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애경
우리가 사랑하면
같은 길을 가는 거라고 믿었지
한 차에 타고 나란히
같은 전경을 바라보는 거라고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봐
너는 네 길을 따라 흐르고
나는 내 길을 따라 흐른다
우연히 한 교차로에 멈춰 서면
서로 차창을 내리고
-안녕, 오랜만이네
보고 싶었어
라고 말하는 것도 사랑인가 봐
사랑은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영원히 계속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렇게 쉽게 끊어지는 끈도 아니고
이걸 알게 되기까지
왜 그리 오래 걸렸을까
오래 고통스러웠지
아, 신호가 바뀌었군
다음 만날 지점까지 이 생이 아닐지라도
잘 가, 내 사랑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지내
--- 김경민 지음, <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울게 한다> 중에서, 2020, 포르체
시인은 언어의 유희성이 아닌 담담한 언어로 간명하게 그들의 사랑과 이별을 전해줍니다. 애절함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더 깊은 서정입니다. 얼마 큼의 시간이 지났을까요 그 둘의 사이에는 이젠 생의 마지막을 넘어 다음 생을 기약하는군요.
지나간 사랑은
그저
기억이나 추억 속에 존재하는 사랑의 이름이겠지요.
12년을 사랑을 하고, 서로 반대편에서 90일을 걸어와 둘이 만나는 지점에서 이별을 고한 연인이 있다고 하지요. '행위 예술가'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 1946~ )는 황해에서, 울라이(Ulay, 본명은 Frank Uwe Laysiepen, 1943~ 2020)는 고비사막에서 시작해 각자 2,500km를 걸었고, 만리장성의 중간지점에서 만나서 악수와 포옹을 하고 난 뒤, 각자의 길로 떠났답니다. 쿨한 이별이었을까요. 전쟁 같은 사랑 후에 택한 예술적 이별일까요. 헤어짐의 과정도 참으로 지난합니다.
양애경 시인과 잠깐 시공간을 같이 한 기억이 있어, 시인의 시는 더 정감 있게 다가옵니다.
그 시절에 제가 시를 가까이했었더라면 그녀에게 친근하게 다가갔으련만...
우리 설날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지금
지난 시간이 떠오릅니다.
바뀌는 시간을 평안히 맞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