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 속에 놓여야 성장한다
2023년은 예기치 못했던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나름 규칙적인 루틴을 가지고 얼핏 보기엔 단조로운 일상의 연속이었지만 몇 가지 변수들이 큰 파동을 만들었다. 결론적으로는 내 삶에 좋은 변화를 가져온 터닝포인트와 같은 나날들이기에 기분 좋게 한해를 회고해 본다
우선 일적으로는, 새로운 영업 직무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SCM 관련 분야에서 거의 7년 이상 일하면서 함께 일하는 동료, 매니저로부터 배우는 것도 많았지만, 마음 한편엔 늘 새로운 업무에 도전하고 싶다는 갈망이 컸다. 평생 직장인으로 살 것은 아니기에, 이왕 회사에 다니면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 “편하고 익숙한 것들을 넘어 조금씩이라도 새로운 도전을 하거나 무리하지 않는다면 현상유지는 될지 몰라도 실력이 늘지 않는다.”라는 임경선 작가님의 말처럼, 익숙함에 젖고 싶지 않은 의지도 컸다.
그러다 올해 초, 우연히 내부 공고가 떴고 망설임 끝에 One of candidates로 지원했다. 첫 면접을 보고 스스로가 부끄럽기도 했고, 과연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맞는지 다시 한번 되묻기도 했다. 아마 내부지원이라 쉽게 될 것이라는 오만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두 번째 면접의 기회가 왔을 때는 사회 초년생의 심정으로 돌아가 간절한 마음으로 준비했다. 나를 어필할 수 있는 PPT도 만들고 혼자 중얼중얼 모의 인터뷰도 퇴근 후에 매일 연습했다. 설령 결과적으로 실패였을지라도 이렇게 노력한 경험은 잔근육처럼 몸에 배서, 언젠가 또다시 기회가 오면 노력해 본 지금 이 경험이 진가를 발휘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준비하니 후회는 없었다.
결론적으로 여차저차 운이 좋게 새로운 직무로 전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수인계받을 때도 불안함이 가득했다. 과연 영업 경험이 1도 없는 내가 할 수 있을까? 나를 뽑은 이들을, 특히나 함께 일하던 사람들인데 실망시키면 어떻게 하지? 고객들이 얕잡아 보면 어떻게 하지? 오만 걱정이 늘 미팅전마다 앞섰지만, 막상 상황 속에 나를 담가 두면 100%는 아니더라도 제법 잘 해냈다. 배우자의 조언도 큰 도움이 되었다. “전임자들이 15-20년간 쌓아온 경험을 네가 몇 개월 만에 다 습득하겠다는 태도도 어찌 보면 오만한 태도야. 그러니까 조급해하지 말고, 장기레이스라 생각해” 이런 유의 T 식 조언이었는데, 생각보다 불안함을 달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8개월이 지났다. 끝이 없는 조직 내 변화로 여전히 어수선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많은 분들의 도움 속에 무사히 영업이라는 업무에 잘 안착한 것 같다. 돌아보면 나는 늘 상황 속에 놓이고, 약간의 불안과 긴장을 안고 성장하는 사람이었다. 단기간 내에 결과적으로 엄청난 매출신장을 달성하거나, 신규 프로젝트를 달성할 수는 없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일단 새로운 업무에 잘 적응했고,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동기부여를 얻었다.
개인적 일상에서도 엄청난 변화가 찾아왔다. 드디어 아이가 생긴 것이다. 신혼을 즐기다가 자연스럽게 아이를 갖자는 생각은 있었는데, 그것이 결혼 4년 차에 실현되었다. 5mm의 작은 존재가 우리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행복감을 안겨준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도 벅찼다. 분명 아이가 태어나면, 우리의 일상은 완전히 삶의 패턴이 바뀔 것이다. 지금처럼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겠지만, 동시에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새로운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경험의 영역은 또 무궁무진할 것이며,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경험을 아이와 다시 해볼 수도 있고,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의 스펙트럼을 더 넓혀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기대된다.
무엇보다, 엄마로서의 자아가 새로 생긴다는 사실이 설렌다. 물론 걱정도 된다. 잘할 수 있을까? 한 사람의 인생에 좋은 텃밭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일은 어떻게 하지? 육아휴직 후 돌아와도 지금의 커리어를 유지할 수 있을까? 지금 걱정한들 아무런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들이다. 지금껏 그래왔듯, 막상 상황이 닥치면 나는 잘할 수 있을 것이라 스스로 믿어본다. 가장 중요한 태도는 스스로 한계 짓지 않는 것이다. ‘이제 아이가 있으니까’ ‘나이 들었으니까’ ‘여자니까’ 등등 내가 나를 가두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엄마로서의 자아와 일하는 자아로서의 정체성을 양립해 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