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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환 Oct 15. 2024

푸른 내음과 해안 절경을 품은 동해안 길 2

('23.10.7~10.9.)


바다를 연모해 달리는 길


어젯밤 사 둔 컵 라면으로 아침을 간단히 때우고, 6시를 조금 넘겨 숙소를 출발했다. 어제 비까지 내려 예정된 거리를 달리지 못했기 때문에 이른 출발을 결정했다. 다행히 어제와는 달리, 하늘은 맑고 라이딩하기 더없이 좋은 날이다. 


Blue Road라 불리는 동해 바닷길은 에메랄드 빛 하늘과 푸른 바다가 축복처럼 펼쳐진다. 오른쪽은 바다, 왼쪽은 산과 들과 마을이 이어진다. 바다를 끼고 달리는 길은 바다와 사랑에 빠진 게 분명하다. 그 연모의 마음에 답이라도 하려는 듯, 바다는 연신 속삭이듯 출렁이며 사랑 얘기를 쓰고 있다.

Blue Road, 동해안 길


망양 휴게소


라이딩 도중에 만나는 휴게소는 사막에서 만나는 오아시스와도 같이 반갑고 고마운 곳이다. 지친 몸에 물과 영양을 공급하며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할 수 있고, 또 앞으로의 여정을 위한 물과 간단한 간식도 보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망양휴게소는 내가 자전거 길에서 만난 휴게소 중 으뜸이 아닐까 싶다. 해안선 절벽에 매달려 있는 듯한 휴게소는 먼 해안선과 바다의 풍광을 바라보며 차 한잔 즐기기에는 더없이 아름다운 곳이다. 아이스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며,  바다 위에 부서지는 윤슬을 보고 있으니 이대로 시간이 멈추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화장실에서 조차도 바다를 바라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시원한 배설의 즐거움을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할 수 있는 화장실이 또 얼마나 있겠는가! 데크를 따라 잠시 해변 쪽으로 내려가니 부서지는 파도가 포말이 되어 얼굴을 때린다. 입술에 묻은 바닷물이 짭짜롬하면서도 상큼하다.


망양 휴게소


萬이 아우의 고향, 산포리


망양휴게소를 지나 달리다 보면 ‘산포리‘라는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이번 라이딩에 함께 한 만(萬)이 아우의 고향이다. 그는 이곳 울진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직장을 다니며 우리와 인연이 되었다.

마을 뒤로는 낮은 산이 마을을 포근히 감싸고 있고, 앞으로는 모래사장과 바다가 끝없이 펼쳐지고 있다. 소박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마을답게 푸근한 인상을 주는 마을이다. 동네 어귀를 지나는 바닷길을 따라 기암괴석들이 풍취를 더해준다. 이렇듯 멋진 곳이 고향인 아우가 부럽다. 그냥 지나치기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갈길을 재촉한다.

만이 아우의 고향, 산포리


울진 은어다리


울진 은어다리 인증센터에서는 특이한 형상을 한 은어를 만날 수 있다. 왕피천에서 동해를 향해 힘차게 헤엄치는 은어 두 마리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산란철에 은어 떼들이 천으로 회귀하는 장광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어서 이곳에 은어다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은어다리에서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망망대해의 동해 바다가 펼쳐지고, 왼쪽으로는 울진대교와 울진군의 산 능선들이 펼쳐진다.


은어 형상 안으로 들어가면 마치 거대한 은어가 우리를 삼킬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은어의 가시며, 지느러미, 입 모양들이 실물인 양 정교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은어의 고장, 울진에서 만난 멋진 조형물이 지나는 라이더들에게 잠시 휴식과 행복을 주고 있다.


은어다리


인생길 닮은 낙타등 고갯길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오르막 고지에서 내리막으로 달리는 순간,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이 시원한 바람으로 씻겨 나가는 행복은 벅차다. 어쩌면 이 맛에 취해 오르막을 버티며 오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동해안 자전거 길은 해안을 끼고 달리는 아름다운 길이다. 반면,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이른바 ‘낙타등 고갯길’을 피할 수 없다. 크고 작은 낙타등 고갯길이 라이더들을 지치게 한다. 특히, 울진에서 삼척 구간은 국토 종주길이 완비되지 않은 길이 있는 구간으로, 낙타등 고갯길의 절정이다. 오르막을 힘겹게 오를 때면, 내리막의 시원한 보상과 이어지는 평평한 길을 생각하며 참고 오른다. 그러나 이 길은 내리막과 오르막이 곧바로 연결되기를 반복하니 지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낙타등 구간은 산속으로 들어가는 길이어서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힘이 든다.


힘겹게 페달링을 하며 뒤쳐져 달리는 내 뒤에 만(萬)이와 청(靑)이 아우가 교대로 따라오며 힘을 보태준다. 오르막은 절대 무리하면 낭패다. 페이스 조절이 필수다. 아우들 덕분에 끌바를 하지 않고 페이스를 조절하면서 힘든 길을 무난히 오르내릴 수 있었다. 사실, 동해안길 라이딩을 하기 전에 낙동강 네 개의 고갯길 같은 힘든 여정을 겪으며 많이 단련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오르막길은 언제나 고통의 길이다.

낙타등 고갯길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낙타등 고갯길은 우리네 인생길과 많이 닮아 있다. 낙타등 길을 달리며 육십여 성상을 살아온 내 삶의 과정을 생각한다. 나 혼자 그 길을 걸었다면 아마 포기할 일이 많았을 것이다. 오늘 두 아우처럼, 내가 가는 길을 함께 하며 나를 버티게 해 준 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고맙고 고마운 사람들이다. 또, 숱하게 만난 오르막과 내리막길을 무던히도 잘 버텨온 나를  되돌아본다. 나를 쓰다듬으며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잘 버텨줘서 고맙다!"


낙타등 고갯길에서 인생을 다시 배운다.

 

또다시 악몽의 사고


 고포항과 호포항을 지나고 임원항에 가까워질 때쯤 또다시 지루한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힘겹게 오른 후 내리막 중간쯤을 달리는 순간, 앞서 가던 세(歲) 아우가 자전거 도로 분리 턱에 걸려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운동신경이 있는 다부진 체격의 아우이지만,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에 미처 대처하지 못하고 넘어지고 말았다. 우리 모두는 순간 멘붕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몰랐다. 급히 달려가 몸을 일으키고 다친 곳이 없는지 살펴보았다.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잠시 후, 상황이 단순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우의 손목과 손가락이 부어오르면서 자전거 핸들을 잡기가 불편할 정도였다.


천천히 자전거를 끌고 임원항이 있는 읍내로 갔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읍내를 돌며 병원을 찾았지만, 이 자그만 읍내에 병원이 있을 리 없다. 자그만 의원 간판이 있는 건물을 찾았으나 문이 닫혀있고, 약국조차 찾을 수 없다. 다행히 편의점에서 붕대와 소독약, 진통제 등 간단한 의료품을 살 수 있었다. 응급조치를 했지만 아우의 손은 더욱 부어오르며 통증까지 호소한다. 더 이상 라이딩이 불가능해 보였다. 의견을 모은 결과, 歲 아우는 라이딩을 중단하고 서울로 가기로 했다. 모두 라이딩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歲 아우의 강력한 주장으로 나머지 동료들은 내일까지의 일정을 소화하기로 했다. 아우는 택시를 불러 삼척 고속버스 터미널로 떠났다. 청이 아우가 삼척까지 동행하려 했으나 그마저도 歲 아우는 원하지 않는다. 걱정과 미안한 마음이 교차하는 아픈 순간이다.

임원항의 아픔

착잡한 마음으로 페달을 밟는다. 아직 해가 중천에 있으니 조금은 더 달려야 한다. 임원항에서 한재공원 인증센터를 거쳐 약 30km를 더 달려 삼척항까지 갔다. 삼척항 회센터에서 저녁을 했지만, 어제처럼 흥이 없다. 이 빠진 듯 아우의 빈자리가 허전하다. 숙소로 돌아와 서울로 떠난 아우에게 전화를 하니, 제수씨가 차를 가지고 터미널에 마중을 나와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고 한다. 내일 병원에 가면 자세한 상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부디 뼈에 이상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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