있는 커다란 가마솥 여러 개가 부뚜막에 앉아 배고픈 방문객을 맞이한다. 주방을 공개하는 것은 원조 집이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의 표현이리라.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주문한 곰탕이 나왔다. 진하게 우려낸 말간 국물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모두들 시원하고 구수한 국물을 바닥까지 보이며 비웠다. 자전거 여행의 또 다른 재미가 맛 기행이다. 어젯밤은 영산포 홍어가 행복을 주더니, 오늘은 나주곰탕이 맛있는 아침을 선물한다.


나주 읍성 금성관


곰탕 집을 나오니, 곰탕거리를 끼고 예상치 못한 고풍스러운 옛 건물이 보인다. 입구에 소개된 안내문을 보니 조선시대 객사인 ‘금성관’이라고 소개되고 있다. 

나주 금성관은 조선 성종 때 나주목사 이유인이 세웠다. 외국 사신이나 정부 고관의 행차가 있을 때 연회를 열었던 곳으로, 작은 한양 나주읍성의 중심에 자리했던 상징적인 곳이었다. 임진왜란 때는 이곳 금성관 망화루에서 나주 의병장 김천일 장군이 의병출정식을 가졌고, 명성왕후가 시해됐을 때는 나주유림들이 모여 통곡을 했던 장소였다고 한다. 그 규모가 웅장하고 나주인의 정의로운 기상을 대표할 만한 건물로, 얼마 전 국가 보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나주의 맛을 찾아왔다가, 멋도 보고 떠난다. 나주의 맛과 멋을 함께 한 아침이다.

금성관

느러지 관람전망대


죽산보를 지나 느러지 관람전망대까지 가는 길은 오르막 경사가 만만치 않다. 마지막 느러지 전망대에 오르는 구간은 아예 산길을 깎아 놓은 길이다. 스마트 워치가 알려주는 심박수가 무려 분당 180회를 오르내린다. 낙동강 네 개의 고개를 넘을 때도 그랬다. 보통 평지를 달릴 때의 심박수가 120 내외 수준인 것에 비하면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끌바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영산강 종주길 중 가장 힘든 구간이다.


느러지 전망대에 오르니, 한반도 지형을 닮은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영산강 물길이 하구 쪽 나주평야를 지나며 유속이 느려지면서 강물이 휘돌아가며 생긴 지형이라 한다. ‘느러지’라는 말도 '물길이 느리게 돌아가는 곳'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강원도 영월의 동강과 낙동강 하회마을도 이런 현상으로 이루어진 곳이라 한다. 알고 보니 그 형상이 많이 닮았다.


 옥토가 넓게 펼쳐있는 평야를 휘돌아 잔잔하게 흘러가는 물길이 정겹고 평화롭다. 느러지의 물결이 바삐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유와 쉼표 일러주고 있다.


느러지 전망대


로드 킬(Road Kill)


느러지 전망대를 지나 풀이 제법 우거진 천변을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개구리 한 마리가 자전거 도로로 뛰어든다. 깜짝 놀라 급브레이크를 잡아 애꿎은 살생을 간신히 면했다. 개구리가 얼마나 놀랐는지 하얀 배를 드러내고 뒤집어져 바둥대더니 가까스로 몸을 뒤집어 풀숲으로 줄행랑친다. 그놈도 그랬겠지만 나도 가슴을 쓸어냈다.


라이딩을 하다 보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광경이 있다. 자전거 도로에 죽어 있는 크고 작은 생명들이다.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건 지렁이류와 메뚜기, 풀무치, 사마귀, 개미 같은 크고 작은 곤충류다. 또, 뱀이나 개구리처럼 제법 큰 동물들도 자주 마주치고, 그들의 사체 또한 흔히 눈에 띈다.


일반적으로, 로드 킬(Road Kill)은 자동차에 의한 동물들의 희생을 일컫는다. 그러나 국토종주를 하면서, 자전거 길에서작은 생명들이 무시로 로드킬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모든 생명은 존귀하다. 태어났으면 그 명을 다해야 하는 것이 신의 섭리일 것이다. 국토 종주를 하면서  내가 알게 모르게 작은 생명들을 죽이는 일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미치자 자꾸만 마음이 쓰인다. 나이를 먹어 가는 증거일까? 천성이 마음이 약한걸까?


나주평야


하굿둑으로 가는 길은 드넓은 나주평야를 끼고 달린다. 영산강은 나주평야의 젖줄로, 비옥한 땅을 만들어 내며 수천 년 나주 역사의 중심으로 흐르고 있다. 9월도 마지막을 치닫고 있는 들녘엔 나락이 누렇게 변해가고 있다. 머지않아 이 들판에는 농부들의 환한 웃음과 함께 황금물결이 넘실대고,  나주의 들녘에 새겨진 수 천 년 역사의 숨결이 가득 넘칠 것이다.


하구로 갈수록 넓게 발달된 하천 둔치에는 갈대숲이 무성하다. 높은 가을 하늘, 떠도는 구름이 갈대밭을 포근히 감싸고 있다. 햇빛을 받은 갈대꽃이 바람에 흔들리며 하얗게 부서진다.


나주평야를 가로질러 가다가 무인카페를 만났다. 목도 마르고 허기진 몸을 달랠 겸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길이 엇갈린 동료도 다시 만났다. 음료수와 달달한 아이스크림은 이 순간 최고의 선물이다. 마치 수액을 맞은 듯 실핏줄을 타고 스며드는 행복을 맛본다.


10여 km를 더 달렸다. 영산강 하굿둑이 가까워지면서 강인지 바다인지 모를 드넓은 물길이 이어지고, 멀리 도심의 아파트가 보인다. 마지막 영산강 하굿둑 인증을 마치고, 목포역을 향해 달린다. 공도를 타고 가는 길목에서 목포의 명소인 갓바위를 둘러보는 여유도 생겼다.

나주평야와 갈대숲
영산강하구와 갓바위

목포의 명물 세발낙지


시간의 여유가 있으니 목포의 명물, 세발낙지를  두고 그냥 갈 수는 없다. 부산역에서 그랬던 것처럼, 목포역에 자전거를 파킹해 놓고 택시로 무안 독천골로 갔다. 호롱낙지와 탕탕이로 영산강 완주를 자축하고, 열혈청춘의 행복을 자축했다.


낙동강 일부구간(안동댐~상주상풍교)을 남겨놓기는 했지만, 드디어 우리 열혈청춘의 바램이었던  5 대강 완주를 무사히 마무리했다. 여직까지 달려온 길은 낭만 같지만 고통이 흐르고, 고통스럽지만 행복으로 치환되는 길이기도 했다. 서로 격려하고 다독이며 믿음으로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함께 한 열혈청춘 모두 고맙고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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