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원(朴準源)
세상 사람들은 꽃의 빛만을 본다지만
나는 오직 꽃의 기운만을 본다오
이 기운 천지에 가득 찬다면
나 또한 한 송이 꽃일 겁니다.
--- 김풍기 저, <옛시와 더불어 배우며 살아가다>, 2004, 해토
世人看花色(세인간화색)
吾獨看花氣(오독간화기)
地氣滿天下(지기만천하)
吾亦一花卉(오역일화훼)
이렇게도 해석합니다,
사람들은 꽃더러
아름답다나
아니야 나는 홀로
향기를 보지
천하가 꽃향기로
쌓인다면야
나도 또한 한송이
화훼이려니
작가는 금석(錦石) 박준원(朴準源:1739∼1807)으로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문인입니다.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하며 육경(六經)과 백가(百家)의 글에 두루 통달하였으며, 맏형 박윤원(朴胤源)과 함께 당대의 학자였던 지암 김양행을 스승으로 모시고 학문을 수학하였습니다. 스승처럼 벼슬에 큰 뜻을 두지 않고 학문 연구에 집중하다가, 48세의 늦은 나이로 1786년(정조 10) 사마시에 합격하였습니다. 1790년 그의 3녀, 수빈이 원자(후일의 순조)를 낳자 통정대부에 올라 호조참의에 임명되었고, 항상 대궐 안에 머물면서 원자를 보호하고 보도(輔導)하였습니다. 1800년에 순조가 즉위하자 수렴청정하던 정순왕후에 의하여 호조·형조·공조의 판서와 금위대장 등 삼영의 병권을 8년 동안 잡았던 인물입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박준원은 부귀영화에 크게 욕심이 없었고, 늘 검소하게 살면서 바른 선비로 살고자 하였으나 외손인 순조가 즉위하면서 권력의 중심에 있게 되었습니다. 다른 임금의 외조부들과는 다르게 권력에 집착하지 않고 오직 외손인 순조를 지키기 위해 성심을 다했다고 합니다.(출처: 월봉의 블로그)
얼굴은 정보의 광고판이라는 박문호 박사의 설명이 있습니다. 색의 다양성보다 세 배나 되는 정보(느낌)를 담고 있는 얼굴. "나이 40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링컨 대통령이 말했다던가요
40은 이미 오~래~전에 지나온 나의 얼굴은 어떨지
문득
두렵기도 합니다.
박준원의 <꽃을 보며>, ‘꽃의 화가, 사막의 화가’ 조지아 오키프가 떠올랐습니다.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1887~ 1986)는 미국의 대표적인 화가로,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하였습니다. 그녀는 위스콘신 주의 농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예술에 대한 열정을 보였으며, 시카고 미술 연구소와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미술을 공부하였습니다.
오키프는 ‘꽃 한 송이를 아주 크게 사람들이 주목할 수 있도록 ‘ 생각하며 1918년부터 꽃을 그리기 시작하였으며, 1924년부터는 거대한 규모의 꽃 그림을 선보였습니다. 그녀는 꽃을 확대하여 그리는 독특한 기법을 통해 관객들이 꽃의 세부적인 아름다움과 내면의 에너지를 느끼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당시 많은 주목을 받았으며, 조지아 오키프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일부 비평가들은 그녀의 꽃 그림을 성적인 메타포로 해석하기도 하였습니다. 꽃 시리즈는 200점 이상의 그림으로 그려졌고 그녀를 대표하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전통적인 훈련을 거부하고 형태와 색상의 조화로운 구성을 통해 감정 표현을 옹호한 미술 교육자 아서 웨슬리 다우(Arthur Wesley Dow)의 이론을 수용한 후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적 목소리를 발견했습니다.
조지아 오키프, <Abstraction Blue>, 1927, MoMA
오키프는 열 살 때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결심했고, 이전에 본 것과는 다른 그림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위 그림의 선과 색상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선과 색들은 무엇을 생각하게 만드나요? 오키프는 꽃과 같은 자연에서 나온 것들을 "내가 보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을 만큼 크게" 그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예술에서 선, 색, 음영을 조화롭게 사용하여 자신을 표현하는 아이디어를 좋아했습니다. 그녀는 "색상과 모양이 말보다 더 명확한 표현을 만든다"라고 믿었습니다.
이 그림은 그녀의 독특한 추상화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색상과 형태가 주는 감각적인 경험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오키프의 작품 중에서 그간의 자연주의적 접근을 넘어선 추상적인 표현이 잘 드러나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강렬한 푸른색과 그러데이션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조화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림의 중심부에서 시작해, 점차적으로 색상이 퍼져 나가는 방식은 마치 한 점의 물감이 물속에서 퍼져 나가는 모습처럼 유동적이고, 색채의 움직임과 흐름을 느끼게 합니다. 오키프는 자연을 감각적으로 탐구하는데, 이 그림에서 색채와 형태를 통해 자연의 본질적인 에너지를 표현하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구체적인 형태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순수한 색채와 형태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려는 의도가 전달되며 푸른색은 차분하면서도 동시에 깊고 넓은 느낌을 줍니다. 그림의 구성에서 균형을 맞추되 그 균형이 똑같지 않도록, 자유로운 형태와 색의 변화를 통해 변화를 담아낸 것으로 보입니다.
이 그림은 단순한 시각적 요소를 넘어, 색채와 형태를 통한 감정적, 심리적 경험을 전달하는 작품입니다. 이 그림을 바라보는 동안 색이 만들어내는 감정적 울림을 따라가며, 그 속에서 자신만의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오키프의 추상화는 단순한 형상이나 상징을 넘어서는 깊이를 가지고 있으며, 색과 형태의 자유로운 해석을 통해 우리에게 자연과 인간 존재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합니다. 푸른색이 주는 평화와 고요를 형태의 깊이에서는 미지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신비로움이 있습니다.
조지아 오키프, <흰 독말풀, Jimson Weed/White Flower No.1>, 1932, Crystal Bridges Museum of American Art
그녀의 <흰 독말풀, 1932>은 2014년 11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4천4백40만 달러(한화 약 495억 원)에 낙찰되면서 여성 작가 작품 중 최고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거래 금액을 알고 나면, 그림이 다시 보입니다. 이상하지요....또 많은 이들이 긍정적인 평가를 하면 그림을 볼 때, 자신도 모르게 좋게 보려는 태도를 갖게 됩니다.
처음에 주어지는 정보가 그 이후 인상 형성에 중요한 근거가 되는 것이지요. 하여 올바른 정보의 획득이 중요합니다. 첫 정보와 관련한 고전적인 실험이 있었습니다. 바로 솔로몬 애쉬(Solomon Asch, 1907~1996)의 실험이지요. Asch는 두 집단의 실험 참여자들에게 어떤 인물을 소개하면서 실험 참여자들이 갖는 그 인물에 대한 인상을 분석했습니다. 제시되는 정보는 두 집단 모두 동일한 내용이지만 처음에 제시된 정보에 따라(정보의 순서) 상반된 인상 평가가 도출되었습니다. 이처럼 먼저 제시된 정보가 나중에 들어온 정보보다 전반적인 인상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초두효과(primacy effect)라고 합니다. 처음 들어오는 정보가 나중에 들어오는 정보들을 해석하는 지침을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솔로몬 애쉬는 초두효과를 ‘처음 입력된 정보가 나중에 습득하는 정보 보다 후에 강력한 영향을 준다’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초두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우리의 뇌가 보고 듣는 정보를 본능적으로 일관성 있게 받아들이려 하기 때문입니다.
첫인상과 현재 형성된 인상이 다름을 뜻하는 것과 관련된 효과는 무엇일까요?
이는 빈발효과라고 합니다. 빈발효과(Frequency Effect)는 지속적인 만남에서 나쁜 첫인상이 반복적으로 호감적인 행동과 태도로 바뀌는 현상으로, 어떠한 정보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그 정보에 뇌가 익숙해져 긍정적인 인상을 형성하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 간의 관계로 적용해 보자면, 한 사람의 첫인상은 매우 좋지 않았지만, 관계를 이어 나가며 반복적으로 좋은 행동을 취한다면 그에 대한 인상이 긍정적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복적으로 노출하는 광고가 소비자에게 익숙한 이미지, 나아가 친근한 이미지를 주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소비로 연결되는 것이지요.
초두효과는 짧은 시간 동안 보는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데 반해 빈발효과는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 나가는 인간관계에서 중요합니다. 솔로몬 애쉬는 폴란드계 미국인으로 게슈탈트 심리학, 사회심리학의 선구자였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사회적 행위는 그 배경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고립되면 의미를 잃습니다. 사회적 사실에 대한 생각에서 그 위치와 기능을 보지 못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오류는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집단의 압력에 의해 의사 결정이나 판단이 달라짐을 설명한 솔로몬 애쉬의 동조 실험 역시 유명합니다.
<흰 독말풀> 그림은 조지아 오키프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 중 하나인 확대된 꽃을 묘사합니다. 그녀에게 섬세한 꽃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아름다움 중 가장 간과되는 부분이자 분주한 현대 세계에서 무시되는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꽃의 복잡한 구조를 강조하는 것을 임무로 삼았습니다. "꽃을 손에 들고 실제로 보면 그 순간은 당신의 세계입니다. 나는 그 세계를 다른 사람에게 주고 싶습니다. 도시 생활은 바쁘기 때문에 꽃을 볼 시간이 없습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보길 바랍니다. 너무 작아서 살펴보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친구를 사귀는 것처럼 바라보세요"라고 말하면서.
그림은 작가의 뉴멕시코 집 근처에서 발견된 흰 독말풀 꽃을 단순하게 소용돌이치며 묘사한 작품입니다. 자연을 소재로 친숙하고 편안하지만 스타일은 확실히 모던합니다. 이 그림과 그녀의 다른 그림의 거대한 규모는 자연계의 아름다움과 중요성을 강조하는 반면, 생동감 넘치는 색상과 공간의 활용은 자연에서 벗어나 보는 이로 하여금 주제를 새롭게 보게 만드는 기묘함을 불러일으킵니다.
피어나는 감각적인 꽃잎을 성적인 상징으로 비판하는 사람들이 자주 옹호하는 프로이트적 해석을 거부하면서 오키프는 자신의 경험을 확대한 그림일 뿐이라고 선언했습니다. ”크게 그려서 보면 다들 놀라서 시간을 내어 구경하게 될 거예요. 바쁜 뉴요커들도 시간을 내어 제가 꽃을 보는 모습을 볼 수 있게 할게요.”라고.
흰 독말풀은 푸른 밤에만 꽃을 피우는 까탈스러운 식물로 강한 독성이 있어서 만지게 되면 반드시 손을 씻어야만 할 정도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꽃은 주로 흰색이나 연보라색의 깔때기 모양 꽃을 피우며, 강한 향기를 내뿜습니다. 북미 원주민들은 의식이나 의례에서 이 꽃을 환각제로 사용하기도 했답니다.
오래전에 방영한 드라마 <더 글로리>에 나오는 에덴빌라 옥상은 꽃밭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빌라 주인 할머니는 드라마 주인공인 문동은에게 고개 숙인 나팔꽃과 고개 든 나팔꽃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천사의 나팔꽃(엔절 트럼펫)과 악마의 나팔꽃(데블 트럼펫)을 말하지요. 신이 볼 때 건방지게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든 꽃은 ’ 악마의 나팔꽃‘이라 하고, 땅을 향해 나팔을 부는 꽃은 ’ 천사의 나팔꽃‘이라고 한다며... 천사의 나팔이든 악마의 나팔이든 같은 ’ 독말풀‘이긴 한데, 자세히 보면 색과 꽃이 피는 방향이 다르다고 합니다.
식물이든 인간이든 겸허한 마음가짐과 자세가 중요하겠습니다. 모 정치인이 수사하는 말 “정치와 골프는 고개 들면 진다”는 말도 생각나는군요.
격정적인 조지아 오키프의 사랑을 보면 프리다 칼로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기도 합니다. 연상의 성공한 예술가와의 만남, 짧은 열정, 그리고 고통의 긴 시간들. 그리고 그 과정을 뛰어넘는 그네들의 예술작품.
사진 출처: 조지아 오키프 미술관
프리다 칼로(Frida Kahlo de Rivera, 1907~ 1954)와 조지아 오키프는 1931년 12월 MoMA에서 열린 디에고 리베라의 회고전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두 여성 모두 공통점을 공유했습니다. 둘 다 나이가 많고 유명한 남성과 결혼했으며 둘 다 20세기 초 모더니즘 운동의 일부였습니다. 그들의 관계에는 상호 존경과 동정이 포함되었습니다. 1933년 오키프의 신경 쇠약 동안 칼로는 자신의 애정과 건강에 대한 우려를 표현하는 편지를 썼습니다.
배신의 상처로 마음이 괴로울 때, 조지아 오키프가 위로받고 깊은 상처를 치유받은 것은 자연, 뉴 멕시코였습니다.
이러한 오키프의 작품은 박준원의 시에서 언급된 '꽃의 기운'과 깊은 연관성을 지닙니다. 시인은 꽃의 외형적 아름다움이 아닌, 그 내면의 기운에 주목하며, 그 기운이 천지에 가득할 때 자신도 한 송이 꽃이 될 것이라고 노래합니다. 이는 오키프가 꽃의 본질을 탐구하며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와 맥을 같이합니다.
오키프의 작품과 시를 함께 감상함으로써, 우리는 꽃의 외형을 넘어 그 내면의 에너지와 본질을 느끼게 됩니다. 이는 자연과 인간의 깊은 연결을 깨닫게 하며, 우리 자신도 그 일부임을 상기시켜 줍니다.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 <Jimson Weed/White Flower No. 1>을 바라보면 마치 꽃이 세상을 향해 천천히 숨을 쉬며 다가오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볼수록 꽃이 커지면서 의미를 전달하는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을 그 꽃은 제게 하고 싶은 걸까요?
오키프는 꽃을 단순한 아름다움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지요. 꽃잎의 곡선을 극대화하고, 화면을 가득 채우는 구도를 통해 꽃의 존재감을 강렬하게 드러냈습니다. 그녀의 그림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꽃이 가진 에너지를 시각적으로 확장시키는 작업이었습니다. 오키프의 시선 속에서 꽃은 단순한 형상이 아니라, 감각과 영혼을 일깨우는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오키프의 시선은 박준원의 시 <꽃을 보며>와 맞닿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꽃의 빛만을 본다지만 나는 오직 꽃의 기운만을 본다오”라는 시구는 꽃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 본질적인 에너지를 바라보려는 태도를 담고 있습니다. 박준원이 바라보는 꽃은 단순한 아름다움의 상징이 아닙니다. 그는 꽃이 지닌 - 보이지 않는 -기운을 느끼고, 그 기운이 세상에 가득 찬다면 자신 또한 한 송이 꽃이 될 것이라 말하는 것이겠지요. 이는 자연과 인간이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기운과 감각으로 연결된 존재임을 깨닫는 순간으로 연결되고요.
오키프와 박준원은 각각 회화와 시라는 다른 매체를 사용하지만, 그들이 꽃을 바라보는 방식은 닮아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꽃의 색과 형태, 즉 ‘빛’을 감상하지만, 이들은 그 안에 깃든 ‘기운’을 보았습니다. 오키프는 그림을 통해 꽃이 지닌 강렬한 생명력을 표현하고, 박준원은 시를 통해 꽃이 지닌 보이지 않는 기운을 탐색하고, 둘 다 꽃을 단순한 관상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바라본 것입니다.
꽃을 보는 태도는 결국 세상을 보는 태도와 맞닿아 있습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에만 머물지 않고, 그 안에 흐르는 본질적인 기운을 바라보려 할 때 우리는 사물과 깊이 연결될 수 있습니다. 오키프의 붓 터치와 박준원의 시어가 만나 꽃의 존재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꽃을 깊이 바라볼 수 있는 사람만이 스스로도 한 송이 꽃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들처럼 꽃을 보고 기운을 보려면, 제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만 하겠지요.
도처에 성찰의 순간과 계기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