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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환 Sep 27. 2024

우리네 삶을 품어준 낙동강 3

(‘23. 9. 5. ~ 9. 8.)

이른 새벽, 부상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우포늪을 다녀온 춘이 아우가 우리들의 마음을 가볍게 하는 아침이다. 정말 다행이다.  아침 8시에 창녕함안보로 향했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힘든 박진고개와 영아지고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박진고개


박진고개는 공도이기 때문에 길이 넓고 노면 상태가 골라서 초입은 생각보다 그리 힘들지 않다. 그러나 강을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가면서 박진고개는 조금씩 그 악명을 떨치기 시작한다. 도로의 경사도가 10%를 넘어서면서 라이딩의 한계에 도달했다. 끌바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가는 일행은 여전히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고 버티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일흔이 넘은 열이 형이 가장 앞서 달리고 있다. 그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 부럽기 그지없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이럴 땐 그 알량한 자존심은 버려야 한다. 잠시 쉬었다 가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가파른 도로 오른쪽에는 시멘트 벽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벽면에는 이곳을 지난 라이더들이 쓰고 갔을 낙서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 함께 이  길을 넘었던 친구들과 연인, 가족들의 이름들이 날짜와 함께 빼곡히 박혀있다. 고개를 넘으며 힘들었던 심정을 뱉어낸 글귀도 보인다, 심지어 욕설도 있다. 그 마음들이 지금 내 마음인가 싶어 재밌고 공감이 간다. 덕지덕지 남아있는 라이더들의 흔적을 따라 약 1.5km 박진고개 정상에 힘들게 다다랐다. 산을 끼고돌아 나오는 낙동강 물줄기가 발아래 용트림을 하며 길게 펼쳐진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강은 나란히 달리면서 보던 강과는 또 다른 맛이다.


정상에 있는 인증센터에서 잠시 쉼표를 찍고, 바람을 가르며 내려가는 길은 더없이 짜릿한 행복을 준다. 물 흐르듯 흘러가는 두 바퀴의 행복도 잠시, 또다시 악명 높은 영아지고개가 떡 하니 버티고 서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동료들은 우회로를 단호히 뿌리치고 고갯길을 택한다. 이젠 나도 우회로의 유혹은 아예 떨쳐버리기로 했다.

박잔고개와 낙동강

영아지고개


영아지고개는 산중에 난 인도로, 자도(자전거길)로 조성된 길은 아니다. 초입부터 경사가 어마어마해서 끌바를 하지 않고는 갈 수 없다. 조금 오르니 그래도 완만한 경사가 나온다. 다시 자전거에 몸을 실어 보지만,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이 울퉁불퉁해서 라이딩이 쉽지 않다. 돌아보니, 박진고개는 영아지고개에 비하면 양반 길이었다. 핸들을 부여잡고 오르는데,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참기조차 힘들다. 땀에 젖은 옷이 비를 맞은 듯 축축하다. 그래도 숲 속으로 이어지는 길 정상에 자리한 정자가 잠시 쉼표를 찍게 해 준다. 짜릿한 행복을 주는 쉼터다.


영아지고 개는 내려가는 길조차도 절대 속도를 낼 수 없는 길이다. 특히, 마지막 내리막 길은 워낙 급경사여서 조심하지 않으면 자칫 사고로 이어질 정도로 위협을 준다. 영아지고개는 라이더들을 끝까지 괴롭히는 재미로 존재하는 고갯길인가 보다.

영아지고개

우리가 만난 외국인들


영아지고갯길을 무사히 벗어나니 무인카페가 나온다. 기쁜 마음으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카페에는 남녀  명 정도 되는 외국인들이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어디서 왔는지 물으니, 싱가포르에서 왔단다. 종주길에서 외국인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외국인이 단체로 한국에 자전거를 타러 온 것은 처음 보는 광경이라 사뭇 놀랐다. 그들의 복장과 자전거를 볼 때 전문 라이더임이 분명해 보인다. 일주일 일정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국토종주를 하는 중이란다. 일행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자분이 자신의 나이가 72살이라며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우리 열이 형과 갑장이다. 그 나이에 해외원정 리이딩이라니, 대단한 노익장이다. 엄지 척으로 그의 자부심을 치켜세웠다. 무리 중에는 이삼십 대 여성도 서너 명이 동행하고 있다. 그들의 멋진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국토종주를 마무리하고 나면 해외로 라이딩을 떠나는 꿈을 얘기했다. 열혈청춘이 꿈꾸는 행복이다.

무인카페에서 만난 여인?!!

어제부터 그 힘들다는 네 개의 고개를 모두 넘고 나니 낙동강이 더욱 친숙하게 다가온다. 출렁이는 낙동강물이 행복을 노래하고 있다. 낙동대교를 지나 창녕함안보에 도착해서 인증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한 여성 외국인이 다가와 자전거 펑크가 났다며 도움을 요청한다. 두 명의 여성라이더였는데, 이들 역시 싱가포르에서 왔다고 했다. 우리가 조금 전에 만난 일행을 얘기했더니, 그들과도 아는 사이인데 둘은 별도의 계획으로 라이딩을 하고 있다 한다. 우리 일행도 이런 위기 상황을 원만하게 대처할 만한 자신은 없었지만, 도움의 손길을 피할 수 없어 우왕좌왕했다. 그때 4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외국인 여성라이더가 다가오더니,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묻는다. 상황을 얘기하니 서슴없이 도와주겠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장비를 가져와 10여 분 만에 능숙하게 펑크를 수리해 낸다. 우리 모두를 놀라게 한 그녀는 미국 시애틀에 사는 여성으로, 20일 일정으로 혼자서 국토대장정을 하고 있다 했다. 자전거 뒤에 갖은 장비를 싣고, 등에는 커다란 백팩을 짊어진 그녀는 진정한 전문 라이더였다. 우리 모두 고마운 마음을 사진 한 장에 담고, 밝은 웃음으로 떠나는 그녀와 덕담을 나눴다.


Hey, beautiful lady! You are a true Savior to us.

We really appreciate it. Have a safe and happy ride.


다시 자전거에 몸을 싣고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이 아름답다.

우리가 만난 외국인

오늘 우리가 만난 외국인들을 보며 우리나라 자전거길이 대외적으로 위상이 높아졌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우리 라이더들이 가보고 싶어 하는 나라로 흔히, 대만과 일본 등을 꼽는다. 사실, 우리나라의 이런 인프라라면 그들 나라와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향후 더 많은 해외 라이더들이 우리나라를 찾을 수 있도록 관계 당국의 보다 적극적인 관심이 절실하다.


낙동강 8개의 보


낙동강은 대대로 영남지역의 젖줄로, 4대 강 사업을 하면서 상류 상주보를 시작으로 8개의 보가 설치되었다. 낙동강 종주를 하면서 또 다른 즐거움은 낙동강 여덟 개의 보를 만나는 일이다. 각 보는 그 모양이 제 각각으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거북이 형상을 한 구미보, 낙동강 12경 중 하나로 꼽히는 강정고령보, 항해하는 크루즈를 형상화한 달성보, 따오기를 상징하는 합천창녕보 등 보마다의 특징 있고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특히, 이 보들은 자전거 라이더들 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들의 휴식처로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각 보에는 인증센터가 있어 라이더들의 쉼터 역할을 한다. 잠시 땀을 식히며 둘러볼 때마다 그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규모만큼 이들 보 공사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있었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게 한다.


그러나 4대 강 정비 사업의 규모가 가장 큰 강인만큼 그 폐해도 적지 않다고 한다. 보 건설로 녹조가 심해지고 있고, 낙동강 보 주위 농토의 지하수 수위가 크게 상승해서 침수가 되기도 하고, 설작업으로 인해 낙동강의 많은 모래톱이 사라지는 등 환경적인 측면에서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 얼마나 힘들고 중요한가를 대변해 주고 있는 듯싶다.


낙동강의 각종 보

세 개의 물결이 일렁이는 삼랑진


창녕함안보를 지나 하류로 갈수록 하폭이 넓어지고 있다. 낙동강 하굿둑이 멀지 않았음을 강은 몸으로 얘기하고 있다. 강둑을 따라 핀 코스모스가 익어가는 가을을 노래하고, 넓게 트인 강이 힘든 여정의 땀을 씻어준다.


삼랑진교와 낙동강변

오후 5시경 삼랑진에 도착했다. 삼랑진(三浪津)은 낙동강과 밀양강이 바닷물과 만나 ‘세 개의 물결이 일렁이는 나루’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뜻을 새기니 그 이름이  이쁘다.


잠시 강변 정자에 앉아 도도하게 흐르는 낙동강 큰 물을 바라본다.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노쇠한 삼랑진교가 길게 누워 있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그를 품에 안고 쓰다듬고 있다.


그 옛날 삼랑진은 숱한 사람과 물자가 이 물길 따라 들고 날던 중심지였다. 흐르는 강물은 곧 우리 민족의 역사이고 숨결인 셈이다. 삼랑진읍은 그 옛날 화려했던 명성에 비하면 쇠락한 모습이다. 새로 지어진 삼랑진역이 100여 년 역사의 영화를 이어가고 있고 읍내는 깔끔하게 정비된 느낌이지만, 굳게 닫혀있는 가게, 폐허가 된 건물들이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아프게 한다. 역 주변에는 숙소 하나 제대로 찾을 수 없다. 물어 물어 안태호 하류 관광단지에서 낙동강 사흘째 일정을 마무리했다.


삼랑진 세 개의 물결이 부르는 자장가가 낯선 객들의 지친 육신을 다독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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