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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날 불러주기 전에

by 윤재



처음 詩를 쓰던 날, 누군가 먼저 불러주기를 나는 얼마나 고대했던가. 있지도 않은 약도를 진실과 진리의 별자리 옆으로 슬며시 내려놓으며, 얼마나 구차하게 두근거렸던가. I am calling you. Can’t you hear me? I am calling you. 어렵사리 구한 중고 엘피판을 틀지 못하고 만지작거린다. 사막의 기록이 몇 개의 미라와 함께 부스럭거렸다. 모래폭풍을 헤집고 다녀간 여급의 발자국이 보인다면, 아직 이 음악을 들을 수 없다. 문 닫힌 바그다드 카페, 낡은 테이블에 흐트러진 몇 권의 시집을 떠올린다. 죽거나 죽어가는 시인들은 어떻게 침묵에서 형식을 상연할 수 있었던 것일까. 형식에서 의미를 떠올린다는 건 얼마나 고요한 일일까. 무대 밖 현실은 늘 습작 같았지만, 요란스러운 감상도 이유 없는 비판도 내게는 초연이었다. 마시다만 커피가 말라 찻잔의 우주가 되듯이, 쓰다 만 詩가 마침내 詩가 되는 문학적 아이러니. 누군가 말 못 할 낭만이라 비웃는다 해도 그것의 근원은 아슬아슬하게 사랑스럽다. I am calling you. Can’t you hear me? I am calling you. 라스베이거스의 찢어진 습작 속에 두고 왔던 건 외로움이 아니라 음악을 대신할 당신의 육성이었다.

--- <당신이 날 불러주기 전에>에서,

- 기혁(1979 ~ ), <소피아 로렌의 시간>, 문학과 지성 시인선 518



송종원 문학평론가는 “기혁 시인의 시에는 흰 빛의 허기가 한가득이다. 생동하는 삶의 격렬한 감각이 없다면 빚어지지 못했을 빛이고 허기”라고 기혁 시인의 시를 평합니다. 기혁 시인은 1979년 진주에서 태어나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2010년 <시인세계> 신인상 시 부문, 201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으로 등단했으며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시집으로 <모스크바예술극장의 기립 박수>와 <소피아 로렌의 시간>, <다음 창문에 가장 알맞은 말을 고르시오> 등이 있습니다. 그는 시에는 풀리지 않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고 그것이 세월의 마모를 견디면서 계속해서 새롭게 읽혀야 한다고 말합니다. 각자의 생각대로 그의 시를 읽고 해석하면 된다고 합니다. 기혁 시인은 시를 통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할 기회를 얻기 바라는 마음을 표했습니다.



<당신이 날 불러주기 전에>를 읽어 보면, 처음 시를 쓰던 날 시인은 누군가 먼저 불러주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어딘가에 존재하는 듯한 약도를 내려놓으며 두근거렸던 그 마음은, 문학을 향한 간절함과 존재를 증명받고 싶은 욕망이었을 것입니다. 이 글은 시를 쓰는 행위와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내면의 떨림, 그리고 문학적 아이러니를 절묘하게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산문시 속에서 반복되는 구절 “I am calling you. Can’t you hear me?”는 단순한 외침이 아니라 부재하는 독자, 혹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아닐까요? 시를 쓴다는 것은 결국 누군가에게 닿고 싶다는 열망에서 비롯되거나 시인이 마주하는 고독과도 맞닿아 있을 것입니다. “어렵사리 구한 중고 엘피판을 틀지 못하고 만지작거린다”는 표현은, 음악을 듣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그것을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을 암시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음악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감정을 담아 전달하는 매개체이며, 시 역시 마찬가지이지요. 시인의 마음속에는 울림이 있지만, 그것이 어떻게 흘러나와야 할지 모르는 순간, 문학은 마침내 시작되는 것이지요.



“사막의 기록이 몇 개의 미라와 함께 부스럭거렸다”는 문장은 단순한 공간적 배경을 넘어서, 시간이 축적된 흔적과 역사적 침묵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바그다드 카페의 닫힌 문, 흐트러진 시집들, 그리고 죽어가는 시인들의 침묵. 그들은 현실 속에서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형식 속에서 의미를 만들어낸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이는 문학이 가지는 역설적인 아름다움입니다. 무대 밖 현실은 늘 습작 같고, 우리는 그 속에서 완결되지 못한 채 살아가지만, 문학은 그 미완의 감정을 의미로 생성합니다.



“마시다만 커피가 말라 찻잔의 우주가 되듯이, 쓰다 만 詩가 마침내 詩가 되는 문학적 아이러니.” 이 구절은 이 산문시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시인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이 날 불러주기 전에, 나는 이미 당신을 부르고 있었다’고.



시와 음악, 그리고 침묵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들을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이 질문을 곱씹으며, 우리는 우리만의 시를 써 내려가야 할 것 같습니다.

쉽지 않습니다.



“I am calling you. Can’t you hear me? I am calling you.”는 영화 <바그다드 카페>에 나오는 주제곡입니다. 감미롭고 호소력 짙은 가스펠 싱어송라이터인 제베타 스틸(Jevetta Steele)의 목소리는 애잔하면서 나른하고 몽환적입니다. 먼지 풀풀 날리는 사막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노래는 더욱더 감성적입니다.



“Desert road from Vegas to nowhere

라스베이거스에서 아무 데로나 가는 사막 길

Some place better than where you’ve been

당신이 있었던 곳보다 더 좋은 어떤 곳

A coffee machine that needs some fixing in a little cafe just around the bend

사람이 찾지 않는 작은 카페에는 고쳐야 할 커피 기계가 있어

I’m calling you, Can’t you hear me, I am calling you

난 당신을 부르고 있어, 들리지 않아? 난 당신을 부르고 있다고

A hot dry wind blows right through me

뜨겁고 건조한 바람이 날 스치고

The baby’s crying and I can’t sleep

아기는 울고 난 잠을 이룰 수가 없어

But we both know that a change is coming

변화가 오고 있음을 우리 둘은 알고 있지

Coming closer, sweet release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어, 달콤한 해방이

I am calling you, I know you hear me, I am calling you”

난 당신을 부르고 있어, 당신이 내 말을 듣는 거 알아, 난 당신을 부르고 있다고

....(하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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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 카페의 테마곡 “Calling You”는 영화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대변하는 음악입니다. 이 곡은 고독과 희망이 공존하는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영화 속 사막의 광활한 풍경과 야스민과 브렌다의 감정선을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곡은 단순한 멜로디와 애절한 가사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안에는 깊은 감성이 애절하게 담겨 있습니다. ‘너를 부르고 있어(Calling you)’라는 반복적인 구절은 영화 속 인물들이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음을 암시하며, 외로운 영혼들이 소통을 통해 치유받는 과정을 음악으로 형상화합니다. 특히, 야스민이 점차 카페의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과정과 이 노래가 흐를 때의 감정선은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외로움 속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 곡은 영화 전체의 주제를 더욱 부각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영화는 모하비 사막에서 햇볕에 그을린 독일인 부부가 차 안에서 싸우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몸과 영혼이 단단히 코르셋에 묶인 채, 건장한 체격의 독일 여성은 바로 그곳 모하비 사막에서 일종의 지옥 같은 미국 여행을 하면서 일종의 비참한 휴가를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결국 아내 야스민 Jasmin nchgstettner(Marianne Saegebrecht 분)은 차에서 내리고, 남편은 그녀를 버리고 차를 몰고 떠납니다.

모하비 사막 한가운데!

결국, 독일의 로젠하임 출신으로 바이에른 비즈니스 정장을 입고 있는 그녀는 먼지 풀풀 날리는 건조한 길을 여행 가방을 끌고 가다가, 팍팍한 삶으로 화가 나고 지친 브렌다(CCH Pounder)가 운영하는 우중충한 Bagdad Café에 도착합니다. 칠이 벗겨진 허름한 카페, 고장 난 커피 기계,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초상화, 삶에 지친 가난한 흑인 가족들이 운영하는 부조화를 이루고 있는 카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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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IMDb



배경인 캘리포니아 주 바그다드는 미국 66번 국도의 옛 도시입니다. 영화는 바그다드에서 서쪽으로 80km 떨어진 뉴베리 스프링스의 사이드와인더 카페에서 촬영되었습니다. 이 영화를 감독한 독일 영화제작자 퍼시 애들론(Percy Adlon)은 크리스마스 휴가 중 66번 국도의 사막을 여행하고 있었을 때, 이상한 빛을 하늘에서 보았다고 합니다. 지도에서 바그다드라는 이름을 보고 거기로 갔는데 아무것도 없고 단지 나무 몇 그루와 낡은 주유소뿐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는 일종의 동화로 사막이 자신이 상상하는 대로 보이기를 바랐고 실제 모습이 아닌 회색빛처럼 보이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감독은 사막이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처럼 보이길 원했습니다. 그 자체의 색깔이 있고,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나오는 것처럼 강렬하게 표현하고 싶었다고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같은 사막도 계절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도 하겠지요. 제가 본 거기 그 사막은 별이 아주 총총히 밀도가 꽉 찬 그 상태로 쏟아질 것 같은 순간만이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는데 말이죠.



사막 고속도로 옆에서 브렌다(CCH Pounder)는 트럭 정류장에서 모텔과 식당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걱정이 많고 정신이 없으며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아 짜증을 빈번히 표출하고 심지어 공격적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남편은 아내인 브렌다가 요청한 것을 계속 잊어버립니다. 특히 새 커피 머신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녀의 10대 딸은 자전거 타는 사람, 트럭 운전하는 사람, 바퀴 달린 사람이라면 누구와도 어울립니다. 그녀의 19세 아들은 낡은 피아노 뒤에서 바흐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아들은 미혼부로 그는 아빠가 되기에는 너무 어리지만 아이가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야스민은 차에서 내릴 때 자신의 가방이 아닌 남편의 여행 가방을 들고 갔기에, 그녀에게 남은 것은 남자 옷뿐이었습니다. 그녀는 그것들(면도 키트와 남성용품들)을 방에 놓아두기 때문에 브렌다가 청소하러 들어갈 때 그녀는 남성용품들의 전시를 보고 편집증과 외국인 혐오증을 느끼고 겁에 질려 보안관에게 신고를 합니다.


바 뒤에는 말은 하지 않지만 순진한 마음을 가진 아메리카 원주민이 있고 모텔의 유일한 장기 거주자, 두건과 카우보이처럼 옷을 입고 뱀가죽 부츠를 신은 은퇴한 할리우드 세트 화가인 괴짜 예술가인 콕스(Jack Palance), 고리버들 의자에 앉아 <Death In Venice>를 읽고 있는 아름답고 나약한 문신 예술가(Christine Kaufmann)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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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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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IMDb



브렌다의 아들 살라모가 연주하는 피아노 곡을 눈을 감고 경청하고 있는 야스민.

눈을 감고 진지하게 음악에 빠져들며 감상하는 야스민에게 반하는 콕스.

콕스는 야스민에게 모델이 되어 달라고 간청하고, 그가 그린 야스민은 ‘남미의 피카소’로 불리는 콜롬비아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 Angulo, 1932~2023)가 그린 과장된 인체 비례와 뚱뚱한 모습으로 묘사한 인물 그림처럼 뚱뚱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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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보테로, <루벤스와 그의 아내>,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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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보테로, <모나리자>,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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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IMDb



처음에는 이방인인 야스민을 경계하던 카페 주인 브렌다와 카페의 사람들은 그녀가 조금씩 주변을 청소하고, 마술과 음악을 활용하여 활력을 불어넣는 모습을 보며 마음을 열기 시작합니다. 더불어 야스민을 꽉 죄었던 옷차림과 올림머리가 편안한 차림과 내린 자연스러운 머리로 변화되는 것을 발견하게 되지요.



“아, 남편이 일주일 전에 저를 떠났어요.” 라면서 마치 핑계라도 되는 양 말을 걸면서 점차 브렌다는 야스민과 가까워지고, 그녀의 삶뿐만 아니라 카페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삶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영화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인물들이 서서히 교감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단순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의 깊이는 결코 얕지 않습니다. 광활한 사막이라는 공간적 배경은 주인공들의 외로움과 내면의 공허함을 상징하며, 이방인과의 만남을 통해 치유받고 변화하는 과정은 따뜻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특히, 야스민과 브렌다의 관계 변화는 인상적입니다. 처음에는 의심과 불신으로 시작된 관계가 점차 신뢰와 우정으로 발전하는 과정은 현실적인 감정을 담아내면서도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 모든 게 마술 같아서 슬플 일은 없지”, “ 오늘을 사는 거예요”라는 대사는 두 사람의 우정이 단순한 친분을 넘어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관계로 발전하는 것을 보여주며, 이는 우리에게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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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IMDb



Bagdad Café의 30주년 기념으로 17분가량의 분량이 추가되어 1993년에 무삭제 감독판이 HD 리마스터링 4K 버전으로 재공개되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이 영화를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다!”라고 극찬했습니다.


“보안관인 아메리카 원주민, 모든 것을 청소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학대받는 독일인 주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흑인 가족이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트럼프가 정말 싫어하는 것입니다. 백인이 아닌 모든 사람을 배제하는 이상한 시대 때문에 우리 영화는 이제 30년 전 촬영했을 때보다 더 시급하고 현대적입니다.”라고 감독이자 제작자인 퍼시 애들론은 1993년 무삭제 감독판에 대해 말합니다. 문화, 성별, 인종, 연령, 인종 간의 상호 작용에 대한 어리석은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캐릭터의 감정적 개입을 방해하기보다는 강화하는 깊이 있는 사려 깊은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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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IMDb



독일인이 미국에서 영어로 촬영한 이 영화가 당시 유럽 역사상 가장 큰 흥행 성공을 거둔 영화 중 하나라는 사실에는 시적인 정의가 있습니다.



영화가 개봉된 후 카페 이름은 ‘바그다드 카페’로 바꾸어 영업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곳에는 영화 촬영 당시의 소품과 출연 배우들의 스냅사진등의 흔적들이 그대로 보관 전시되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삶의 외로움과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화려한 기적이 아니라, 사소한 배려와 공감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일깨워줍니다. 詩를 쓰고 부르고, 다시 누군가에게 들려지는 것처럼, 인생의 공허함 속에서도 따뜻한 변화는 언제든 가능하다는 희망을 주는, 여운이 깊은 작품입니다.



“Calling You”, 이 곡은 단순한 멜로디와 애절한 가사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안에는 깊은 감성이 담겨 있습니다. ‘너를 부르고 있어(Calling you)’라는 반복적인 구절은 영화 속 인물들이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음을 암시하며, 외로운 영혼들이 소통을 통해 치유받는 과정을 음악으로 형상화합니다. 이는 詩를 쓰는 행위와도 맞닿아 있지요. 영화 속 야스민이 고독 속에서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 가듯, 詩 역시 자신을 읽어줄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라스베이거스의 찢어진 습작 속에 남겨진 것은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라, 음악을 대신할 누군가의 육성이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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