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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들deux맘 Jun 01. 2024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서영은 tv를 좋아한다.

슬픈 영화, 가족애를 다룬 미드, 멜로드라마, 고발성 다큐멘터리, 건강 프로그램 등등

서영은 오랜만에 tv에 나온 이미연을 보며

어렸을 봤던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떠올렸다.

1989년 강우석 감독, 이미연 주연의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내용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고등학생이었던 주인공은 성적강박에 시달렸다.

그리고 일생일대 단 한 번의 일탈을 감행한 후

현실로 돌아온 주인공은 전교 7등이라는 성적에 비관하여 투신자살을 한다.  

그 배후에는 주인공을 낳아준 부모가 있다.


이미연은  이혼한 후 혼자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영화'상의 그녀는 행복하지 않았지만

'현실'의 그녀는 밝게 웃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행복의 기준이 무엇일까

서영은 안락한 가정이 주는 안함이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서영의 엄마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여전도회장, 전도왕 출신

담임목사님의 설교의 서영의 엄마 이름이 나오지 않으면

설교가 끝나지 않을 정도로 믿음 좋은 권사님이었다.

그녀의 얼굴, 목소리, 몸짓은 늘 행복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 엄마를 보며 자연스럽게 서영과 서영의 오빠도 나란히 중고등부 회장, 부회장을 할 정도로 열심이었다.

서영의 오빠는 교회 전도사님과 교회 친구들과 농구를 하느라 주말이면 늘 집에 없었다.

늘 땀에 젖어 집에 오는 서영의 오빠 얼굴은 세상 그 누구보다 빛이 났다.

서영의 아빠는 그 당시 교회를 다니지 않았지만 그 누구보다 성실하고 착실한 가장이었다.

그리고 퇴근길에 가족과 함께 먹을 과일을 사 오는 것이 평생의 낙이었다.


특별하진 않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가족이었다.

서로의 존재에 대해서 특별히 감사하진 않았지만 당연한 듯 서로의 존재를 누렸다.


늘 맛있는 음식을 해주던 엄마의 존재를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당연한 듯 다 사주시던 아빠의 존재를

새벽에 화장실 갈 일이 생기면 군말 없이 같이 가주던 오빠의 존재를 누렸다.

서영은 보란 듯이 누리며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행복하게 살았다.


행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서영은 행복을 특별히 외치진 않았지만

성인이 되어 돌아보니 얼마나 행복한 가정에서 자랐는지 깨닫게 되었다.



대학원 수업도, 도연과의 과외도 순탄히 진행되었다.

대한민국 수험생들에게

학원은 원하는 점수가 나오지 않아도 당연히  다녀야 하는 곳이다.

매달 뭐에 홀린 듯이, 당연한 것처럼 학원 등록을 한다.

공부에 큰 관심이 없어도 친구들과 함께 학원에 다닌다.

한국의 중고등학생이 학원에 다니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모든 사람의 이목이 집중된다.


과외는 특정한 목적이 있다.

점수 향상이 되지 않으면 지속할 의미가 없다.

이는 강사도 마찬가지.

학원비의 두세 배가 되는 과외비를 받으며 수업을 하는데

학생의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과감히 결단해야 한다.


서영은 도연의 학교 기말고사에 관한 모든 정보를 받았으니

열심히 수업준비를 했고 도연을 공부시켰다.

student 스펠링도 몰라 서영을 당황시키던 도연이 달라졌다.

단어도 제법 외우고 문장 해석도 꽤 한다.

사실 중2정도의 영어시험은 큰 부담이 없다.

가벼운 마음이지만 조금은 진지하게 수업을 했다.


단어시험을 보던 도중

우연히 본 도연의 책꽂이에 멋진 로봇 사진이 있다.

그 당시 유행하던 트랜스포머 사진이다.

잠깐 관심을 가지던 서영에게 도연은 설명한다.

"선생님 이거 제가 그린 거예요."

서영은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그린 거라고? 사진 아니야?"

"저기 있는 색연필로 그린 거예요."

책꽂이 옆에는 미술 전공자에게 있을 법한

백개도 넘어 보이는 색연필이 있었다.


분명히 서영의 눈에는 사진으로 보이는데 그림이라니

서영은 자세히 들여다보고 만져도 보았다.

도연의 말처럼 사진이 아니라 그림이었다.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서영은 어렸을 때 미술과외를 했었다.

데생수업을 하느라 책상에는 늘 4B연필을 쟁여두었었고

미술과외만 끝나면

서영의 손에 4B연필의 흔적이 잔뜩 묻어 있을 뿐

흥미롭다거나, 선생님께 잘했다 칭찬을 받은 기억도 없었다.  


연의 사진 같은 그림을 보며 서영은 생각했다.

대단하다. 너의 '재능'이구나.


어느 날은 도연이 '스키'얘기를 꺼냈다.

스키를 어렸을 때부터 탔는데 재미있기도 하고

선수까지 할 생각이 있을 정도로 재능이 있다고 한다.


처음 만난 날과는 다르게 조금씩 도연은 수다쟁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은 도연이 서영에게 제안을 했다.

한창 스마트폰의 대중화가 시작될 즈음이었다.

도연은 스마트폰을 너무 갖고 싶은데 중간고사에서 100점을 맞으면 부모님께서 스마트폰을 사줄 수 있게 허락을 받아달라고 했다.


80점 이상도 아니고 100점이라니

도연의 포부가 대단했다.

서영은 반신반의하며 도연의 어머님을 설득했고 기꺼이 허락을 받아냈다.


어느 날 수업을 하는데 도연이 말했다.

"선생님, 전자사전에 '생활기스'라도 나는 날에 저는 **씨한테 맞아요."

서영에게 '생활기스'란 단어는 난생처음 들어 본 단어였고

자연스럽게 쓰다가 흠집이 났는데 왜 그게 맞을 일이지?

생각하니 서영은 당황스러웠다.


서영의 부모님은 서영에게 체벌을 하지 않았다.

딱 한번 서영은 엄마에게 종아리를 맞은 적이 있지만

그날 저녁 서영의 엄마는 서영의 종아리를 만져주며 함께 잠들었다.


고등학생이 된 서영

한 번은 큰 잘못을 해서 부모님께 혼날까 두려워하고 있을 때

서영의 아버지는 혼내거나 체벌을 하지 않았다.

대신 장장 5장의 편지를 써서 서영에게 건네주었다.


그렇게 체벌과 거리가  가정에서 자란 서영은

쓰다가 흠집 난 물건 때문에 맞는다고 말한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다.

반항심에 아빠라는 단어도 부르기 싫은 중학생이

거짓말을 한다고만 생각했다.


수업이 끝나고 방문을 열고 나오는데

도연의 어머님께서 서영을 붙잡는다.

혹시 도연의 동생의 과외도 같이 해 줄 수 있냐는 부탁이었다.

과외를 마다할 일은 없지만

초등학교 저학년인 학생과 무슨 영어 공부를 할 수 있을까 서영은 생각했다.

어머님은 어떤 수업을 원하는지 조차도 얘기하지 않았다.

서영은 초등학생을 가르쳐본 적은 없었지만 늘 거실에 엎드려 공부하던 도연의 동생의 모습을 떠올리며

어떤 수업이 되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흔쾌히 허락했다.


도연의 동생 지은

지은은 한없이 어린 초등학교 여학생이었다.

서영은 평소에 거실에 엎드려 공부하는 게 도대체 무엇이냐 물었다.

특별할 것은 없지만 공부를 안 하면 불안하다는 말을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이 공부를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니

자다가도 기가 찰 일이다.

수업을 시작하고 깨달았다.

지은은 마음이 곪을 대로 곪은 아이였다.

아무렇지 않게 머리카락을 하나씩 뽑아 입 속으로 넣어 우걱우걱 씹어댔다.

지은은 공부방에 있는 유난히 저 큰 창문으로

늘 뛰어내리는 상상을 한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서영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모든 것을 멈추고

당장 그 집에서 나가고만 싶었다.


공감하지 못한다는 점과

끔찍한 상황을 목도하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그저 그 자리를 피하고만 싶었다


드디어 도연의 시험기간이 다가왔고

영어시험은 둘째 날이었다.


도연의 집에 도착한 서영

어머님께 도연은 지금 학교 다녀와서 자고 있는 중이라는 말을 들었다.

서영은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서 도연을 깨울 작정이었다.


조용히 방으로 들어간 서영

문이 열리자마자 도연은 귀신을 본 것 마냥 화들짝 놀래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났다.

도연의 격한 몸짓에 동시에 놀랜 서영

도연에게 왜 그렇게 놀랬는지 물었다.


도연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잘 시간이 아닌데 자면 **씨에게 맞아요 선생님"


영어시험을 하루 앞둔 날


이번 시험을 계기로 그만 둘 건수를 만들고 싶던 서영도

100점을 받으면 스마트폰을 살 수 있는 도연도

시험공부에 대해 필사적이었다


열심히 외우고 또 외우고 질문을 했다.

일취월장한 도연의 모습이 기특해서 머리를 쓰다듬는 순간

매끈하게 넘겨져야 하는 서영의 손이 갈 길을 잃었다.


도연의 정수리 부분이 푹 꺼져있다.

대천문도 아니고

중학생 다 큰 아이 두개골 한 중심이 왜 함몰되어 있는 것일까?

서영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당황한 서영의 모습에 도연은 침착하게  답한다


"초등학교 때였어요. **씨가 골프채로 제 머리를 찍어내렸어요.

경찰서로 갔어야 했는데 **씨는 저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어요."


그때서야 모든 것이 퍼즐조각처럼 맞춰지는 듯했다.


서영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빨리 수업을 끝내고 다시는 이 집에 돌아오고 싶지 않은 마음뿐이었다.


그날 수업을 끝내기 전

도연은 어렵게 서영에게 도움을 청했다.


"선생님, 부모님을 설득하고 싶어요. 부모님을 설득해서 상담센터 같은 곳에 가서 같이 상담을 받고 싶은데 도저히 설득이 되지 않아요. 꿈쩍도 안 해요. 도와주세요. 예고 있도록 부모님 좀 설득해 주세요."


학원 선생님은 학교 선생님과 다르다.

학원 선생님은 오롯이 성적에만 신경을 쓴다.

성적상담으로 시작하고

적으로 마무리한다.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학원을 그만 다니면 될 일이고

성적이 오르면 꾸준히 함께 하면 될 일이다.


서영은 성적 외의 일에 관해 부탁을 받는 일이

어색하고 싫었다.

그저 내 일이 아니라고만 생각했다.


"그래, 노력해 볼게 그런데 우선 시험에 신경 쓰자.

부모님이 원하는 100점을 달성해야 네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어.

실수 없이 100점 받아올 수 있겠지?"


불과 몇 달 전 student스펠링도 모르던 학생이 결국에는 100점을 받아왔다.

도연은 엄마에게 신분증을 받아 서영은 대리인으로 함께 가서 스마트폰을 개통했다.


뜨거운 여름날이었다.

스마트폰을 받아 들고 영락없이 기뻐하던 도연은 그저 해맑고 철없는 중 2 학생 같아 보였다.


도연은 출석하는 교회에서 방학 때 선교를 간다고 했다.

몽골로 3주 정도 다녀온다는 말을 들은 서영은

자연스럽게 과외를 끝날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어 안심했다.


뜨거운 햇빛 아래

새로 개통한 스마트폰을

손에 꼭 쥐고

세상 모든 것을 가진 듯 한 표정의 도연을 바라보며

서영은 생각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지만

성적이 행복을 가져다줄 수도 있겠구나.


잘 지내.

내 역할은 여기까지인 것 같아.

미안하다.


2010년 여름

어느 더운 여름날

서영은 그렇게 도연에게 안녕을 고했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도록

서영 스스로도 애써 모른 척할  있도록

아주 작은 목소리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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