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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일기 Apr 29. 2024

역시나 범은 한국을 대표하는구나

- 범이 전하는 풍부한 과실의 감미, '범표생막걸리9도'를 음주해 보았다

'범'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는 호랑이의 순 우리말로서, 일반적으로 '호랑이'라는 단어가 좀 더 입에 익다 보니 호랑이를 순 우리말로, '범'을 한자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으나 오히려 그 반대가 정답이다. 오늘은 이 '범'을 가운데에 떡하니 박아놓은 술을 가지고 왔다. '범표생막걸리9도', 얼핏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이 막걸리는 어떠한 맛과 향을 보여줄지, 기대와 함께 뚜껑을 열어보도록 하자.

범이 전하는 풍부한 과실의 감미, 범표생막걸리 9도

겉으로 드러난 외관부터 심상치 않다. 고급스러운 유리로 만들어진 둥그런 병을 따라 긴 띠지가 둘러져 있으며, 병목의 끝 부분은 'BEOMPYO'라고 쓰인 멋들어진 깃발과 함께 코르크마개로 마무리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어서 전면부로 시선을 옮기면 상당히 화려한 디자인을 볼 수 있는데, 다양한 색을 이용함과 동시에 사슴부터 첨성대, 거북선 등 우리나라를 표현하는 상징물들을 여럿 그려 보는 사람들이 이목을 집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 물론 고고히 술잔을 들이키고 있는 범만 하겠냐만은, 전체적으로 한국이 가진 전통의 미에 MZ세대의 캐릭터성을 더한 것 같은 아주 매력적인 도안이다.


'범표생막걸리 9도'는 '범표주조'에서 화학성분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쌀과 누룩, 물 만을 이용해 탄생시킨 막걸리로서, 쌀 중에서도 모든 사람에게 이름을 날리고 있는 이천 쌀을 원재료로 빚어냈다.


레시피 연구에 26,280시간, 18차 샘플링, 126회의 테이스팅이라는 긴 과정을 거쳐 태어났으며, 이렇게 모든 것을 쏟아부어 선보인 작품은 알싸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으로 감탄을 자아내도록 만든다고 한다.


제품의 용량은 500ML, 도수는 9도, 가격은 12,000원. 혼자 마시기에도 좋고, 둘이 마시기에도 충분한 양과 일반적인 막걸리 보단 약간 높은 알코올 함유량, 한 병 가격치곤 조금 비싼 금액을 지녔다. 물론 어디까지나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 기준이지, 개인적으로 최근 출시되는 막걸리들을 보면 이 정도 값은.. 꽤나 무난하다고 여겨진다.

잔에 따른 술은 병 안으로 보이는 것처럼 어느 정도 짙은 빛깔을 뽐낸다. 잘 섞어서 나온 막걸리답게 상당한 탁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무게감 있는 술방울은 벽을 천천히 쓸어내리며 떨어진다.


코를 가져다 대니 달콤하면서도 고소한 향이 잔으로부터 흘러나온다. 멜론, 배, 참외에서 느낄법한 감 향을 시작으로 쌀의 고소함이 얼굴을 드러내고, 끝에 가서야 씁쓸함이 살짝 감돈다. 일반적인 막걸리보다 높은 도수를 가지고 있음에도 알콜은 거의 느껴지지 않으며, 과실의 감향이 중심이 됨에도 가볍지 않게 막걸리라는 술의 특색을 선보이고 있어 코를 떼기가 어렵다.


이어서 한 모금 머금으면 부드럽고 적당히 크리미한 막걸리가 혀를 감싸 안는다. 참외에서 느낄 수 있는 달달한 과실의 감미를 시작으로 약간의 씁쓸함이 혀를 스치고, 동시에 코에서는 술이 가진 감향을 펼쳐낸다. 탄산이 없는 것도 없는 것이지만 술 자체에 텁텁함까지 없어 구름 같은 질감으로 혀에서부터 목구멍까지의 과정이 진행되는데, 첨가물이 없음에도 두드러지는 달달함은 익숙한 과일을 담지 않았나 하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살짝 무거운 바디감에 입 안에서 퍼지는 풍부한 과실의 풍미가 굉장히 매력적이다. 고운 질감으로 이어진 목넘김 후에는 감미와 고소함, 목구멍 쪽에 미미한 씁쓸함을 남겨 놓으며, 코에는 여전히 감 향이 헤엄치고 있다. 이 때 후미의 길이는 약 4~5초 정도이고, 깔끔한 마무리를 지니고 있어 여운을 감상하기에도, 다음 잔을 준비하기에도 불편함이 없다.


흔히 말하는 호불호가 전혀 갈리지 않을 것 같은 탁주이다. 잘 빚어낸 막걸리가 가져다준 향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고, 그 향을 업고 피어난 맛은 눈을 감도록 만든다. 풍성하게 자리 잡은 과실은 코와 혀를 만족시켜 주며, 눈을 마시는 듯한 질감은 인공적이지 않은 단 맛과 합쳐져 끝까지 부족함이 없도록 도와준다. 각 재료들의 향미가 지나친 것 하나 없이 자신의 자리에서 조화를 맞추고 있는 술이기에 본인이 탁주를, 그 중에서도 특히 달달한 막걸리를 좋아한다면 언제 마셔도 만족스럽지 않을까 싶다.


곁들일 안주로는 두부김치를 추천한다. 사실 매콤한 음식을 비롯해 막걸리 안주라면 다 잘 어울릴 술이나, 그렇게 하면 음식의 맛이 진해 술의 맛을 비교적 덜 느끼게 될테니 아무래도 담백한 안주가 나을 것이다.


'범표생막걸리9도', 화려한 디자인 안에는 훌륭한 작품이 숨겨져 있었다. 글을 쓰려고 잔을 들었는데 반 병을 비워버렸다.


판매처에 따라 가격이 그렇게 다르지 않다. 보이는 곳에서 구매하면 될 듯하다.


긴 정성이 들어간 '범표생막걸리9도'의 주간평가는 4.3/5.0이다. 역시 '범'은 한국을 대표하는 것이 맞다.


         주간일기의 모든 내용은 개인적인 평가임을 명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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