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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상한 목욕탕

by 이매송이

스트레스를 받아서 계획에 없던 목욕탕을 갔다. 보통 찜질방은 이용 하지 않고, 탕에만 있는다.

세신은 초등학생 때부터 받았다. 딸 셋인 우리집에서 엄마가 때를 밀어주는 건 두 동생 뿐이었다. 덕분에 누군가에게 내 알몸을 내 보이고, 매우 거친 때밀이도 무섭지 않았다.

10대, 20대, 30대 청소년에서 대학생, 성인이 되어서도 나에게 목욕탕은 확실한 행복이었다. 수줍어서 아줌마들이 내미는 이야기에 웃기만 하지만 그걸 감수 하고서라도 좋다. 내면에 있는 더러운 것들까지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 든다.

여러 세신사 분들이 계신데 대부분 예쁘다고 말해 주신다. (난 중년의 여성에게 호감을 사는 걸까) 오늘 분은 내 눈썹이 그린 것처럼 어여쁘다며 역시나 키를 물어 보셨다. 169라고 답을 했더니 170보다 낫다 하신다.

“키도 크고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좋으니 고치고 싶은 데는 없지?” 라고 하셔서 아니라는 의미로 머리를 마구 흔들었다. 보통은 여기서 웃으며 끝이 난다. 그런데 이어서 “가슴 수술 하고 싶구나? 크면 때 밀기 힘들어!” 하시는 게 아닌가! 순간 어릴 때로 돌아갔다. 내 몸을 사랑하지 못하고 늘 부정하던 시절로… 지금도 만족하지 못하고 불만이 많은 내 머리부터 발끝….

27년 이상 되었다. 피곤하거나, 초감기에 걸리거나… 여러 이유로 몇 군데의 목욕탕을 다닌 게. 그런데 성형 수술을 권하는 아주머니는 처음이다. 불쾌하거나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속상했다. 속으로 ‘빠리는 가슴이 작아야 옷빨 받는다고 좋아해요.’ 했다.

끝내고 집으로 가는 길에 빽다방에 들려 천 원짜리 라떼를 사 먹고 생각해 봤다. 왜 그 말에 화가 나지 않았는지. 내 외모에 대한 가스라이팅을 친구와 가족에게 오랜 시간 받아 왔지만, 서른 일곱의 이매송인 거기서 많이 벗어나서 인 듯 하다.

그래서 이 글의 카테고리를 일기가 아닌 내 생각에 저장 한다. 폭력 속에 자란 내가 그걸 인지 하고, 인정 하고, 달라질 때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걸릴 지 몰라 답답 했었다. 변하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러나 오늘 내 감정으로 인해 알게 되었다. 상처가 아물고 있다고, 더디지만 뒤로 걷지 않고 앞으로 간다고. 행복할 일 없는 나날 속에 오랜만에 얻은 긍정적인 생각이다.

나는 나였고, 나고, 나일테니 스스로 자학하는 행동이나 마음을 먹지 말자. 나를 사랑하는 일은 어려울 지라도 적어도 미워하지는 말자. 굳게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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