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시를 써서는 안 되는데

얼마나 썼다고 그만둔다는 것인가

by 다두




그해 하와이의 가을이 빨갛게 물들어 올 때

평생을 시에 미쳐 살아온 김 여사를 와이키키에서 마주쳤다


노란 단풍이 든 원피스를 입은 여사는

부석부석 가슴을 헤치고 청춘 두 덩어리를 끄집어 내던지며 외쳤다

다시는 시를 쓰지 않겠노라고---


청춘 하나가 발등으로 굴러와 미처 달아나지 못한 심장 속으로 박혔다


신촌 연대 후문 막걸리 집에서 마주한 박 선생은 빈 술잔에

니체를 토해 붓고 그해 가을 독일에 두고 온 청춘을 젓가락 뒤로 휘휘 저어댔다

하루에 시를 스무 편 이상 쓴 것은 미친 짓이었다고 훌쩍거렸다

그래서 젊은 부인은 울긋불긋한 가을바람이 났다고도---


옆집 피자가게에서 설익은 누룩 내가 커튼을 밀치고 주방 아줌마를 따라 훅 들어왔다


올가을에도 인간들이 그놈의 시를 한탄하며 허공으로 모가지를 제쳐 올린다

시는 그렇게 몸짓이 되어 관객도 없는 무대를 헤집고 놀아난다

시를 버린 김 여사는 무대 뒤에 숨어 한 덩이만 남은 모진 청춘을 어찌어찌 달래고 있을는지


이런 재미로 하늘은 올해도 잊지 않고 사방천지에 가을을 뿌려대는 것일 테지


가을에 시가 미쳐야 하는데 사람들이 먼저 미쳐 날뛰는 꼴이란

글쎄,

열이 너무 많아서일 게다


이쁘게 식히기도 전에 뻘건 입술이 덥석 달려들고

푸른 청춘은 뜨겁기만 하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나자빠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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