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해도, 자극적이지 않아도 좋아
고등학교 때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라디오를 즐겨 들었다. 프로그램 이름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사연에 뽑히면 본인이 속한 단체에 치킨을 선물해주는 코너가 있었다. 도대체 그때 무슨 마음이었는지는 몰라도 별로 친하지도 않은 담임선생님을 사연에 올렸다. 그냥 치킨이 너무 먹고 싶었나 보다. 여차 저차 하다 보니 당첨이 되었고 ‘언제 몇 시에 사연이 소개되고, 치킨은 몇 시에 배달될 거다’라는 작가님의 전화를 받았다. 다행히 워낙 유쾌하신 선생님이라, 되려 자기 이름이 방송 타는걸 기뻐하며 모든 반 수업 때마다 언제 라디오가 방송되는지 칠판에 적고 다니셨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 상품에 눈이 멀어 이 프로, 저 프로에 사연을 보냈다. 물론 그 이후로는 당첨이 되진 않았다. 하지만 간간히 보내는 문자를 dj들이 읽어주거나 신청한 노래가 나오는 것을 몇 번 경험하고나니 라디오를 듣는게 더 즐거웠다. 아마 그때부터 음악을 듣기엔 뭔가 심심하고, 혼자 있다는 느낌을 받기 싫을 때마다 라디오를 즐겨 들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도 라디오는 습관적으로 즐겨 듣는다. 오빠도 운전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라디오를 틀어두는 사람이라 몇 시에 어떤 프로를 하고 있는지 쭉 꿰고 있다. 무엇보다도 라디오를 계속 접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집 거실에 tv가 없기 때문이다. 결혼 전 집에서 밥을 먹을 때, 온 가족이 주말마다 거실에 둘러앉아 밥을 먹었고 모두의 시선은 tv로 향해있었다. 자연스럽게 대화는 줄었다. 피상적인 얘기들은 오갔지만, 메인은 큰 화면에서 나오는 tv 프로그램이었다. 그게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는지는 몰라도, 새롭게 살게 된 집 거실에는, 정확히는 ‘밥을 먹는 공간에서는’ tv를 놓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대신 늘 라디오를 틀어 둔다. “오빠 지금 몇 시야?” “7시 20분” “그럼 배철수 듣자” - 식사시간 전 우리 부부의 일상적인 대화 패턴이다.
요즘 같이 전 세계 ott 서비스가 판을 치고, 엄지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영상미 가득한 볼거리가 많은 시대에 누가 라디오를 들어?라고 물을 수 있다. 보이는 라디오가 활성화되었다고 한들, 기본적으로는 온전히 dj 목소리 하나로 1-2시간을 채워나가야 한다. 시각적 자극이 없는 잔잔한 미디어다 보니 자칫 라디오는 큰 변화가 없는 old 한 매체로 비친다. 하지만 분명 이 변하지 않는 담백함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DJ와 제작진이 만든 유니버스에 다양한 청취자들의 이야기가 덧붙여져 만드는 하나의 소설 같은 느낌도 든다. 서로 좋은 음악을 추천하고, 동시간대를 함께하는 이들의 희로애락을 공유하며 서로 위로하고 격려한다. 요새는 MINI, 고릴라 같은 실시간 소통수단이 잘 갖춰져 있어 서로 간의 피드백도 빠르다. dj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지극히 인간적인 커뮤니티가 곧 라디오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