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는 못 만들고, 치즈는 만드는 현실의 여파에 대하여
필자는 조리과를 전공한 지 15년이 되어간다. 조리산업에 투입된 지는 7년 정도 넘어가는 것 같다.
그 와중에 내가 배울 때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리코타 치즈'였다.
우유에 산을 첨가하면 우유의 단백질들이 엉겨 붙는다. 그 단백질들만 건져낸 뒤 물기를 빼주면 리코타치즈가 완성된다. 우유와 생크림을 섞으면 그 안에 지방함량이 높아져 결과물로 나온느 리코타치즈 또한 지방함량이 높은 치즈가 되고, 퍼석함에서 좀 더 부드러운 치즈로 완성이 된다.
그렇게 요리를 즐겁게 배우던 어느 날 그냥 무심코 떠오른 '어느 날'이 있다.
중학생 2학년 때쯤인가...
두유에 바닷물을 넣으니 단백질이 엉겨 붙어 순두부와 같이 되고, 그것을 굳혀 두부와 같이 만드는 것이다. (두부와 같은 것이 아니라 실제 두부이긴 하다.)
그때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치즈는 만들지만, 두부는 못 만들었다.'
아니 솔직히, 그리고 자세히 말하면 이게 맞을 것 같다.
'나는 치즈 만들 때는 양식을 배운다는 생각에 설렜지만, 두부를 만들 때는 그저 시장에서 파는 흔한 두부를 만든다는 생각에 설레지 못했다. 서양음식이 더 훌륭하다는 잘못된 사대주의에 빠져있었다.'
우리의 일상은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우리의 일상은 가볍게 여기면서, 가끔 있는 여행에 설레하진 않는가.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흔하게 여기면서 남들이 갖고 있는 것을 가졌을 때 설레지 않는가.
우리는 해외의 것은 귀하다 하면서 국내의 것은 평범하게 여기지 않는가.
우리는 남의 재능은 귀하다 여기면서 나의 재능은 평범하다 여기진 않는가.
우리는 우리 도시의 명물은 지나가면서 남의 도시의 명물을 보기 위해 비싼 돈을 지불하진 않는가.
그런 우리에게 발전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성장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왜냐하면 그런 두부는 발효식품이 대중화되지 않았다. 취두부 때문이라고? 블루치즈를 먹어봤을까. 냄새가 엄청 강하다 못해 (비속어이지만,) 너무나도 힘든 염소치즈는 먹어봤을까. 나는 먹다가 뱉은 경험도 있다.
리코타치즈는 생치즈이다. 평소 우리가 먹는 두부와 비슷하다. 그리고 대부분 우리가 알고 있는 치즈들은 발효식품이다. 그러나 두부는 절대 없다. 발효두부에 대한 연구는 없었던 것이다. 혹은 그 문화를 만들기 위한 여러 노력은 없었던 것이다.
내가 진행했던 프로젝트가 있었다. 이름은 '두부사태'이다.
대중들이 치즈에 비해 낮게 평가하는 (혹은 조금 저렴하게, 혹은 조금 평범하게) 두부와 삼겹살과 목살에 비해 소비가 안 되는 '사태살'을 이용하여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두부는 누룩소금을 활용하여 발효두부를 만들었고, 사태살은 수비드와 간장양념을 활용하여 장조림풀드포크를 만들었다.
맛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왜 안 할까 싶을 정도였다.
우리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왜 제한하는가. 정확히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제한하는 이유는 정말 그것이 가능성이 없어서일까. 혹은 내가 잠재력을 못 보는 것일까.
우리는 나의 재능에 대해서 왜 제한하는가.
우리는 나의 친구에 대해서 왜 제한하는가.
우리는 나에 대해서 왜 제한하는가.
정확히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제한하는 이유는 정말 그것이 가능성이 없어서일까. 혹은 내가 잠재력을 못 보는 것일까. 남을 부러워하는 시기와 질투에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음을 갈망하는가. 혹은 시기에 파묻혀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오늘은 두부도 발전할 수 있음에. 서양에선 두부를 높게 평가함에. 내가 누군가에게는 높게 평가됨을 알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