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호박에 줄을 긋는다

by 연목

거울을 보다가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이게 누구야? 내 얼굴이 맞아?”
40대의 임신, 출산, 육아는 나를 송두리째 집어삼켰다. 흔히 말하는 분노의 트라이앵글 ― 수면 부족, 육아 스트레스, 그리고 체력 고갈. 그 결과 나는 급격히 늙었다. 예전엔 없던 팔자주름이 깊게 파였고, 이마 위에는 자글자글한 주름이 자리를 잡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충격은 탈모였다. 머리카락이 숭숭 빠져 나가더니 어느 날 보니 정수리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TV 광고 속 ‘풍성한 모발’은 나와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 같았다.


결국 나는 큰 결심을 하고 평생 처음으로 증모술을 했다. ‘나도 한 번쯤은 머리 숱의 기적을 맛보자!’ 싶었다. 돈을 꽤 들였으니, 풍성한 머리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글쎄, 좀비 모발은 좀비 모발이었다. 남들은 “어머, 한결 젊어졌다” 해줄 줄 알았는데 아무도 눈치를 못 챈다. 그저 내 통장이 가벼워졌다는 사실만 확실하다.


그래도 희망은 버릴 수 없다. 사람 마음이란 게 간사해서, 호박에 줄을 그으면 수박이 되지 않는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줄을 긋는다. 팔자주름을 지우겠다며 온갖 크림을 바르고, 두피 영양제를 바르고, 운동도 다짐한다. 효과가 있든 없든 ‘뭔가 하고 있다’는 마음이 나를 버티게 한다.


어느 날은 이런 생각도 해봤다. ‘차라리 줄만 긋는 게 아니라, 이쯤 되면 칼집이라도 내야 하는 거 아닐까?’


생각해보면 이 모든 몸부림이 꼭 외모 때문만은 아니다. 거울 속에 비친 나와 화해하고 싶어서다. 주름은 내가 살아온 시간의 낙서고, 탈모는 아이를 키우며 살아온 흔적이다. 이 흔적들을 ‘흉터’가 아닌 ‘훈장’처럼 받아들이는 연습. 그게 진짜 중년의 과제인지도 모른다.


삶도 마찬가지다. 완벽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우리는 줄을 긋고, 붙이고, 바르고, 달리며 버틴다. 그 몸부림 속에서 오늘 하루를 살아낼 힘이 생긴다. 그래서 나는 내 얼굴을 보며 중얼거린다.
“그래, 늙은 호박이면 어때. 줄을 그으면 또 새로운 무늬가 생기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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