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상규 Dec 16. 2022

대전집 칼국수 아들

대전은 칼국수로 세계적인 도시가 될 것입니다.

얼마 전 수업을 다녀왔습니다.

프리랜서 입장에서 참 고등학교 대체강사로 나간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 소비자 (학생) 들이 어떤 수준인지, 어떤 것을 원하는지, 어떤 것을 배웠는지 감도 안 잡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수업의 질, 난이도, 강도를 정하는 일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그냥 내 마음대로 하자.


그래도 잘 준비해봤습니다.

주된 메시지는?

너희들이 대전을 바꿀 것이다.


그렇게 정한 것이

들기름 비빔 칼국수입니다.


대전에 사는 친구들임에도 자신들의 특산물을 발전시키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한식이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들을 열거해보면,

우리 할머니가 만들 수 있는 음식이어서
특별한 날 먹기엔 뭔가 애매해서
세계적으로 나가기에 레시피가 통일되지 않아서
etc

라고 하지만...

결국 우리 것을 아끼는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것이 최고라는 그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물어봤습니다.

"대전의 자랑거리를 한 번 써보고 알려주세요."

학생들에게서 나온 답들은 비슷비슷합니다.

"과학의 도시 , 엑스포 , 보문산 , 장태산 , 대청댐 , 성심당...... 칼국수 요."

제가 물어봅니다.

"대전은 그것들을 활용해서 세게에서 멋진 도시가 될 수 있을까요?"

1초 만에 답은 돌아옵니다.

"아니요."



물론 저도 쉽지 않다고는 생각합니다. 진심으로요. 바꾸려면 50년은 족히 걸릴 듯합니다. (스타벅스가 올해로 생긴 지 51년 됐더라고요.)

50년이라는 세월보다 어려운 것은

50년간 붙잡아둬야 하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과의 협업과 또 방해세력과 이해 못 해주는 분들과 답답하다고 뜻을 꺾는 사람들과 그 다수의 에너지와 싸우는 소수의 에너지로 시작해야 하는 것과 실질적으로 바꾸기 위해서 정치, 경제, 산업 전반적으로 바꿔가야 하는 것과 기타 등등 지금의 저로써는 가늠도 할 수 없는 영역들이 방해를 하겠죠. 그럼에도 웃기잖아요?

뭐가 웃기냐면요


네이버에 들기름 막국수 치면요 - 고기리 들기름 막국수가 나옵니다. 한동안 히트를 쳤었죠.

그리고 연관검색어에 나오는 것은 들기름 파스타입니다. 그 들기름 파스타들의 이미지를 보면요. 그저 '한식'입니다. 한식적인 이미지에 들기름'파스타'라는 네이밍이 잘 팔린다는 것은 마케팅 적인 측면에서 충분히 납득이 됩니다. 그러나 식문화적인 측면에서 이탈리아가 평생을 '파스타' 하나로 세상을 지배해 갔다면, 우리의 파스타와 무엇이 그렇게 다르냐는 것입니다.

면 반죽? 칼국수 면 반죽에 계란 넣으면 안 될까요?
내용물? 쌀국수에도 토마토를 넣는데 토마토 칼국수는?
파스타도 할머니들이 칼로 면을 썰었다면 칼국수랑 비슷한 거 아닌가?
.
.
.

그럼에도 '인식'이라는 것이 있겠지만요.

가격을 높이자는 그런 쉬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칼국수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우리는 좋은 식문화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방법은 계속 마련해보자고요...

힙하고 재밌고 신명 나는 방법으로


그리고 그 원리 그대로 대전에 살고 있는 그 학생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이 대전을 살리고,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요"

라는 대답이 너무 쉽게 나와서 놀라버린 저입니다.


그 원대한 꿈 앞에 무너질 수는 있지만, 어떻게 장난으로라도 말할 수 없는 꿈이 되어버린 걸까.

그들의 그 장난기조차도 막아버린 무언가는 무엇일까.

'장난' 은 우리가 달나라도 가고, 어벤저스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좋은 도구임에도 이 학생들에게는 어떤 계기들이 그 '장난' 조차 허락 못하는 무기력으로 드러났을까


마음이 아플 뿐입니다.

그럼에도 더 마음이 아픈 것은 함부로 그 꿈을 주기에 나는 1주일만 다녀오는 시간 강사라는 것입니다.


한 그루의 나무를 성장시키는데 여행객이 어떻게 성장시키겠습니까 그 자리를 지키는 그 동네의 주민만이 나무를 성장시키듯 함부로 아이들에게 꿈만 주고 떠난다면 아이들은 공상, 허상이라며 또 무기력에 빠질 수도 있겠죠.

꿈을 주었다면 함께 짐을 짊어질 수 있는 어른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오늘도 그 아이들이 그런 어른이 될 수 있도록 함께 짐을 짊어지고 싶긴 합니다만, 노력할 뿐입니다.

떡 수업 이야기도 조만간 하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혀에 암이 생긴 셰프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