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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용연 Jul 02. 2021

2. 홈가드닝이 바꾼 일상

나 아닌 다른 대상에 정성을 들인 다는 것

집에 작은 식물원을 가꾸고 있다. 요즘 들어 아빠가 왜 그렇게 집 화분과 난에 물을 열심히 주셨는지 이해가 된다. 솔직히 처음엔 인테리어용으로, 인스타에 사진을 예쁘게 올리고 싶어 식물을 구매했다. 옷이나 신발을 고르듯, 미관상 보기 좋은 것들로 식물을 골랐다. 한두 개로는 인테리어 하기엔 어려워 여러 개를 골랐는데, 막상 받아보니 저마다 자라는 환경, 물 주는 횟수, 선호하는 온도, 습도가 모두 달랐다. 그래도 이왕 신혼집에 처음으로 들여온 식물이니 함부로 말라죽게 하고 싶진 않았다. 나름 꾸준히 기록도 하고, 별도의 시간을 내서 식물들을 챙기는 시간을 할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칼립투스와 같은 까다로운 식물들은 초보 홈 가드너에게는 너무 과분한 식물들이었는지, 원인도 모른 채 죽고 말았다.

처음 식물을 키우던 당시 모습. 뭔가 겉멋이 많이 들었다..


누군가 말하기를 식물 키우는 재미를 느낄 때는 "죽어가는 식물을 살려낼 때" 말을 들었다. 그 기분을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저 문장에 매우 공감한다. 수경식물로 키우던 몬스테라가 뿌리와 잎이 다 떨어져 나가기 시작하더니, 위의 사진처럼 아주 굵은 한 줄기 뿌리와 개중에 제일 큰 잎 한 장이 남았었다. 그래도 살려보겠다고, 조언을 구해 흙으로 분갈이를 해주며 정성을 다해 그 식물을 케어했다. 마음이 통했다고 표현하기엔 너무 오글거리고, 내가 사 온 흙이나 바꾼 물 주기가 잘 맞았는지 운이 좋게 줄기에서 파생된 잎이 자라고, 또 자라고를 반복해 지금은 잎이 다섯 개까지 늘었다. 이 맛에 식물을 키우나 보다.


지금 막 찍는 몬스테라!


식물을 키운 지 1.6년 차. 8개 정도의 식물로 시작해, 어느덧 우리 집의 반려식물은 크고 작은 것 모두 포함해 15개쯤 된다. 일주일 전쯤에는 초록색 잎이 난 식물이 아닌, 씨앗부터 키우는 키트를 사서 트레이에 씨앗을 심었다. 우연히 인스타에서 본 ‘seed keeper’라는 브랜드인데 ‘about’에 쓰인 브랜드 철학이 굉장히 마음에 들어 바로 구매 버튼을 눌렀다. ‘가드닝은 엄청난 자기 효능감’을 준다는 것, ‘작은 공간에서도 자연의 행복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 마지막에 쓰인 ‘slow, slow, slow pleasure!’라는 문구가 마음을 움직였다.


씨드키퍼 no stress tea 키트


https://seedkeeper.kr/


나 아닌 다른 대상에 정성을 들인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인내와 시간을 요하는 일이니까.  싹이 빨리 나지 않는다고, 꽃이 피지 않는다고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차오르는 기쁨을 느껴보면 어떨까. 우리는 대부분을 fast, fast, fast mode로 살아가고 있으니, 가드닝 하나쯤은 slow mode로 해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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