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던함은 성향이 아니라 관계였다

건강한 관계가 주는 변화에 대하여

by 나몽

대문자 T인 부모님 밑에서 자란 나는 나의 섬세함과 감성을 그리 떳떳하게 여기지 못하며 자랐다. 무심함의 끝판왕인 부모님에게 나는 그저 좀 더 예민한 아이였다. 시간이 지나 스스로에 대한 관점이 생기면서 나의 나됨을 나 자신이 보듬어줬지만, 나의 섬세함이 약점이라는 생각은 쉽사리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나를 무던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나의 섬세함을 예민함으로 해석하지 않은 그 사람이 고마웠다. 그러다 문득, 예전 같았으면 마음에 걸렸을 일들이 더 이상 나에게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이 관계의 메커니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건강한 관계는 낭만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문제가 생겼을 때만 관계를 들여다볼 것이 아니라, 무엇이 이 관계를 건강하게 만드는지 역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직감적으로 느꼈던 그 사람 특유의 안정감은 나에게는 일종의 페이스메이커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의 말과 행동, 사고방식은 매 순간 나의 주파수를 차분하게 조율해 주었다. 마치 반복해서 안전하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같은 상황에서도 필요이상의 에너지를 쓰지 않게 되었고, 괜한 일에 마음을 소모하지도 않았다. 반대로, 편안해진 상태에서 드러나는 나의 해맑음과 웃음은, 그에겐 비타민 같은 역할을 해주는 것 같다. 내가 행복하면 본인도 행복해진다고 말하던 그의 말이 떠오른다. 행복해진 오빠는 요즘 부쩍 애교가 많아졌다.


관계의 메커니즘에서 더 나아가, 나는 모든 관계의 문제를 내 탓으로만 돌리던 나의 오래된 습관도 함께 들여다보게 되었다. 생각보다 나는 무던한 사람이었다. 나의 섬세함을 무기 삼아 관계에서 생겼던 많은 문제를 나의 예민함으로만 받아들이게 했던 관계가 문제였다. 관계는 늘 복합적인데, 어떻게 매번 나만의 문제였을까. 나도 모르게 스스로 예민하다고 규정해 버렸던 나의 해석 또한 문제였다.


나는 그저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과 의도를 비교적 빠르게 읽는 사람이었고, 더 성숙한 관계를 원하는 사람이었다. 주파수가 맞는 사람을 만나자, 섬세함은 균형이 되고, 강점이 되었다. 나의 에너지를 상대를 더 사랑하는 마음에 쓸 수 있게 되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