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희
내 안의 사랑은
빈집 한채를 끌어안고 산다
수돗가 세숫대야의 물을 받아먹고 살던
향나무 한분이 사랑채 지붕으로 쓰러진 건
그대가 떠나간 뒤부터다
툇마루에 옹이가 빠져나가고
그 안으로 동전과 단추가 사라진 집은
고양이의 울음소리로 조심스러워졌다
툇마루 옹이 빠진 구멍 속
거미의 눈으로 바라보는 내 안의 사랑은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
먼 산으로 돌아앉은 그대
별을 세다가 새벽을 놓치고
쓰르라미 울고
---안희연, 황인찬 엮음,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 2024, 중에서
박경희 시인은 2001년 『시안』신인상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시인은 시골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글쓰기를 하고 있으며, 그 아이들을 통해 눈이 밝아지는
느낌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그만의 슬픔을 걷어내는 방식이 가히 독보적이다"라고 안상학 시인은
박경희 시인의 시를 말합니다. 시인의 곁을 떠난 분들이 아프고 슬펐고, 그 아픔이 얼마만큼의 깊이를
가졌는지 모를 정도의 뒤틀린 모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시인의 시를 읽으며 사랑이 죽음을 이길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 떠올랐습니다.
그 선택의 무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종종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애쓰지만, 그 선택이나 결정이 정말 옳은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끝없이 우리 마음속에 남습니다. 『me before you』의 한 장면에서는 그런 선택의 무게와 그로 인한 갈등이 깊이 묘사됩니다. 주인공이 내리는 선택은 단순히 그 사람의 삶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책임, 자유와 억압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감정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No. I want him to live.”
“But - ”
“But I want him to live if he wants to live.
If he doesn’t, then by forcing him to carry on, you, me- no matter how much
we love him – we become just another shitty bunch of people taking away
his choices. “
Nathan’s words reverberated into the silence.
I wiper a solitary tear from my cheek and tried to make my heart rate
return to normal.
Nathan, apparently embarrassed by my tears, scratched absently at his neck,
and then, after a minute, silently handed me a piece of kitchen roll.
“I can’t just let it happen, Nathan.”
He said nothing.
“I can’t.”..... p. 401, 『me before you』 중에서
이 장면에서, 네이선은 그 사람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가 살고 싶어 한다면 살게 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그를 강제로 끌고 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죠. 이 말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를 위해 무엇이 최선일지를 강제로 결정하는 것일까?" 이 두 가지는 언제나 충돌하는 감정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너무 많은 감정을 쏟고 싶고, 그가 괴로워하는 모습에 가슴이 아프지만, 결국 그 사람의 삶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권은 그에게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가 살고 싶으면 살아야 해"라는 네이선의 말은 이 대목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을 전해줍니다. 그의 말속에는 강한 애정과 이해가 담겨 있습니다. 그는 단순히 상대방을 놓아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그에게도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그 내면의 갈등이 느껴집니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냥 두고 싶지 않아"라는 주인공의 고백은 애절함과 절박함을 담고 있습니다. 그 사랑이 깊을수록, 상대방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더 어려운 법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고 싶고, 그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돕고 싶지만, 결국 그 사람의 선택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또 다른 종류의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자유를 인정하는 고통이자, 동시에 그 사람이 더 이상 내 곁에 없을 수도 있다는 불안함입니다.
이 장면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단순히 한 사람의 고백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보편적인 갈등을 반영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엇이 가장 좋은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그 사람의 선택을 존중하고,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가장 큰 사랑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주는 길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이 이야기는 사랑이란 무엇인지, 그 사랑이 가져오는 책임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사랑은 단순히 서로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때로는 그 사람의 삶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그의 선택을 존중하는 과정임을 깨닫게 됩니다.
존엄의 죽음과 선택의 자유
『미 미포 유』는 사랑과 죽음, 선택의 자유에 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소설입니다. 2012년 발행된 영국의 소설로 작가 조조 모이스가 집필했고, 2016년에 영화화되었습니다.
주인공 윌 트레이너는 교통사고로 인해 전신 마비 상태에 빠지게 되면서, 삶의 의미를 잃고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일자리를 하루아침에 잃은 루이자 클라크. 둘은 환자와 간병인으로 만나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며 이끌립니다. 그의 삶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루이자, 그리고 그가 겪는 내적 갈등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깁니다. 윌의 죽음을 선택하려는 결단은 단순히 끝이 아닌, 삶과 존엄,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선택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합니다.
윌은 더 이상 그가 알고 있던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고 느낍니다. 그의 몸은 무력해졌고, 세상과의 연결은 끊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런 삶에서 더 이상 의미를 찾지 못합니다. 그에게 있어서 삶은 단순히 고통의 연속이었고, 그 고통을 지속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 일인지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결국 그는 자살을 결심하며, 그 결정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루이자와의 관계를 이어갑니다. 윌의 선택은 단순히 죽음을 향한 것이 아니라, 그가 잃어버린 존엄을 되찾고자 하는 갈망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는 더 이상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것보다,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자신에게 더 큰 존엄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루이자는 윌이 그런 결정을 내리기 전에 그에게 삶의 의미를 다시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어 합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그가 살아야 한다"는 강한 열망이 존재합니다. 그녀는 윌을 사랑하고, 그의 고통을 이해하지만, 그가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루이자에게 윌은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을 넘어서, 또 다른 가능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녀는 그의 삶에서 여전히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믿고, 그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노력으로 그의 결정을 반대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바라보는 것은 고통 그 자체입니다. 그녀는 윌이 살아가기를 바라고, 그가 여전히 삶에서 무엇인가를 찾을 수 있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루이자가 놓치고 있는 것은, 윌이 그토록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이유가 단지 그가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윌은 자신이 더 이상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유와 선택의 권리를 되찾고자 합니다. 그에게 있어 삶은 단순히 숨 쉬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된 존엄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고통 속에서 살아가기를 원할 수 있고, 또 어떤 이들은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들의 선택을 강요하거나, 그들의 결정을 대신해주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들만의 존엄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모습일 것입니다.
루이자의 윌에 대한 사랑은 너무나 깊고, 너무나 순수하기 때문에, 그녀는 그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윌의 존엄사 결정을 존중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고통 속에서 존엄을 잃고 싶지 않았고, 그 선택이 그의 마지막 존엄을 지키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내 심장에 깊이 새겨져 있어요, 클라크. 처음 걸어 들어온 그날부터 그랬어요.”
--- p.565, 『미 미포 유』 중에서
이 소설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전합니다. 존엄은 단지 육체적인 상태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이 자유롭고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된 상태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놓아주는 것은 가장 큰 사랑일 수 있으며,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존엄을 지키는 길일 수 있습니다. 루이자는 윌을 사랑했고, 그가 살아가길 바랐지만, 결국 그녀는 그의 선택을 존중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삶의 끝을 맞이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고통 속에서도 살아가며, 마지막까지 존엄을 지킬 수 있을까요?
아니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질 수 있을까요?
이 소설은 그 선택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우리에게 선물합니다.
존엄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때때로 사랑하는 사람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삶의 선택과 자유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저서에서 비욘 나티코 린데발드(Bjorn Natico Lindeblad, 1961~ 2022)는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문제 중 하나인 존엄에 대해 탐구합니다. 그는 우리 각자가 역사 속에서 자신만의 자취를 남기며,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기대가 아닌, 바로 ‘자신의 선택’ 임을 강조합니다. 린데발드의 말처럼, “존엄은 단지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미 미포 유』의 주제와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윌의 선택은 단순히 죽음을 향한 결정이 아니라, 그의 삶에서 존엄을 찾고, 그가 원했던 자유를 되찾으려는 과정입니다. 그의 결단을 이해하려면, 린데발드가 이야기하는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의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이 떠납니다’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떠난 나티코 린데블라드.
수많은 스웨덴인들을 불안에서 끌어내어 평화와 고요로 이끌었던 그는 루게릭병에 진단받은 후에도 유쾌하고 따뜻한 지혜를 전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젊은 시절 사회적 성공을 거뒀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숲 속으로 17년간 수행을 떠났던 저자의 여정과 깨달음, 그리고 마지막을 담은 책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에서 린데블라드는 '존엄'을 단순히 외부의 평가나 사회적 기준으로 정의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는 존엄을 개인이 자신의 삶에서 주도권을 갖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능력에서 찾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존엄은 단순히 생명 유지의 문제나 물리적 고통을 넘어서,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근본적인 권리와 맞닿아 있습니다. 이는 윌 트레이너의 이야기와 일치합니다. 윌은 사고로 인해 전신 마비 상태에 빠져, 더 이상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없다고 느낍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결국 자신의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그 선택의 자유를 되찾으려 합니다.
윌의 선택은 단순히 비극적인 죽음의 결정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정의하는 과정에서의 마지막 시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외부의 도움을 받거나, 타인의 기대에 맞추어 살아갈 수 없다고 느끼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과 죽음을 조율하고자 합니다. 그의 결정은 그 자체로 존엄을 지키려는 몸부림이었습니다. 윌은 자신의 삶의 역사를 스스로 결정하려 했고, 그의 선택이 바로 그의 존엄을 지키는 방식이었습니다.
루이자는 처음에는 윌의 선택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지만, 결국 그녀는 그가 자신의 역사와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루이자의 선택은 단지 감정적인 반응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며, 이는 그녀 자신의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이 됩니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뿐만 아니라, 윌의 선택과 자유를 존중하는 성숙한 사랑을 보여줍니다.
“갈등의 싹이 트려고 할 때, 누군가와 맞서게 될 때, 이 주문을 마음속으로 세 번만
반복하세요. 어떤 언어로든 진심으로 세 번만 되뇐다면, 여러분의 근심은 여름날 아침 풀밭에 맺힌 이슬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p. 130,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중에서
“우리가 삶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사랑하는 이들 곁에 영원히 머물 수 없음을 머리로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이해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더는 이만하면 됐다고 믿으며 살아갈 수 없게 됩니다. 그날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모든 사람과 반드시 이별할 것입니다. 그것만이 확실하며 그 외의 나머지는 다 추측이고 가능성입니다. 그 진실이 우리 존재의 일부가 되었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삶 자체에 다가갈 유일한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다정하게, 다정하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p.291-292,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중에서
“숨을 거둘 날이 오면, 그날이 언제든 저더러 싸우라 하지 말아 주세요. 오히려 제가 다 내려놓을 수 있도록 어떻게든 도와주길 바랍니다. 제 곁을 지키며 다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세요.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들을 다 기억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때가 됐을 때 제가 늘 원했던 끝이 어떤 것인지 기억할 수 있도록 당신의 열린 손바닥을 보여주세요.”
--- p.308,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중에서
린데블라드가 말하는 ‘존엄’은 우리가 ‘타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의 삶에 대해 우리가 가진 기대를 내려놓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결국, 윌의 죽음은 그의 존엄을 지키는 마지막 선택이었으며, 루이자 또한 그 존엄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뒤로하고 그를 존중합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존엄은 단지 고통이나 삶의 지속성에 관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에 대한 권리를 의미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인간 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가치인 ‘자유’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삶에서 다양한 선택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완벽하게 옳기만, 완전히 틀리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나만, 나의 생각만 옳다는 생각에서, 우리 각자의 생각이 옳을 수도,
그리고 모두 틀릴 수도 있습니다.
당신도, 그대도, 그리고 나도 옳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틀릴 수도 있습니다.
갈수록 극성맞아지는 시대, 양극화되는 시대,
『미 미포 유』와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사이에서
우리 모두 틀릴 수도 있음을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