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하게 풍기는 밤향의 여운, '밤꽃향기'를 음주해보았다.
겨울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신이 찾아왔다는 것을 알린다. 그것은 하얗게 내리는 눈이 될 수도 있고, 사람들의 옷차림이 될 수도 있으며, 길가에 세워져 있는 붕어빵 리어카가 되기도 한다. 최근 나는 겨울이 왔음을 이 붕어빵과 비슷한 ‘군밤차’로 알게 되었는데,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듯한 정겨운 풍경을 보니, 그 날 따라 한 봉지 사 먹은 군밤이 더욱 달게 느껴지더라.
여하튼, 오늘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밤이 든 술을 한 병 가지고 왔다. 밤 하면 곧장 생가나는 ‘공주’에서 온 친구인데, 이름부터 아주 밤꽃내음을 풀풀 풍기는 작품이다. ‘밤꽃향기’, 과연 태어난 고향의 맛을 간직하고 있을지, 기대와 함께 음주해보도록 하자.
진하게 풍기는 밤향의 여운, 밤꽃향기
일단 병 자체는 흔하게 볼 수 있는 형태로, 두툼한 몸통에 딸려 올라가는 병목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끝 부분의 마개는 십장생의 동물들이 그려진 포장지로 싸여져 있으며, 병 안으로는 이름 그대로 짙은 밤 색깔이 도드라지는 술이 은은하게 잠들어있다. 전면부엔 밤 그림과 함께 술의 이름, 간단한 설명들을 확인할 수 있는데, 글자체나 그림이나 아기자기하면서도 한국의 멋을 담고 있는 것이 마시는 사람으로 하여금 친숙함을 느낄 수 있도록 잘 만들어졌다.
‘밤꽃향기’는 충남 공주시 ‘사곡양조원’에서 단단하고 잘 여문 당도 높은 공주밤과 공주쌀을 저온발효하여 숙성한 후, 그것을 다시 여과해 탄생한 맑은 술이다.
마개를 열자마자 술에서 풍기는 진한 밤향에 놀라게 되고, 이후 부드러운 목넘김에 한 번더 감탄하며, 마지막으로 입안 가득 차오르는 밤의 잔향에 만족하게 되는 작품이라고 한다.
술의 용량은 375ML, 도수는 13.5도, 가격은 7,500원. 혼자 마시기도 좋고, 둘이 마시기에도 나쁘지 않은 양에 일반적인 희석식 소주보다 조금 적은 알콜 함유량, 최근 출시되는 전통주와 비교하면 크게 부담되지 않는 금액을 가졌다.
잔에 따른 술은 잔 안에서 보이던 것 보다 한 껏 옅어진 상태로 일렁인다. 짙은 밤색을 하고 있으나 상당히 투명한 면모를 지녔고, 이물질 하나 없는 깔끔한 표면은 술의 질감을 예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병 안에선 조금 투박한 느낌을 가져다 주었던 것과는 달리 맑은 어두움을 끌어안고 있다.
이어서 코를 가져다 대면 풍부한 밤향이 흘러나온다. 밤과 누룩, 그슬린 곡식의 고소한 향과 약한 소곡주 내음이 쿰쿰한 옷을 껴입고 나타나며, 밤의 껍질부분과 알멩이가 7:3 정도로 자리잡고 있다. 낮다고만 말할 수 있는 도수는 아님에도 알콜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모습이고, 확실히 밤을 이용한 술 답게 다른 향들보단 전반적으로 텁텁한 밤 향기가 코를 가득 채우는 상태이다.
잔을 들어 술을 한 모금 머금으니 예상치 못하게 소곡주 맛이 먼저 튀어나온다. 비교적 밤이 좀 더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향과는 달리 맛에 있어서는 7:3 정도로 소곡주가 높은 비율을 가지고 있으며, 이 소곡주 특유의 과실이 보여주는 감미로 혀를 먼저 감싼 뒤에서야 씁쓸함과 쿰쿰한 밤의 향미가 혀뿌리와 코를 건드린다. 질감 자체는 생각했던 것처럼 부드러우나, 소곡주의 앞서는 맛 사이에 간신히 얼굴을 비추는 주연의 역할은 어쩔 수 없이 아쉬움을 남기는 듯 하다.
매끄러운 목넘김 이후에는 밤의 특징이 입 안에 머금었을 때 보다 좀 더 살아 있다. 여전히 머무르는 단 맛에 씁쓸한 알콜, 거기에 약간 그슬린 밤의 풍미가 코와 입에 남는다. 이 때 여운의 길이는 약 5초 정도로, 예상보다 코에 머무는 잔향의 시간이 길어 그래도 역시 마지막은 주연이 마무리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도록 한다. 개인적으로 그윽하게 코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잔향은 꽤나 만족스러웠다.
전체적인 맛매를 보았을 때 맛이 없거나 부족한 작품은 전혀 아니다. 알콜이 크게 튀어나오는 것도 아니고, 맛들 중 하나가 도드라져 얼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다만 향과, 맛, 여운 순으로 생각하였을 때 '맛' 부분에서 밤의 활약이 너무 부족하지 않나 여겨진다. 더군다나 향에서 어느정도 기대를 끌어올려놓은 상태이기에 느껴지는 아쉬움이 수위가 더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소곡주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 밤까지 들어 있는 술을 마시고 싶다고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수도.
만약 음주할 계획이 있다면 안주는 도토리묵, 더덕무침 등을 추천한다. 단 맛도 있고, 밤의 풍미도 있기에 다른 음식보단 한식과 좀 더 잘 어울릴 것이라고 예상된다.
소곡주와 밤, 그 두가지를 한 번에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자신의 취향을 잘 생각해보고 선택하면 좋을 듯 하다.
판매처에 따라 가격이 10% 정도 상이하다. 가능하면 잘 살펴보고 구매하도록 하자.
밤향이 물씬 피어나는 '밤꽃향기'의 주간평가는 3.7/5.0 이다. 그 향이 혀에도 진하게 머물었다면..
주간일기의 모든 내용은 개인적인 평가임을 명심해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