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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by 윤재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박용재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저 향기로운 꽃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저 아름다운 목소리의 새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숲을 온통 싱그러움으로 만드는 나무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을 사랑한 만큼 산다


외로움에 젖은 낮달을 사랑한 만큼 산다

밤하늘의 별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람을 사랑한 만큼 산다

홀로 저문 길을 아스라이 걸어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나그네를 사랑한 만큼 산다


예기치 않은 운명에 몸부림치는 생애를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그 무언가를 사랑한 부피와 넓이와 깊이만큼 산다


그만큼이 인생이다


--박용재,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2003, 민음사 중에서



박용재 시인의 시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는 사랑의 깊이와 넓이가 곧 삶의 깊이와 넓이임을 조용하고 단단한 어조로 말해주는 작품입니다. 시인은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는 문장을 시 전체에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사랑이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에너지이며 삶을 지탱하는 근본임을 강조하는 듯합니다.


자기 고백과도 같은 시의 주인공 박용재 시인은 1960년 강릉에서 출생해 1984년 월간 시지 [心象]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시인은 자연 속 다양한 존재들—향기로운 꽃, 아름다운 새소리, 나무, 붉은 해, 외로움에 젖은 낮달, 밤하늘의 별들—을 ‘사랑의 대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사랑함으로써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말하는군요. 사랑이라는 감정이 단순한 감상이 아닌, 존재의 실감이고 삶의 증거임을 시는 말없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나무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라는 구절은 단순한 자연의 묘사를 넘어서, 생명과 연결되어 있는 사랑의 깊이를 보여줍니다. 나무는 뿌리 깊이 내리고, 흔들리면서도 버티며 자라는 존재지요. 그런 나무를 사랑한다는 건, 시인이 뿌리내리는 삶을 추구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사랑한 만큼 살아간다”는 반복 구절은, 사랑이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매일의 삶과 호흡처럼 지속되어야 하는 힘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다가옵니다.



후반부에 이르러 시인은 “예기치 않은 운명에 몸부림치는 생애를 사랑한 만큼 산다”라고 고백하는 것 같습니다. 사랑은 단지 아름다운 것들에만 머무르지 않고, 외로움, 계절의 변화, 운명과의 투쟁까지도 사랑의 대상으로 포함하는 성숙한 사랑, 더 깊은 생의 통찰에서 비롯된 사랑으로 시인은 전하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박용재 시인의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는 나에게 하나의 시이자 하나의 추모곡으로 다가왔습니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는 이 단순한 문장은 마치 속삭이듯 반복되지만, 그 반복 속에서 점점 더 커지는 울림이 있습니다. 시인은 삶을 계절과 연결 짓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나그네를 사랑한 만큼 산다”는 구절은 단순한 자연의 순환이 아니라, 존재의 시간과 감정의 흐름까지 포함하는 말처럼 느껴졌습니다. 사람은 나이만큼 사는 것도 아니고, 가진 것만큼 사는 것도 아니지요. 그가 얼마나 사랑했는가, 무엇을 향해 마음을 주었는가에 따라 그의 삶의 깊이와 무게는 달라지겠지요.


마지막 구절, “그만큼이 인생이다”는 짧지만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사랑한 만큼 살아온 삶, 그 자체가 곧 진정한 삶이라는 고백으로 간주됩니다. 결국 이 시는 삶과 사랑이 분리될 수 없는 하나임을, 그리고 사랑의 크기만큼 인생이 확장된다는 진리를 조용히 일깨워주는 따뜻한 파동으로 다가오는 시입니다. “그만큼이 인생이다”는 나에게 깊은 위로를 안겨주었습니다. 갑자기 어머니가 떠나셨지만,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이 시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서 사랑이 어떻게 인간을 존재하게 만드는지를 조용히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 시를 읽으며, 나의 마음 한편에 고(故) 천경자(1924~2015) 화백의 그림들이 떠올랐습니다. 한국의 ‘프리다 칼로‘라고 일컬어지는 ’ 꽃의 화가‘ 천경자 화백의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1967>, <고 孤, 1974>, <여인의 초상, 1977>, <황금의 비, 1982>, <노란 산책길, 1983>등과 같은 작품들은 붉고 푸르고 보랏빛의 감정들이 엉켜 있는 여성의 내면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림 속 여인들은 고요하지만, 결코 무기력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생을, 사랑을, 슬픔을, 계절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천경자 고.png

천경자, <고孤>, 1974, 서울시립미술관


황금의 비 1982.png

천경자, <황금의 비>, 1982, 서울시립미술관





마돈나.png

천경자, <화병이 된 마돈나>, 1990, 서울시립미술관




“나는 외로움을 사랑한 만큼 산다.”

“시류에 편승하지 않았고 사실적인 예쁜 그림으로 인기에 영합하지도 않았다. 지금 당장은 벽에 걸기조차 섬뜩한 인물화이지만 미래지향적인 소재와 화풍을 찾아 세계를 방랑하는 구도자의 삶을 살아왔다.”라고 말했던
천경자 화백 그림 속의 여인들은 바로 이 문장을 살고 있는 듯합니다. 외로움은 그들을 고립시키지 않고, 오히려 깊이 있게 만듭니다. 그 눈빛 속에는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린 기억, 사라져 가는 계절을 부여잡고 싶은 갈망, 그리고 자신을 끝내 사랑했던 흔적들이 묻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인은 또 말합니다.
“나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나그네를 사랑한 만큼 산다.”
천경자의 화폭 속에는 이 네 계절이 모두 존재합니다.
정열적인 꽃무늬 치마의 여름,
낙엽처럼 적막한 가을의 고독,
눈 내린 겨울을 닮은 창백한 얼굴,
그리고 다시 피어오르는 봄의 환희.
그 계절은 여성의 삶이자, 사랑의 궤적으로 보입니다.

박용재 시인의 시는 반복적으로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라고 속삭입니다.
그 문장은 기도 같고, 진술 같으며, 고백 같습니다.
마치 천경자 화백의 붓끝처럼.


화가는 색으로 고백했고, 시인은 언어로 사랑했습니다.
한 명은 얼굴을 그리고, 한 명은 삶의 윤곽을 그렸습니다.

결국, 시와 그림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사랑했는가?
우리는 얼마나 깊이 살아냈는가?


천경자 화백의 여인들처럼, 박용재 시인의 시 속 주인공처럼,
우리도 사랑한 만큼 존재하고, 사랑한 만큼 살아갈 것입니다.
그것이 삶의 진짜 부피이자 깊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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