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할 순 없지만 닮아갈 순 있는 것
나의 10자 평
취향:사랑한다면 바꾸려 말고 닮아갈 것
#카스텔라
중견기업의 대표. 자신의 일, 그 하나만 잘해 왔던 덕에 제법 멋진 회사의 대표다. 하지만 더 성장하기 위해 고학력자를 곁에 두고 코칭을 받고 있다. 보디가드를 고용한다거나 하는 다양한 코칭 중 하나가 영어를 하는 것이다. 영어로 대화가 가능해지면 더 많은 계약과 수익이 생길 것이라는 계산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첫 영어 수업에 영어교사인 클라라를 만나 딱딱한 그녀의 방식에 이내 흥미를 잃은 카스텔라는 수업을 취소해 버린다.
다시 만난 클라라는 우연히 가게 된 조카가 출연하는 연극에서였다. 클라라는 영어교사일 때와는 다르게 살아있었다. 무표정하던 선생님이 아닌 울고, 웃으며 사랑을 말하는 공주의 모습에 카스텔라는 홀딱 반해버린다. 안 그래도 무미건조한 회사생활에서 영어 수업마저 딱딱하게 하는 게 싫었던 걸까? 살아있는 그녀의 연기를 본 카스텔라는 혼자서 따로 그녀의 연극을 보고 수업도 다시 시작한다.
딱딱하고 단조로운 수업을 취소했던 시간이 무색하게 카스텔라는 이제 클라라의 환심을 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녀의 책을 빌려보고 그녀와 수업을 더 다채롭게 하기 위해서 장소를 옮겨 사무실이 아닌 카페에서 수업한다. 카스텔라는 무미건조한 공장과 사무실에서 부를 창출하지만 실은 열정적으로 연기하는 클라라의 liveliness생동감, 딱딱한 사무실과 딱 붙어 있는 보디가드의 엄격함이 아닌 카페의 freedom자유로움을 원했던 것.
클라라의 환심을 사기 위한 행동들은 자연스럽게 클라라가 속한 예술가들과 가까워지게 한다. 생전 관심 없던 미술전시를 보러 가고, 예술가들의 조롱에 놀아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 조금씩 예술에 대한 취향이 생기게 된다. 관심 없던 전시에서도 물끄러미 그림을 보게 되고 밋밋한 회사의 벽에도 그림을 그릴 결심을 하는 것이다. 예술 문맹에 가까웠던 카스텔라가 사랑으로 인해 예술적 취향이 생기는 모습이야말로 로맨티즘이다.
카스텔라는 사랑으로 인해 취향을 확고히 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자신이 어떤 것을 사랑하는지를 알아버린 것이다. 잔소리하는 엄마처럼 모든 것을 정해주던 와이프에게 클라라에게 실연당한 슬픔을 위로받는 모습은 아이러니하면서도 프랑스식 유머인가 하고 깨알 웃음이 난다. 미주알고주알 그의 입는 옷부터 집안의 모든 것을 와이프의 취향으로만 살던 그가 그림을 들고 집을 나가는 모습은 새로운 자아와 취향으로 새로운 삶을 찾겠다는 의지가 아니었을까
#클라라
연극배우로 자부심을 느끼고 끊임없이 독서를 하는 예술가이지만 생계를 위해 영어과외를 해야만 한다. 단돈 몇 십만 원이 없어 친구에게 돈을 꾸어야 하지만 하는 일에 있어서도 고고하다. 카스텔라가 '이게 당신 방식이냐'라는 물음에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며 유연하게 대처하며 수업방식을 바꿀 생각은 없다. 고고하고 딱딱한 그녀가 유일하게 살아있는 곳은 바로 무대. 20대에 이 영화를 봤을 때에는 그녀의 연기에 눈이 가지 않았는데 이번에 보는 무대 위의 연기는 연기하는 사람도, 찍는 사람도 많이 신경 썼음이 확연히 보였다. 클로즈업한 그녀의 얼굴에 반짝이는 눈망울. 진실의 미간. 그리고 진심의 목소리. 나의 마음에도 각인이 되어버린 그 신은 카스텔라의 마음을 훔치기에 충분했다.
자신의 열정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희생하는 모습은 지금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 사랑하는 음악을 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연습하고 연주하고 책 읽는 것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기에 레슨도 하고 사업도 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스스로의 원칙을 잃지 않으려 하는 모습에 클라라가 많이 이해되었다.
클라라가 보는 카스텔라는 돈은 많지만 예술에 무지하고 책도 읽지 않는 무식한 사람에 불과했다. 그녀의 친구들이 극작가 이름을 말하며 조롱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그가 못내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래서인지 카스텔라가 큰돈을 주고 자신의 친구에게 벽화를 주문했다는 소리를 듣자 마음이 불편하다. '나의 환심을 사려고 친구에게 그 큰돈을 주고 그림을 주문한 건가?' 걱정반, 양심반. 클라라는 카스텔라에게 찾아가 책임감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카스텔라의 대답이 압권이다. "그림이 좋아서 샀는데 뭐가 문제죠? 내가 그 그림을 좋아한다는 생각은 안 했나요?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이나요? 난 그 그림들이 좋아요!"
#예술적 취향?
그래! 예술이 뭐 별거야? 내가 좋은 그림 내가 좋은 음악이 예술이지. 그런 그림 - 그러니까 그림깨나 본다는 사람들이 좋아할 법한 추상미술-을 보통사람이 좋아하지 못하란 법이 있나?! 그거야말로 예술을 잘못 생각하는 것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카스텔라는 진심으로 예술을 좋아하는 법을 알았다. 그림에서 전해지는 느낌을 어떠한 지식이나 사조로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 그림을 진짜 '좋아'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알록달록 꽃무늬로 뒤덮인 집에서 자신의 마음이 동한 그 그림 한 점은 자신의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공간이었을 테다.
예술에 기능을 굳이 정의하자면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 슬픔은 위로하고 기쁨은 더 키워주는 것 아닐까? 때로는 슬픔을 증폭시켜 카타르시스를 만나게 하기도 하고 기쁨을 생각할 때 이면을 바라보게 하는 것. 사회와 문화를 반영하여 우리가 제대로 잘하고 있나를 반추하게 하는 것.
앞뒤 없이 살아왔던 카스텔라가 자신을 마주하고 '내가 좋아하는 게 뭐지? 나는 무엇을 해야 행복하지? 난 어떤 취향이지?'를 깨닫게 해 준 것이 예술이라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당연한듯한 이론과 지식은 직관적일 수 없지만 카스텔라가 클라라에게 한눈에 반하는 것 같은 감정적 동요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은 결국 예술이 아닐까 하는 생각.
#소음-음악
카스텔라의 운전사인 브루노는 플루트를 연주한다. 삑삑거리는 그의 소리가 꽤 거슬렸다. 나는 플루트 선생이니 직업병이 발동한다. 입술도 그렇고 호흡도 엉망이네. 바람이 섞인 거친 소리는 나만 거슬렸던 것이 아니다. 이웃사람들도 한 마디씩 하는 그의 된소리 소음. 그 소음은 영화 말미에 함께 연주하는 에디트 피아프의 Non, je ne regrette rien이 된다.
소음이 음악이 되는 것은 주파수가 맞고 화음이 맞는 다른 이를 찾는 것이다. 나의 소음조차 예술적 음악으로 만들어주는 나의 사람들. 들려드릴 음악은 무조건 엔딩의 에디트 피아프 음성이어야 하겠지!
#안젤리크와 브루노 그리고 프랑크. 그리고 영화에 흐르는 사회적 이야기도 쓰고 싶었지만 에너지가 다 고갈되었기에 여기서 갈음합니다. 댓글은 에너지가 됩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leslkTBW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