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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환 Oct 18. 2024

푸른 내음과 해안 절경을 품은 동해안 길 3

('23.10.7.~10.9.)


삼척 이사부 사자바위


이른 아침, 동해의 일출을 보기 위해 커튼을 열었다. 멀리 먼동이 트고, 붉은빛이 구름 사이를 감돌고 있다. 이글거리는 장엄한 일출은 아니지만, 잔잔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어 행복하다.  해변을 걷기 위해 청이 아우와 잠시 밖으로 나갔다. 호텔 앞 해변에 붉은 색조를 띤 바위 하나가 파도를 맞으며 고독한 아침을 맞고 있다. 바위 앞에 안내판이 서있다. ‘이사부 사자바위’라 일러준다. 깜짝 놀랐다. 이곳이 1,500여 년 전 이사부가 우산국 정벌을 위해 출항했던 곳이라니!! 별생각 없이 바라보던 바위가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에 호기심이 발동한다.


삼척시에는 그 역사적 의미를 새기기 위해 인근에 ‘이사부 사자공원’을 조성하고, 삼척해수욕장과 삼척항을 잇는 4.8㎞ 해안도로를 '이사부길’로 명명하고 있었다.


이사부 장군의 지략으로 오늘날 울릉도와 독도를 우리 영토로 편입할 수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우리 민족에게 커다란 자부심이다. 그 전설 같은 장소를 우연히 보게 된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다. 1,500여 년 전, 끝없이 출렁이는 바다를 향해 출정하던 이사부 장군의 기상과 병사들의 함성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사부 사자바위의 아침


추암 촛대바위와 망상해변


숙소 인근 식당에서 해물탕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8시에 출발했다. 다시 바다를 끼고 달린다. 세상 근심 다 사라지게 하는 바다의 아침이 끝없이 펼쳐진다. 동해 푸른 바다 출렁이는 파도가 가슴을 떨리게 한다. 파도 따라 벅찬 가슴이 일렁거린다. 하늘 푸르고 잔물결 일렁이는 수면 위에서 부서지는 햇빛이 찬란하다. 시원한 아침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달린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도는 청량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헌재공원을 거쳐 추암 촛대바위가 있는 추암해변에 도착했다. 애국가 첫 소절의 배경 화면으로 유명한 촛대바위가 바닷가에 우뚝 서 있다. 가까이 다가가기에는 조금은 먼 촛대바위를 해변 모래사장 그네에 앉아 바라본다. 기암괴석들이 대화를 하듯 서로를 바라보며 오밀조밀 서 있다. 거세게 부딪치는 바닷물을 잘게 부수며 눈부신 햇살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자연이 만들어낸 위대한 작품이다.

추암 촛대바위


다시 20여 km를 달려 망상해변으로 간다. 철 지난 망상해수욕장에는 오늘도 꽤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동트는 동해, 망상‘이라고 쓰인 붉은 시계탑이 인상적이다.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아 한참 줄을 선 뒤에야 사진 몇 장 남길 수 있었다. 모래사장에는 백마, 사자 등 모래로 만든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오래전, 그러니까 40년도 넘었을 먼먼 옛날, 친구들과 찾았던 망상해수욕장. 다시 이곳에 오는데 참으로 많은 세월이 흘렀다. 흘러간 세월이 꿈결 같이 덧없다.


망상 해수욕장


정동진


정동진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길을 잘못 들어 해변도로를 놓치는 바람에 도심을 따라 도로를 달려야 하는 코스가 많아 더욱 힘든 여정이었다. 다시 길을 찾았지만, 정동진 고개를 넘어가는 길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고통스러운 힘을 짜내야 했다. 끌바를 하고 쉬어가며 고개를 넘으니, 드디어 푸른 동해바다가 눈이 시리게 펼쳐진다. 여러 번 이곳을 찾았지만, 두 바퀴로 정동진에 왔다는 사실이 행복하다.


지난해 11월 말, 국토의 서쪽 끝 정서진에서 출발한 우리의 대장정이 드디어 동쪽 끝 정동진까지 왔다. 앞으로 우리 앞에는 동해안길 나머지 구간과 오천ㆍ새재길, 그리고 제주 환상길기다리고 있다.


이제 점점 날이 추워질 것이다. 아마도 한 두  구간은 내년으로 넘겨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 많은 날들을 함께 웃고 응원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국토 대종주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날도 머지않았다.


정동진 풍경

기차에서 만난 인연


정동진역 앞 분식가게 할머니 사장님의 넉넉한 웃음과 푸짐한 인심을 먹고, 정동진역에서 동해로 가는 KTX에 몸을 실었다. 우리 옆자리에는 일흔 중반쯤은 넘어 보이는 할머니, 아니 누님이라고 해야 할 분들이 앉아 있다. 인상 좋은 누님들 좌석으로 자리를 옮겨 너스레로 기차 여행을 함께했다. 같은 고향, 초등학교 동창생이라는 이들은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시간 나는 대로 전국 여행을 함께 하고 있다 한다. 70여 년 우정이 참으로 아름답다. 우리들의 국토 대장정 얘기를 듣고 엄청 부러워한다. 한참을 웃고 떠들다가 동해역에 내릴 시간이 되었다. 인사를 하는 나에게 막걸리라도 한잔하라며 지갑에서 5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선뜻 내준다. 뜻밖의 선심에 여러 번을 사양하다가, 그 마음이 고마워 끝내 받았다.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의 교감이 여행의 참 맛이다. 젊은 누님들의 건강한 삶이 오래오래 지속되길 바라는 맘이다.

기차에서 만난 인연

동해고속버스터미널


터미널은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곳이다. 누군가는 시작을 위해, 또 누군가는 마무리를 위해 이곳을 찾는다. 사흘 전 여행의 시작을 위해 서울 터미널을 찾았던 우리가 오늘은 여정의 마무리를 위해 동해 터미널에 와 있다.


여정이 끝나는 시간은 늘 마음속으로 감사의 기도를 한다. 이번 여행은 또 한 번의 사고가 있었다. 어제 歲 아우가 사고로 귀경을 한 후 모두 걱정이 많았다. 아우는 넘어지면서 짚었던 손가락 뼈에 실금이 갔다 한다. 그만하기 다행이라고 위안을 삼았지만, 아무리 작은 사고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 안전하지 않은 여행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고단한 몸을 싣고 고속버스가 터미널을 빠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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