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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눈물의 끝장

by 윤재




취발이


김정환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대 슬픔도 한숨도 다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제 내 곁에 돌아와

아직도 차마 두 눈 감지 못하는 그대여

그대가 떨며 은밀히 키워온 그대 몸속의 치명적인 씨앗에 바치는

그대 슬픈 짓밟힘 앞에

그대 짓밟힌 육체의 화려함 앞에 바치는

나의 이 한줄기 분노를

어찌 맨주먹으로 훔쳐 내리고 서 있을 수밖에 없으랴

못 견뎌 저승에서 끝내 살아온 듯만 싶게

부석한 얼굴 밤새 뜬눈으로 돌아와

아직 내 곁에서 무너져 내리지 못하는 그대여

그대여 또한 그대가 내 품에서 두 눈 부릅뜬 상처로

나의 무딘 가슴 방망이질할 때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대의 절망도 비참도 남은 몸짓도

다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혼자서

나는 그대 눈물의 끝장을 기다린다

또한 그대 몸 안의 숨은 부끄러움에 몸 둘 바 모르는

나의 이 한 불꽃 분노를

어찌 눈물로 식혀낼 수밖에 없으랴

어찌 눈물로 재울 수밖에 없으랴

내 곁에 누운 것은 눈물이 아닌

분명한 그대의 몸이다

지울 수 없게 살아남은

뼈아픈 그대와 나

거대한 생명의 폭포수다


--김정환, <지울 수 없는 노래>, 1982, 창비시선 중에서



취발이는 탈춤과 산대놀이에 등장하는 인물로, 원래 승려였으나 승가에 뜻이 없어 속세에 내려와 술에 취한 모습으로 떠돌아다니는 인물입니다. 취발이는 술에 취한 붉은 얼굴로 방울과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나타나는데, 붉은 얼굴은 환속과 욕망을, 버드나무 가지는 젊음과 생명력을, 방울은 귀신을 물리치는 상징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지역마다 취발이가 상징하는 것이 다르기도 합니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 의하면, “취발이라는 명칭은 술 취한 중[醉僧]을 의미하며, 은율 탈춤에서는 취발이를 ‘최괄이’라 부르기도 한다. 취발이가 붉은 얼굴색과 귀면형 생김새,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방울을 들고 등장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귀신을 쫓는 인물이라고 보는 견해도 존재한다고 기술되어 있다. 취발이의 외모와 행동은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인식과 행동을 대표하는 한편 노장은 관념적 허위의식의 담지자로, 취발이가 노장과 싸워 이기는 것은 관념적 허위로 가득 찬 세상에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는 의미한다는 의견도 있다. “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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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발이 (사진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정환(1954~ ) 시인은 서울에서 출생하였고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하였습니다. 민중들의 고통과 좌절, 희망을 리얼리즘적으로 형상화한 시들을 주로 발표한 한국의 대표 시인으로, 시대의 진실을 밝히려는 결의와 열린 감성으로 우리 시대의 언어에 일대 변혁을 몰고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시집을 비롯해 장편소설, 인문ㆍ역사서, 클래식 음악 해설서, 인터뷰집 등 등단 후 30년 동안 100여 권에 달하는 저작을 펴낸 정력적인 마치 ‘폭포처럼’ 쏟아낸 저술가입니다. 백석문학상과 아름다운 작가상, 현대시작품상 등을 받았습니다. 1980년대 활동했던 많은 문인들이 그렇듯, 김정환도 민주화 운동을 하다 옥살이를 했고 진보적인 문화운동에 앞장섰습니다.



김정환의 시 <취발이>는 단순한 개인적 슬픔을 넘어, 시대적 아픔과 저항의 정신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 읽힙니다. 특히 1980년대 군부 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을 위해 투쟁하며 감옥살이를 했던 시인의 경험을 고려할 때, 이 시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억압받는 자들의 절규와 연대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시 속 화자는 단순히 한 개인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억압과 폭력 속에서 짓밟힌 이들의 아픔까지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대 슬픔도 한숨도 다 받아들이는 것이다"라는 첫 구절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역사적 현실 속에서 억눌린 이들과 함께한다는 강한 연대의 선언으로 읽힙니다. 이는 당시 군부 독재에 의해 희생된 민주화 운동가들과 민중들의 절망을 온몸으로 껴안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시 속에서 ‘그대’는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시대의 폭력 속에서 희생된 민중을 상징하는 존재로 해석할 수 있으며, 그대는 "짓밟힌 육체의 화려함"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군사 정권에 의해 탄압받았으나 끝내 굴복하지 않았던 민주화 운동가들과 민중들의 저항 정신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또한 화자는 이들의 희생과 절망을 마주하며 "나의 이 한줄기 분노"를 언급하는데, 이는 단순한 감상적인 분노가 아니라, 저항의 불씨로서의 분노이며, 더 나아가 행동으로 이어지는 저항의 의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내 곁에 누운 것은 눈물이 아닌 분명한 그대의 몸이다"라는 구절은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는 단순한 슬픔을 넘어, 현실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짊어져야 할 책임과 연대를 강조하는 표현으로, 민주화 운동 속에서 희생된 자들의 정신과 삶이 단순히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남은 자들이 이를 계속해서 계승하고 행동해야 함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오윤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강인한 노동자의 형상과, 케테 콜비츠의 조각에서 발견되는 깊은 애도와 저항의 정서는 이 구절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거대한 생명의 폭포수다"라는 표현은 억압 속에서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민중들의 저항과 생명력을 보여줍니다. 이는 단순한 절망이 아니라, 끝내 자유와 민주주의를 쟁취하려는 민중들의 의지를 상징하는 강렬한 표현입니다.



김정환의 시 <취발이>는 단순한 개인적 슬픔을 넘어, 시대적 아픔과 저항의 정신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 이 시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억압받는 자들의 절규와 연대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시에서 강조되는 슬픔과 분노, 그리고 연대의 정신은 한국의 민중미술가 오윤의 판화 작품들과 독일 표현주의 조각가 케테 콜비츠(Käthe Kollwitz)의 조각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윤작가의 작품들은 <취발이>에서 말하는 '짓밟힌 육체의 화려함'과 '저항의 분노'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것처럼 보입니다. 오윤의 작품 속 인물들은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역사적 고통을 온몸으로 견뎌내며 살아남은 민중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으며 이는 김정환의 시에서 나타나는 '그대'의 모습과도 이어져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윤(1946~ 1986)은 판화가, 민중미술가로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1980년대 한국 미술계의 상징입니다. 부조리한 현실과 서민들의 진솔한 모습을 작품에 녹여냈습니다.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조소과를 나온 화가는 대학 시절부터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관심을 가지고 민화, 무속화, 불화, 탈춤, 굿 등 한국 전통의 민중 문화를 연구하며 민족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업에 전념하였다고 합니다. 해학과 신명이 넘실거리는 춤과 전통, 판화만의 단호하고 날카로운 형식으로 주제를 명료하게 드러내었습니다. ”민중의 언어로 민중과 만나야 한다 “는 것을 강조한 오윤의 작품은 시대적 아픔과 저항 정신을 강렬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의 판화는 목판화 특유의 강한 음영대비와 날카롭게 조각된 선을 통해 인간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단순 명쾌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거칠어 보이고 소박한 작가의 화법은 우리에게 강한 움직임을 전달합니다. 평론가 성완경은 ”오윤의 예술은 80년대 민중미술이라는 카테고리 안에만 가둘 수 없는 더 높은 예술적 성취가 있다 “고 했습니다. 또한 평론가 김윤수는 ”우리 현대미술사에서 오윤의 위상은 문학에서 신동엽과 같다 “고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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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 <칼노래>, 1985, (사진출처: 대전일보)



<칼노래>는 동학 교주 최제우가 전라도 남원에 피신하여 있을 때 하늘로부터 주문을 받아 지은 노래 ”검결(檢訣)이라는 제목의 가사를 판화로 재현한 작품입니다. 노래 가사는 ”가장 잘 드는 날카로운 칼, 생명이자 진리인 칼로 우리 땅에 닥친 온갖 삿된 상황을 단숨에 잘라버린다 “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전투적 춤사위인 칼춤을 단순하고 간결한 선으로 역동적으로 빠른 동작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무거운 의지를 담은 춤으로 보입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칼은 탐욕(貪)·성냄(嗔)·어리석음(痴)·싫음(厭)·요망함(妖)·파괴(壞)·더러움(汚)·간사함(邪)·근심(慽)을 뜻하는 글자는 모두 조각조각 베어져 흩날리고자 합니다. 그야말로 누구나 하느님 같은 존재의 평등 사상인 동학이 추구하는 대동(大同) 세상을 구현하려는 이상과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강렬하고 힘 있는 붉은색 배경으로 날카로운 칼을 들고 한 발을 들고 힘찬 동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민중이 소외되고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라 생명력과 동력이 있는 존재임을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오윤작가의 지인 중에는 이 판화의 단호한 주인공 눈매가 오윤 작가 그대로 묘사되었다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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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 <애비와 아들>, 1983, (사진 출처: 국제신문)



”미술이 어떻게 언어의 기능을 회복하는가 하는 것이 오랜 나의 숙제였다. 따라서 미술사에서, 수많은 미술운동들 속에서 이런 해답을 얻기 위해 오랜 세월 동안 말없는 벙어리가 되었다 “라고 오윤은 고백했습니다.



암흑 같은 그 시절 절친들과 웃음을 잃지 않고 대화를 이어가며 말술을 마셨던, 그 술이 오윤을 일찍 저 하늘의 별이 되게 만들었다고 안타까워하는 동료들이 많았습니다. 그의 장례식에서 정희성 시인이 적은 추모시에는, ”오윤이 죽었다

야속하게도

눈물이 나지 않는다

그는 바람처럼 살았으니까

언제고

바람으로 다시 올 것이다


....(하략).... “ 라고 먼저 가는 오윤의 삶을 추모하였습니다.


김정한 시인의 시가 오윤작가를 부르는 오늘의 바람이 되었습니다.



케테 콜비츠(Käthe Schmidt Kollwitz, 1867~ 1945)의 미술은 1980년대 우리나라의 민중미술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녀는 독일의 화가, 판화가이며 조각가입니다.



20세기 전반기의 인간 조건을 사실적이고 애틋하게 묘사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불행한 사람, 가난과 전쟁의 피해자들에 대한 관심을 작품으로 연결했습니다. 케테 콜비츠는 ”나는 노동자들이 보여주는 단순하고 솔직한 삶에서 아름다움을 찾았다.“라고 하면서, ”그들의 삶이 보여주는 단순함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에 변호 맡을 수 없는 사람들,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한 가닥 책임과 역할을 다하고 싶다 “고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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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äthe Schmidt Kollwitz



제1차 대전에서 아들을, 제2차 대전에서 손자를 잃은 심경을 쓴 일기에는 그녀의 마음이 밑바닥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인, 거짓말, 부패, 왜곡 즉 모든 악마적인 것들에 이제는 질러버렸다... 나는 예술가로서 이 모든 것을 감각하고, 감동하고, 밖으로 표출할 권리를 가질 뿐이다."

"언젠가 새로운 이상이 등장하여 이 세상 모든 전쟁이 사라질 것이다. 나는 이를 확신한다.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케테 콜비츠는 동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자유롭고 진보적인 환경에서 자라났습니다. 평소 그림에 소질이 있던 콜비츠는 10대 초반부터 미술 공부를 시작했고 베를린과 뮌헨에서 체계적으로 공부를 했으며, 미술을 배우며 판화 작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1933년 집권에 성공한 나치는 콜비츠를 비롯해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예술가들을 퇴폐미술이라며 극심하게 탄압했고, 독일 내에서 작품을 전시할 권리, 안전을 보장받을 권리마저 박탈했습니다.

콜비츠는 일기장에 “ 나는 옹호자로서의 책임에서 물러날 권리가 없다고 느꼈다. 인간의 고통, 산 높이에 쌓인 끝없는 고통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나의 의무이다. 이것은 나의 임무이지만, 완수하기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적었습니다.


“고도로 숙련된 판화가로 유명하지만, 콜비츠는 조각에도 관심을 돌려 애도와 슬픔이라는 그녀의 변함없는 반전 주제를 3차원으로 탐구하는 여러 기념관을 만들었다. 때때로 피에타(pietà)와 같은 종교적 주제를 그리는 콜비츠의 조각은 인간의 고통에 대한 깊은 공감을 구현한다.”(THE ART STO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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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테 콜비츠, <부모>, 1921-1922, Käthe Kollwitz Museum, Berlin



케테 콜비츠의 <부모>는 아들의 전사 통지를 받고 나서 1년 동안 깊은 상실과 애도 속에서 만든 작품이라고 합니다. 무거운 침묵과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진한 상실의 슬픔이 커다란 손으로 얼굴을 모두 가린 아버지와 그런 남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는 엄마의 애도가 비통하게 전해옵니다. 절박한 절망감이 뚝뚝 떨어지고 있습니다. 아들을 전쟁에서 잃은 부모의 슬픔에 대한 끝없고 깊은 고통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무릎을 꿇고 남편의 품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엄마의 깊은 슬픔과 아내를 안고자 하지만 역시 무릎을 꿇고 있는 남편도 감정이 너무 북받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케테 콜비츠의 <부모>에서 보여주는 아버지의 투박하고 커다란 손은, 오윤의 <애비와 아들>에서 아들의 등을 잡은 아버지의 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케테 콜비츠의 작품에서 아버지의 손은 손의 관절 마디가 두드러지게 드러나 있지만, 오윤의 작품에서는 화면 왼쪽의 상황에 대해 긴장과 놀람을 보여주는 아들을 안심시키며 위로하는 듯 보입니다. 아버지의 벌어진 입에서 우리가 알 수 없는 부재하는 상황의 급박함, 놀라운 상황이 전해집니다. 그런 위기의 상황에서 아들의 어깨를 잡은 다음 아버지의 넓은 가슴으로 안아줄까요, 아님 같이 손을 잡고 어딘가로 뛰어가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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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테 콜비츠, <애도>,1938, (사진 출처: 마이아트 뮤지엄 전시 중에서)




김정환 시인의 시 중 「선지피」는 이런 문장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제 곧 아침이 온다는 것이다

그대가 마련한 아침

우리가 일어서야 할 아침“



밤이 깊은 요즘입니다.

깊어갈수록 새벽이 가까워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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