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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들deux맘 Jun 08. 2024

벼랑 끝에서 나를 부르던 너

서영은 이른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서영의 엄마가 싸 준 몇 가지의 반찬과 얼마 전에 배달시켜 먹고 남은 족발을 꺼냈다.

책상 겸 식탁에 앉아 tv를 켜는 순간 속보가 떴다.

서울의 한 시내버스 폭발사고였다.


도연의 과외가 있을 때마다

서영은 논현역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으로 유치한 생각을 하곤 했다.

"버스가 고장 나 수업에 못 가는 일이 생기면 좋겠다."

폭발한 버스는 다름 아닌 서영이 도연의 집에 갈 때 타는 241B번 버스였다.


그 당시 서울에는 한창 천연가스차가 도입되고 있었는데

천연가스통(CNC) 손상으로 인한 밸브 오작동으로 폭발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그 사고로 버스 안에 있던 십여 명이 중상을 입었다.

특히 버스 뒷 자석 연료통 부근에 앉아있던 승객은 발목이 절단되었다고 전해졌다.


서영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만약 서영이 저 버스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났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서영은 불현듯 중학교 때의 해프닝이 생각이 났다.


서영의 창문여중 시절

오전 조회가 끝나고 1교시 국어수업을 앞두고 있었다.

선생님은 평소보다 조금은 급하게 들어오셔서 강단 위에 책을 던지듯 내려놓으셨다.

"얘들아, 성수대교가 무너졌어!"

서영은 곧바로 비명을 지르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희 부모님 매일 아침 성수대교 타고 출근하세요!"

놀란 선생님은 서영을 바로 교무실로 데려다주었다.


우느라 정신이 없던 서영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엄마에게 전화했다.

"여보세요?"

"엄마!"

"성수대교 무너졌다고 그래서. 엄마 괜찮아?"

"응 엄마아빠는 성수대교가 아니라 성산대교를 타고 회사에 오지!!"

  

서영의 어린 시절

서영의 부모님은 늘 같은 시간에 퇴근해서 집에 오시곤 했는데

그 시간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는 날에는

서영의 오빠와는 달리

서영은 애간장을 태웠다.


서영이 살던 3층 집 계단에 앉아 

혼자만의 시나리오를 써 내려갔다.

"혹시 교통사고가 난 건 아닐까?"

"고혈압이 있는 아빠가 혹시 쓰러지신 건 아닐까?"

"엄마 아빠가 돌아가시면 난 어떻게 살지?"


별의별 생각을 하며 마음을 졸였다.

그러다 아빠차의 엔진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순간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죽음은 누구에게든 두려움의 대상이다.

특히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서영은 그 순간

아프지 않고 건강하여 밥을 먹을 수 있음이

밥부터 반찬까지 손수 만들어 소분까지 해 주시는 엄마가 있음이

늘 말없이 서영을 응원해 주는 아빠가 있음이

언제나 동생을 보호해 주는 '츤데레'오빠가 있음이

너무나 감사했다.

그리고 버스가 고장 나 도연의 수업에 빠지는 일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유난히도 더웠던 여름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여름에도 끝이 보였다.


도연 어머님의 전화가 걸려왔다.

도연이 3주간의 몽골선교를 잘 다녀왔고 이제 다시 영어공부를 시작해 줄 수 있냐는 내용이었다.

서영은 더 이상 도연과의 수업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student도 모르던 학생이 학교내신에서 100점을 받은 이야기는

학원강사로서도 홍보용으로 내세울만한 일이지만

더 이상은 그 집과 '엮이기' 싫었다.


예고를 갈 수 있도록 부모님을 설득해 달라는 도연의 부탁도 서영에게는 벅찼고

아이는 엄청난 재능을 가졌는데 무조건 판검사를 시켜야 한다는 부모의 생각에도 서영은 동의하지 못했다.

도연의 집 분위기만 생각하면 질끈 머리부터 아파왔다.  


계속되는 어머님의 부탁에 마지막으로 한번 더 도연을 만났다.

도연은 여전히 예고를 향한 뚜렷한 목표가 있었고 서영은 응원했다.

그렇게 도연과의 마지막 수업을 끝냈다.

수업 내내 도연은 할 말이 많은 듯 보였다.  

서영은 향후 혼자 어떻게 영어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관해 설명했다.

서영은 의도적으로 도연에게 말할 '틈'을 전혀 주지 않았다.

이러한 서영의 의도를 파악했는지

도연은 푸념한 체 그냥 듣고만 있었다.


그렇게 마지막 수업을 하고

인사를 한 후 그 집을 나왔다.

도연은 그의 방 문 앞에 서서 날 보고 있었고

도연의 동생 은지는 처음 만난 그날처럼

엎드려 엄마와 함께 공부하고 있었다.  

그것이 서영이 본 그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2013년 가을 초입

날씨는 여전히 여름이었지만

가끔은 시원한 가을바람이 산들산들 불었다.


어느 날 서영이 일하던 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강사 한 분이 모친상을 당하셔서 급하지만 내신 수업을 해줄 수 있냐는 부탁이었다.

오랜 기간 일했던 학원이기도 하고

마침 과외도 쉬고 있었기에 흔쾌히 허락했다.  


그렇게 서영은 다시 학원가로 돌아왔다.

분당선 한티역 롯데백화점 뒷골목 원룸.

서영은 그곳으로 이사를 했다.

3분 거리에 도곡시장이 있는데 서영은 그곳에서 옥수수를 샀다.

큰 솥 안에 2개 또는 3개씩 포장되어 파는 옥수수는 서영이 제일 좋아하는 간식거리이다.

가끔은 그 큰 솥 안에 있는 옥수수를 다 사 오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도 있었다.

옥수수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 당시 서영이 부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른이 다 되어가지만 서영은 결혼에 관심이 없다.

그저 지금처럼 돈을 벌어

부모님을 도우며

부모님과 평생 함께 살아가는 것이

서영에게는 최고의 안정감이자 행복이었다.


또한 서영은 밤낮이 바뀐 삶을 살아가는 것이

평범한 결혼생활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런 서영에게 얼마 전 소개팅 자리가 들어왔다.

한 대기업에 다니는 30대 중반의 남자인데

일 년 중 반년은 북유럽 여러 국가로 출장을 가 있단다.

윤서영과 너무나 맞는 라이프스타일의 남자라며

소개팅 주선자는 농담처럼 말했다.


대학원 공부에도 매진하고 싶었고  

다시 학원으로 돌아온 영어강사로의 삶에도 집중해야 했다.

그리고 서영도 언젠가는 본인만의 작은 공부방을 차려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었다.


 



내신 기간이 시작되었다.

단대부고 학생들이 하나둘씩 들어와 교실을 채웠다.

오자마자 질문을 하는 학생부터

공지된 시험범위를 얘기하며 자조 섞인 농담을 하는 학생까지

서영의 교실은 한순간에 돛대기시장이 되었다.


그때 서영의 핸드폰이 울렸다.


도연이었다.

서영은 바로 수업에 들어가야 했다.

"도연아, 선생님 수업 들어가야 해. 연락할게 미안!"

서영은 급하게 전화를 끊고 수업에 들어갔다.


일주일이 지났다.

 

서영은 동료강사와 저녁을 먹고 학원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도연에게 또 전화가 왔다.

서영은 지난주에 도연에게 전화가 왔었던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서영은 지난번 일이 생각나 미안한 마음에 용건을 물었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지? 무슨 일이야?"

"선생님, 영어 수행평가를 해야 하는데요 좀 도와주실 수 있나요?"

"아 선생님이 요즘 수업이 많아서 시간을 내기가 힘드네. 미안해. 많이 어려운 거야?"

"네 선생님, 좀 도와주세요."

"그래 선생님이 수업 끝나고 연락할게."

전화를 끊고 서영은 생각했다.

도연은 수행평가를 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도연과 수업할 당시에도

수행평가를 함께 준비해 주기 위해

늘 도연에게  묻곤 했지만 도연은 관심 밖이었다.

한 번도 제대로 영어 수행평가에 관해

대답한 적이 없는 친구였다.


도연의 첫 전화를 서영은 의도치 않게 잊어버렸고

두 번째 전화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답하지 않았다.


이틀이 지났다.

수업이 끝난 저녁 11

서영의 핸드폰을 확인하니 부재중전화가 와있었다.

도연이었다.


밤늦은 시간이라 도연에게 전화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서영은 한숨만 길게 내쉬었다.


그렇게 도움을 청할 곳이 없는 건가

한편으로는 귀찮은 마음마저 들었다.


서영은 수업이 끝난 후에도 다음 날 수업준비로 늦게까지 학원에 머물렀다.

그리고 새벽 2시가 돼서야 집에 돌아갔다.


서영에게 거쳐간 수많은 학생들이 있다.

그들이 서영에게 궁금한 것은 영어에 관한 질문이지

인생에 관한 것이 아니다.


서영이 돕는 이들은

부모로 인해 완벽히 갖추어진 환경과 상황에서

부모로부터 안전하고 완벽하게 보호받으며

살아온 학생들이다.


서영이 살아온 환경이 그러했고

서영이 살아가고 있는 환경의 학생들도 그러했다.


부모가 멀쩡히 살아있고

경제적 여유도 있으며

신체건강한 중2학생 도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니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고

서영은 굳게 믿고 싶었다.


서영이 아니더라도

도연에게는 도움의 손길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도연과 수업할 때

이모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부모가 살아계시지만

이모는 도연을 입양해서 살고 싶어 했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길래

애써 웃으며 넘겼다.


다 큰 도연을

부모까지 살아있는 도연을

입양해서 키우고 싶을 정도로 도연을 아끼는 이모가 있는데

도연은 왜 자꾸 서영에게 전화하는 것일까?

서영에게 걸려온 도연의 '마지막' 부재중 전화를 보고

문자라도 남길까 고민하다

서영은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2주에 걸쳐

서영에게 걸려온 '3번의 전화'


도연은 서영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

도연의 14년 인생에서

고작 '몇 개월'의 삶을 함께 나눴던 서영에게

도연은 모든 것을 의지하는 듯했다.


도연은

수 백번 용기 내어 핸드폰을 들었을 것이고

걸리는 수화음을 들으며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도연이 그렇게도 의지했던 서영이

반드시 다시 전화할 것이라고 믿으며

그렇게 잠이 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반복된

서영과 도연의

'3'의 엇갈림 속에서

도연은 그렇게 또 외면당하며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교회에서

그리고 한낱 과외선생님에게서까지


벼랑 끝에서

아무리 간절하고 애타게

그 누군가를 불러봐도


아리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14살 도연은

그간 겪었던

학습된 좌절과

외로움의 공포를

다시 한번 처절하게 경험하며

애초에 원하지도 않았던

이 생의 삶을

끝내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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