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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불 지피고, 숨결을 보탤 일

by 윤재

국토서시國土序詩


조태일


발바닥이 다 닳아 새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야윈 팔다리일만정 한껏 휘저어

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

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

조용히 발버둥 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

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

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 지필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보탤 일이다.


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

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 일이다.


-신경림외 지음,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 , 2024, 창비시선 500 특별시선집



1970년대의 군부 독재의 칼날에 온몸으로 대항하며 민중의 과감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시인 조태일(1941~1999)의 『국토서시』가 뚜벅뚜벅 오늘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조태일 시인은 유신과 군부독재에 저항한 문인으로 여러 번 투옥되었고, 삶의 순결성을 파괴하는 제도적 폭력에 결연한 의지를 표현한 시인의 언어는 뜨거운 울음을 표출합니다.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아침 선박』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어두운 시대에 맞서는 자유정신과 고향상실의 체험을 빼어나게 형상화 왔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광주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했던 조태일 시인을 이승하 평론가는 “남성적인 톤으로 치열한 사회의식과 국토에 대한 끈질긴 애착을 표출한 시인”이라고 평했습니다.



조태일 시인의 『국토서시』는 단순한 자연 예찬이나 애국심 고취를 넘어서, 삶과 조국에 대한 깊은 성찰과 헌신의 의지를 서럽게 담아낸 작품입니다. 시인은 우리 국토와 삶을 한데 묶어,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애환과 역사적 아픔, 그리고 그 속에서도 희망을 피워내려는 굳은 다짐을 뜨겁고 단단한 시어로 풀어냈습니다.


첫 연에서 시인은 발바닥이 다 닳아 새살이 돋도록 조국을 밟을 수밖에 없음을 노래합니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노동의 반복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결코 멈출 수 없는 역사적 행보이자 삶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를 상징합니다. 마치 대지 위를 걷는 것이 우리의 숙명인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밝으며 존재의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두 번째 연에서는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의 하늘 아래에서 서성일 수밖에 없음을 말합니다. 이는 끊임없는 시련과 희생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숨이 다할 때까지 삶을 불태우며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인간의 숙명을 강조한 부분이라 할 수 있지요.


세 번째 연에서는 기쁨과 슬픔을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는데, 이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 문화, 그리고 역사의 흐름을 반영하며, 그것을 함께 나누고 감내해야 하는 공동체적 삶의 의미를 시사합니다.


이후의 연에서는 버려진 땅에서 자라는 풀잎과 돌멩이 하나에까지 존재의 가치를 부여하며, 우리 삶의 터전이자 역사의 현장인 국토와 깊이 연결된 삶을 강조합니다. 조국의 모든 요소에 숨결을 보태며, 온 존재를 불태워 헌신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임을 역설하는 대목이지요.


마지막으로 시인은 우리의 삶을 불 지피고 숨결을 보태야 하며, 심지어 우리의 피와 살결, 뼈까지도 통째로 바쳐야 한다고 외칩니다. 이는 개인의 삶이 단순히 개인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부로서 역사와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시인의 강렬한 어조는 조국과 민족을 향한 헌신과 희생의 정신을 강조하며,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국토서시』는 단순한 애국적 정서에 머무르지 않고, 조국과 삶을 동일선상에 놓고 바라보며 우리의 존재 의미를 성찰하게 하는데, 우리 민족의 역사적 고난과 조국에 대한 헌신을 강렬하게 담아낸 조정래 작가의 『아리랑』을 떠오르게 합니다. 두 작품은 조국을 단순한 지리적 공간이 아닌, 피와 땀, 그리고 희생으로 이루어진 생명력 있는 존재로 형상화하며, 이를 지키기 위한 끊임없는 투쟁과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아리랑』에서도 일제 강점기 동안 수많은 민중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희생하는 모습을 통해, 조국을 위한 헌신이 개인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거칠게 휘도는 바람을 앞세우고 탁한 회색빛 구름이 바다 쪽에서 몰려오고 있었다. 시꺼먼 먹구름은 하늘을 금방금방 삼켰다. 그리고 그 두껍고 칙칙한 구름덩이들은 서로 얽히고설켜 꿈틀대고 뒤척이며 뭉클뭉클 커져가고 있었다. 순간순간 그 형상이 변하고 있는 먹구름은 무슨 살아 있는 괴물처럼 흉물스럽기도 했고, 무슨 액운을 품고 있는 것처럼 음산하기도 했다... p.9”, 『아리랑』 중에서.

이렇게 묘사된 암울한 하늘과 거센 바람은 당시 조선의 말의 현실을 은유적으로 보여줍니다. 괴물처럼 흉물스러운 구름덩이들은 조선이 겪어야 할 고통과 절망을 상징하는 것이겠지요.


일본인 하시모토는 누가 나라를 뺏기라고 했냐고 묻습니다. 이 하시모토의 물음은 안타깝게도 몰지각한 어떤 이들이 우리에게 현재도 묻고 있는 현재진행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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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을 하던 송수익의 장례식에서 불리는 진혼곡.

“왜 왔던고 왜 왔던고 만주 벌판에 왜 왔던고

낯설고 물선 만리타국 만주땅에 어인 일로 왔던고

삼천리라 금수강산 왜놈 발에 짓밟혀서

조선 해는 간곳없이 암흑천지 되었으니...” 은 나라를 빼앗긴 슬픔과 암흑천지 같은 현실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아리랑』은 식민지시대를 깊은 역사 인식으로 탐구한 대하소설로 김제 출신의 인물들이 군산, 하와이, 동경, 만주, 블라디보스토크 등지로 옮겨서 조국을 떠나 타지에서 고통받는 민중들이 다시금 고향을 그리워하고, 조국의 회복을 간절히 바라는 40여 년의 세월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생활상뿐만 아니라 일제의 폭압에 맞선 우리 민족의 저항과 투쟁과 승리의 역사를 부각하고 있어 민족적 긍지와 자긍심, 자존심을 회복케 하는 역작입니다.


『국토서시』와 『아리랑』은 조국과 민중의 운명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이야기하며,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단순한 국토가 아닌 그 안에 깃든 역사와 정신임을 일깨웁니다. 두 작품은 조국에 대한 깊은 애정과 헌신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오늘날 우리가 가져야 할 책임과 의지를 다시금 되새기게 합니다.



조태일의 시 『국토서시』와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이 우리 민족의 삶과 역사적 고난을 담아낸 것처럼, 오지호의 『남향집』 또한 한국의 전통적인 삶과 자연 속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국토서시』에서 시인은 조국의 땅을 밝으며 살아가는 민중의 모습을 그려내고, 『아리랑』에서는 일제 강점기와 독립운동 속에서 고난을 견디며 살아가는 민중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남향집』은 이러한 이야기와 맞닿아 있습니다. 그림 속 따스한 햇살과 평온한 분위기는 민중의 삶 속에 깃든 희망을 상징하며,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안식과 위로를 전하는 듯합니다. 『국토서시』와 『아리랑』에서 강조하는 민중의 강인함과 조국에 대한 애정이 『남향집』의 따뜻한 빛과 조용한 정취 속에서도 느껴집니다.



오지호(吳之湖, 1905~1982)는 한국 근대 미술의 대표적인 서양화가로, 자연주의적 화풍과 빛을 강조한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전라남도 화순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 도쿄 문화학원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후 귀국하여 한국 미술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오지호는 일제 강점기와 해방, 그리고 한국전쟁을 겪으면서도 한국적 정서를 담은 작품을 지속적으로 창작하는 과정에 서양화 기법을 받아들이면서도 한국의 자연과 생활을 조화롭게 표현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특히, 빛과 색채의 조화를 강조한 인상주의적 화풍을 발전시켜 한국적 인상주의의 선구자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하는 데 힘썼고,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하며 한국 미술계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그의 작품 세계는 단순한 풍경화를 넘어서 한국인의 정서와 자연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담아내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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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호, <남향집> 1939,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오지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남향집, 1939』은 한국적 인상주의 화풍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이 그림은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남향집을 배경으로 하여, 평온한 농촌 풍경과 한국적인 정취를 담고 있습니다.



햇빛이 따스한 겨울날의 오후가 화면의 주조를 이루는 노란색에서 느껴집니다. 단발머리에 빨간 원피스를 입은 아이가 손에 무언가를 들고 대문턱을 넘으려고 합니다. 아이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한낮의 따스한 해바라기를 즐기려는 하얀 개가 누워 있습니다. 굵은 나뭇가지의 그림자는 얼기설기 담벼락과 지붕에 이어져 있습니다. 네모난 돌들은 가지런히 쌓아 바깥마당을 경계 지어 놓고 아마도 아이는 하얀 개에게 무엇인가 먹을 것을 주려고 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파란 상록수가 우측 하단에 위치하여 마당의 굵은 밤색의 나무둥치와 대조를 이루며 시선을 나누고 있습니다. 나무의 수직선과 지붕과 처마 돌 단의 수평이 균형을 이루며 안정감을 줍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 할머니 집을 떠오르게 하는 그리움이 함께 합니다.



『남향집』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남쪽을 향한 집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림 속 따스한 햇빛은 생명력과 희망을 상징합니다. 오지호는 이 작품에서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활용하여 현실감을 극대화했으며, 부드러운 색채와 유려한 필치를 통해 정겨운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이 작품은 조선 후기와 근대 초기에 우리나라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삶의 풍경을 담고 있으며, 전통적인 주거 형태와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특히, 남향집은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생활공간이자 따뜻함과 안락함을 상징하는 장소로 여겨져 왔습니다. 오지호는 이를 서양화 기법을 통해 감성적으로 표현하며, 우리의 고유한 자연과 삶을 조형적으로 재해석했습니다.


그림은 1939년에 제작된 것이 아니라 색감, 색감·구도·물감 살펴봤을 때 훼손된 작품을 1960년대에 다시 그린 것이라는 주장도 있긴 합니다만 현재는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조태일의 시 『국토서시』와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이 우리 민족의 삶과 역사적 고난을 담아낸 것처럼, 오지호의 『남향집』 또한 한국의 전통적인 삶과 자연 속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국토서시』에서 시인은 조국의 땅을 밝으며 살아가는 민중의 모습을 그려내고, 『아리랑』에서는 일제 강점기와 독립운동 속에서 고난을 견디며 살아가는 민중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남향집』은 이러한 이야기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림 속 따스한 햇살과 평온한 분위기는 민중의 삶 속에 깃든 희망을 상징하며,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안식과 위로를 전하는 듯합니다. 『국토서시』와 『아리랑』에서 강조하는 민중의 강인함과 조국에 대한 애정이 『남향집』의 따뜻한 빛과 조용한 정취 속에서도 느껴집니다.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거나 억울한 난민이 생기지 않는 안전한 나라!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어도 언젠가는 다시 해가 떠오를 것이며, 피 흘리며 싸운 땅 위에는 결국 새로운 희망이 자라날 것을 따스한 빛이 가득한 남향집에서 소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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