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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그리움

by 윤재

“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은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흐는데

나는 기억해야 하는가

기쁨은 늘 괴로움 뒤에 온다는 것을....”


--기욤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Le pont Mirabeau」중에서,



이 시의 첫 문장은 강력한 흡인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 시는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1880~1918)가 실연의 상처를 시간의 흐름과 함께 시적으로 형상화한 대표작입니다. 반복되는 후렴("날들은 지나가고 나는 남아 있네")은 시간 속에서 사랑은 흘러가고, 기억하는 ‘나’만이 고요히 남아 있다는 정서를 깊이 있게 전달합니다. 그는 사랑의 끝자락에서 강물처럼 흘러가버리는 무상함을 노래했습니다. ‘미라보 다리’는 실제 파리의 다리이지만, 시 속에서는 사랑의 시작과 끝, 기억과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의 사랑을 애도하면서도, 그 기억을 품고 살아가는 ‘나’를 조용히 드러내는, “날들은 지나가고 나는 남아 있네”라는 마지막 연은 특히 인상 깊습니다. 상실과 흐르는 시간 앞에서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자아의 잔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전통과 근대, 전쟁과 아름다움 사이에서 흔들리던 도시에서 두 영혼이 만나, 지금까지도 희미한 별빛처럼 예술과 시의 하늘에 남아 있습니다. 바로 시인이자 모더니즘의 선구자였던 기욤 아폴리네르, 그리고 몽환적이고 여성적인 세계를 그려낸 화가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1883~ 1956)입니다. 그들의 사랑은 조용한 폭풍 같았습니다. 부드럽고도 어딘가 파열된 1907년, 로랑생은 막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던 젊은 화가였고, 아폴리네르는 새로운 시의 언어를 실험하던 시인이었을 때 그들은 만났습니다.


시와 평론을 쓰는 아폴리네르와 무명 화가였던 로랑생은 예술가로서의 열정뿐만 아니라 둘 다 사생아라는 비밀스러운 공통분모를 갖고 사랑에 빠졌고, 파리의 예술계는 그 둘을 새로운 보헤미안 커플로 주목했다고 합니다. 아폴리네르는 로랑생을 “내 시에 그림자를 드리운 여인”이라 불렀고, 로랑생은 그 사랑을 연필과 붓으로 되새겼다지요.


그녀는 그의 뮤즈가 되었고, 그는 그녀의 정서적 중심이 되었지요. 로랑생의 화폭 안에 등장하는 부드러운 색조와 흐릿한 선들은 당시 남성 중심의 입체파가 추구한 단단한 기하학을 조용히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폴리네르의 시는, 사랑과 그 상실의 복잡함을 노래하며 종종 그녀의 그림자를 문장 속에 감추었습니다. 그들의 관계는 격정적인 선언보다는, 예술 속에 묻어나는 감정의 물결로 남아 있습니다. 아폴리네르의 대표작 「미라보 다리」에는 로랑생의 이름이 직접 언급되지는 않지만, 사랑이 흐르고 흘러가 버리는 강물 아래 그녀의 존재가 숨 쉬고 있습니다. 시인은 시간과 이별, 기억을 붙잡으려 애쓰며 그녀를 노래했고, 로랑생 역시 자신의 화폭에 흐릿하고 애수 어린 여성들의 모습을 반복해 그리며, 이름 없는 그리움을 담아냈습니다.


기욤 아폴리네르는 ‘Calligramme(그림 모양의 글쓰기, 상형시, 또는 시-그림)'이라고 하는 시각적 실험의 형식을 처음 사용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시, 회화, 음악의 요소를 결합시킨 ’ 그림 같은 시‘를 만들었고, 프랑스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으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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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아폴리네르, <비>, 1916, 뉴욕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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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아폴리네르, <에펠탑>, 1918, 사진출처: WIKIPEDIA



마리 로랑생은 프랑스의 화가, 판화가, 무대 디자이너로, 우아하면서도 어딘가 우울한 여성들의 섬세한 초상화로 유명했습니다.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고, 1903년부터 1904년까지 로랑생은 파리의 움베르 아카데미에서 미술을 공부했습니다. 그녀는 파블로 피카소, 조르주 브라크, 기욤 아폴리네르 등 당시 아방가르드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여성의 섬세한 정서와 독자적인 색채 감각을 통해 자신만의 회화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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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로랑생, < 예술가 집단>, 1908 (사진 출처: Trivium Art History)


* 그림 왼쪽으로부터, 파블로 피카소, 마리 로랑생(꽃 한 송이 들고 있는 여인),

기욤 아폴리네르(책을 들고 있는 남자), 페르낭드 올리비에(피카소의 모델) -

이 그림은 마리 로랑생이 피카소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때였다고 합니다.


1923년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위대한 남성들의 영향을 받는 한, 나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었어요.”라고 말한 것은 그녀 그림의 변화 이유를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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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로랑생, 1922 (사진 출처: Artnet)



마리 로랑생은 목가적인 풍경 속 젊은 여성들을 섬세하게 묘사한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차분한 분홍색, 비둘기 회색, 민트 그린을 사용하여 몽환적인 현실 세계를 창조했습니다. 생전에 그녀는 코코 샤넬(Coco Chanel)을 비롯한 파리 유명 인사들의 초상화를 그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한때는 입체파의 세계 한가운데 있었고, 부드러운 선과 흐릿한 색채로 자신의 회화 세계를 만들어 나간 예술가로 그녀의 그림은 언제나 흐릿하고 투명합니다.

장밋빛 얼굴, 흐릿한 눈동자, 부드럽게 번진 파스텔톤.

색채들은 아련한 슬픔과 사랑의 색으로 보입니다.



’ 일요일의 화가’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앙리 루소는 아폴리네르와 로랑생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이 둘을 그린 앙리 루소의 그림은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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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루소, <시인과 뮤즈>, 1909, 바젤 미술관


* 아름답고 총명한 로랑생은 자신을 건장하게 표현한 이 초상화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럴 만도 하지요...




하지만 둘의 사랑은 오래 머물지 않았습니다.

결별의 이유는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별을 맞이한 것은 아폴리네르가 루브르 박물관 모나리자 도난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소문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추론과 아폴리네르가 로랑생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답답함과 예술가로서의 갈등도 원인이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만, 어찌 우리가 알 수 있을까요. 때로는 당사자들도 모르게 서서히 관계에 균열이 생기거나 소원해지기도 하니까요.



그 후 마리 로랑생은 독일계 귀족과의 결혼으로 파리를 떠났고, 아폴리네르는 병든 몸으로 돌아왔는데, 그는 더 이상 시를 쓰지 못했습니다. 그가 1913년에 발표한 「미라보 다리」는 그러한 상실의 기록입니다. 강은 흐르고, 시간은 흐르고, 사랑도 흘러가지만 미라보 다리만은 남아 있습니다. 마치 그 다리 밑을 지나간 한 연인의 기억을 붙잡고 있는 듯이.

그는 시에서 되풀이합니다.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시간은 가고, 나는 남는다.”



로랑생 역시 그 사랑을 지우지 못해서였을까요?

그녀의 그림 속 인물들은 추억처럼 흐릿하게 표현되었습니다.

이 둘의 사랑은 현실 속에서 끝이 났지만, 예술 속에서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은 시로 사랑을 애도했고, 한 사람은 캔버스 위에 그리움을 색칠했지요.

결국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미라보 다리 아래 흐르는 강물처럼 서로를 품었습니다.



그러한 마리 로랑생의 특징은 일본 아티존 미술관(Artizon Museum)에 소장된 작품 <두 소녀(Two Young Girls)>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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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로랑생, <두 소녀>, 1923, 아티즌미술관



<두 소녀>는 제목 그대로 두 명의 젊은 여성을 나란히 배치한 초상화입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은은한 파스텔 색조의 배색이지요. 연한 핑크, 블루, 베이지 톤이 부드럽게 어우러지며,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우아한 인상을 줍니다. 두 인물은 거의 움직임 없이 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눈을 마주치지 않고 각자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군요. 이로 인해 두 인물 사이에는 미묘한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마치 침묵 속에서도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친구, 자매, 혹은 거울 속의 나와 또 다른 나처럼.


이들은 마치 꿈속의 인물처럼, 구체적인 개성보다는 추상적인 여성성의 상징처럼 묘사되어 있습니다. 로랑생은 현실을 재현하기보다는, 여성의 이상적이고 감성적인 면모를 끌어내기 위해 얼굴 윤곽을 단순화하고, 표정을 최소화하며, 배경을 비워냅니다. 그래서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화가가 만든 서정적인 세계 속에 들어가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또한 로랑생 특유의 부드럽고 리듬감 있는 곡선은 인물들의 머리카락, 옷 주름, 어깨선 등에 반복되어 나타나며, 그림 전반에 일종의 음악적 조화를 부여합니다. 이는 로랑생이 실제로 무대 미술과 발레 의상 디자인에도 참여한 경험이 반영된 부분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남성 화가들이 여성의 육체를 대상화하던 시기에, 로랑생은 여성의 감정과 정신을 중심에 놓았다는 점에서 중요한 작가입니다. <두 소녀>는 그런 로랑생의 삶과 시선이 잘 드러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로랑생은 여성을 여성의 시선으로 그렸습니다. 뚜렷하지 않은 선, 연한 파스텔 톤, 그리고 눈썹도 입술도 또렷하지 않은 얼굴들 속에서 ‘불완전함’을 보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온기’가 전해집니다. 그녀는 강렬한 색이나 극적인 구도를 선호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신 여성의 내면이 가지고 있는 유순하고도 견고한 감정을 끌어올리려는 듯 보입니다. 그녀는 단순한 입체주의 화풍에서 벗어나, 파스텔 톤의 부드러운 색감, 곡선 중심의 유려한 구성, 그리고 여성 인물 중심의 주제로 고유한 회화 언어를 만들어냈습니다. 특히, 그녀의 그림 속 여성들은 현실의 초상을 넘어서 이상화된 존재로, 꿈과 동화 속 인물을 닮아 있는 듯합니다. 이는 로랑생이 여성의 내면세계와 감수성을 회화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일관된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두 소녀〉는 언뜻 보기에 평온하고 느슨하며 고요합니다. 그러나 그 고요함은 단순한 평면이 아니라 시간이 멈춘 순간이고, 상처를 감춘 사랑이며, 세상을 향한 조용한 항의로 보이기도 합니다. 로랑생은 당시 남성 중심의 미술계에서, 피카소 등의 거친 선이나 강렬한 구도와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를 증명하려고 했나 봅니다.


그녀의 삶을 알고 있어서일까요?

이 작품을 오래 바라보다 보면, 그림 속 소녀들이 조용히 말을 걸어오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는 연약한 존재가 아니야.”
“우리는 조용히 존재하고, 사랑하며, 견뎌왔어.”
“그리고 우리는 잊히지 않을 거야.”


마리 로랑생은 자신의 그림에서 그녀 자신이기도 하며, 그녀가 사랑했던 이들, 그녀가 바라던 세상, 그녀가 버티며 살아냈던 고요한 저항의 기록을 표현하고자 했을까요....

화려하지 않지만 결코 잊히지 않는 색.
조용하지만 아주 또렷한 목소리.
<두 소녀〉는 오늘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조용한 사랑도, 진짜 세계야. “


<두 소녀> 그림 속 인물들은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 있습니다. 그 시선은 ‘욕망의 대상’이 아닌, 하나의 자아로서 세상을 관조하는 존재의 시선으로 다가옵니다.


여성적 감성과 부드러움이라는 고유한 언어로 자신만의 세계를 개척한 마리 로랑생.

로랑생의 그림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지요.

연한 파스텔톤, 희미한 윤곽선, 부드러운 얼굴, 몽환적인 눈동자.

그녀의 세계에는 강한 대조나 드라마틱한 구성이 없습니다.

대신 안개 낀 듯한 풍경, 꿈결 같은 인물, 그리고 서로 말을 주고받지 않지만 마음은 연결된 존재들이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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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로랑생, <마드모아젤 샤넬의 초상>, 1923, 오랑주리 미술관


* 초상화를 의뢰한 코코 샤넬은 이 그림이 힘없고 무기력해 보인다고 인수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많은 그림에서 모델들은 유사한 얼굴과 실루엣을 지니고 있으며, 머리색이나 옷차림만을

다르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리 로랑생의 자화상뿐 아니라 샤넬, 헬레나 루벤스타인 같은

서로 다른 여성들의 초상에서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런 양식을 두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로랑생은 단지 자신의 회화 브랜드를 구축하기 위해 실제 인물과 상상 속 인물을 하나의 양식에 끼워 맞춘 것일까? 아니면 그녀가 모든 여성을 거의 같은 특성으로 축소시킨 이 집착이 그녀의 성적 욕망—

자신과 닮은 존재에 대한 끌림—을 드러내는 단서일까?

정답은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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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로랑생, <젊은 여인의 머리>, 1926, 시카고 미술관





색채는 로랑생 회화의 언어입니다. 연한 분홍, 창백한 파랑, 회백색 피부 위에 얹힌 희미한 라벤더 빛. 그것은 시끄럽지 않지만, 묘하게 마음을 끌고 있습니다. 그녀는 소리를 낮춤으로써 더 깊은 울림을 만들어냈습니다. 당시 미술계는 여성 화가에게 개인적 감수성을 드러내는 것을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곤 했답니다. 로랑생은 혼외 출생이라는 사회적 조건 속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경계에 선 존재로 살아야 했겠지요. 그녀의 나른한 관능미와 서정성을 포함하고 있는 조용한 그림들은, 역설적으로 삶의 슬픔과 아름다움을 더 깊이 보여주는 것으로 다가옵니다.



”나를 열광시키는 것은 오직 그림밖에 없으며, 따라서 그림만이 영원토록 나를 괴롭히는 진정한 가치이다 “라고 말한 마리 로랑생의 그림을 마주할 때면, 마치 창백한 달빛 아래 앉아 오래된 시를 읽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강력한 빛은 없지만, 그 안에 슬픔과 고요함과 존엄이 흐르고 있습니다. 마치 그녀는 “부드러운 것 또한 강할 수 있어요.”라고 속삭이는 듯합니다.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림은 여전히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침묵은, 깊고 단단한 울림이 되어 우리 마음에 남습니다.



아폴리네르로부터 도망치듯 결정한 결혼이었을까요?

로랑생의 남편은 성실한 남편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친구에게 “남편은 결혼하고 나서 3개월 만에 나를 잊어버렸어.”라고 말했답니다. 이때 로랑생이 남편의 배신으로 인한 고통, 고된 망명 생활, 파리 예술계에서 잊힌 서러움을 담아 쓴 시가 「잊혀진 여인」이라고 합니다. 로랑생은 화가로 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시인으로서의 그녀 역시 섬세하고 감성적입니다. ‘죽은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잊혀진 여인’이라는 이 시에서 말하는 ‘잊혀진 여인’은 단지 사랑에서 소외된 인물만이 아니라, 존재를 들여다보지 않는 세상, 말하지 않아도 침묵을 감내해야 하는 여성, 그리고 그 모든 걸 ‘울지도 않고’ 견뎌야 하는 인간의 초상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요...



아폴리네르의 시가 ‘기억’과 ‘흐름’을 통해 지나간 사랑을 애도한다면, 로랑생은 그 사랑조차 기억되지 않는 존재, ‘소외된 자’의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그녀의 시 속 ‘잊혀진 여인’은, 사실 잊히지 말아야 할 예술 속 목소리 없는 자들의 초상이라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확대 해석이 될까요.



사랑이 지나가도 누군가는 기억하며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조차 기억되지 않는 자의 슬픔은 어떠할까요?

아폴리네르의 화자가 지나간 사랑을 기억하는 데 반해, 로랑생은 기억조차 사라진 ‘목소리 없는 존재’를 말하고 있습니다.


「미라보 다리」와 「잊혀진 여인」은 사랑의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하나는 강물처럼 흘러가며 남긴 자국이고, 다른 하나는 흘러가버린 자국조차 남지 못한 존재의 속삭임입니다. 이 두 시를 통해 기억되는 사랑과 기억되지 않는 사람, 두 가지 상실의 무게를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기욤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심각한 상처를 입고 회복 도중 스페인 독감에 걸려 세상을 등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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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기욤 아폴리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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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부상당한 기욤 아폴리네르 (사진 출처: WIKIPEDIA)




그의 나이 38세였습니다. 그가 죽고 몇 해 후, 피카소와 마티스가 기욤의 묘에 묘비를 세워 주었는데, 그 묘비에는 "무게 없는 인생을 나는 얼마나 많이 손으로 달아보았던가."라고 적혀 있다고 합니다.



반면,

마리 로랑생은 숨지기 전 “ 하얀 드레스를 입히고, 빨간 장미와 나의 연인 아폴리네르의 시집을 가슴에 올려달라”는 유언을 남겼다지요.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지만, 흔적은 남아 있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예술은 살아남는다는 사실, 그리고 서로를 상처 낸 이들이 예술 속에서 끝내 서로를 완성할 수 있다는 역설. 그 사랑은 영원하지 않았지만, 그 울림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그림 속 부드러운 선들, 시어(詩語) 하나하나에 그들의 사랑이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그것은 언젠가 있었던, 그러나 끝내 손에 쥐지 못한 사랑. 마치 미라보 다리 아래 흐르는 센강처럼, 그 사랑은 지금도 조용히 예술 속을 흐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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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보 다리 (사진 출처: Jacket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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