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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들deux맘 May 19. 2024

잠시 쉬어가려고 했는데 너를 만났다.

5시 반 수업시작인 서영은 보통 4시면 출근을 한다.

그날 수업 준비도 마무리 하고 급하게 회의가 있다면 회의준비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간고사 내신이 끝나고 내신 휴가도 다녀와 재충전을 확실히 한 서영은 다시 한번 수업 준비에 모든 에너지를 쏟고자 했다.


전화가 걸려온다.

경기고에 다니는 한 학생의 어머니가 서영을 찾는다며 데스크에서 교무실로 연결해 준다.

아이가 이번 중간고사 영어시험에서 서술형 한 문제로 인한 감점 때문에 2등급이 되었다고 한다.

서영은 단번에 어떤 문제인지 기억해 냈다.

separate과 divide 차이점에 대하여 서술하라는 문제였다.


학원에서 내신수업을 준비할 때는 각 학교의 10개년 기출문제유형을 정확히 분석한다.

새로운 선생님이 부임하신 것이 아니면 시험 범위는 달라도 유형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교권의 아이들 혹은 열심히 학교 필기를 잘하는 학생들의 교과서와 모든 보충교재를 걷어서 복사한다.

그 여러 개의 복사본을 가지고 비교 대조 작업에 들어간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열심히 집중해서 필기를 한다.

지만 실수로 누락한 필기내용이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1,2,3반에서 언급하신 내용을 4,5,6반에서는 언급 안 하시는 경우도 간혹 있다.


이러한 이유로 비교, 대조, 취합하는 작업은 상당히 중요하다

작은 것 하나 놓칠 수 없다.

학교선생님의 숨소리까지 놓치지 말아야 한다.

등급 하나에 학생들의 인생이 달렸다.


모든 시험범위의 교재내용을 새하얀 A4위에 프린트한다.

강사는 새롭게 만들어진 프린트 위에

(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심오한 작업을 시작한다.

시험에 나올 만한 내용을 강사가  연구, 유추하여 정성스럽게 필기본을 만든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작업인 학. 필. 추

2,3주간 모으고 비교, 대조, 취합한  '학교필기추가' 작업이 드디어 시작된다.

이에는 반드시 학교필기와 학원(강사) 필기의 색깔이 구별되어야 한다.

수능 몇 년도 기출인지도

해당 학교 내신 몇 년도 기출인지도 정확히 적어야 한다.

그렇게 총천연색으로 구성된 필기본이 완성이 된다.

엄청난 quality의 내신 자료가 만들어지면 유출되지 않게 잘 보관해야 한다.

학생들에게도 유출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한다.

그럼에도 몇몇 어리석은 학생들은 이 필기본을 복사하여 파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뼈를 깎는 노력으로 만들어낸 내신교재를 '구입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내신 교재를 받고 학원 수업을 중간에 나오지 않는 학생은 한 달간  학원등록을 '불허'한다


이렇게 내신 수업 기간 2-3주 전에 만반의 준비를 하여 내신 수업 기간 한 달 동안 열심히 수업한다.

밤 낮이 없다.

토요일은 12시간 수업을 해내야 한다.

퇴근 즈음에는 입, 손, 발에 감각이 없다.

조금이라도 더 신경 쓰고 공부시켜야 학생들은 원하는 목적을 달성한다.

내신기간에는 학생들도 학원선생님들도 평소보다 더 긴장할 수밖에 없다.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수업을 했다.


그렇게 한 달간의 내신이 끝나고 달디단 밤양갱 같은 내신휴가까지 마치고 돌아왔는데,

출근하자마자 전화를 받은 것이다.

1등급을 못 받은 학생어머니의 컴플레인 전화.


네 어머님. 안타깝네요 다음에는 함께 더 열심히 공부하여 꼭 1등급 받게 노력하겠습니다.

애써 침착하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학생은 학원에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학원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던 서영은 아침 일찍 산책을 하러 나왔다.

진선여고 한 학생이 학교에 있을 시간에 신호등 앞에 서있다.

반갑게 인사하며 왜 학교에 있지 않고 이 시간에 여기에 서있냐는 물음에

잠시 휴학을 했다고 했다.

대학생도 아닌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휴학이라니,

자초지종 물을 겨를도 없이 그 학생은 신호등을 건너갔다.

내신 모든 과목에 1등급을 받은 학생이다.

그 학생의 폴더폰 첫 화면에는 늘 서영과 학원선생님들의 이름이 있다.

이유는 묻지 않았지만 내심 뿌듯해서 사진까지 찍어놓았다.

네가 어디에 있든

그곳에서 행복하길 바란다.



고1 때 들어와 꾸준히 그 어떤 학생보다 열심히 공부했으나 늘 성적이 제자리였던 경기여고 학생. 

정석의 길을 걸어도

비싼 고액 과외를 해보아도

늘 모든 과목의 성적은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곳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유학의 길에 오른 그녀

하버드가 너의 행복을 가져준다면야,

응원할게.

온 맘 다해.


동그란 안경

귀여운 미소

귀한 신앙

2년 내내 늘 학원교실 앞자리를 지키며 단 한 번도 학원 수업에 빠진 적이 없던 그녀

그렇게 그녀는 내신, 수능에서 원하던 성적을 얻어 원하는 길로 당당히 걸어갔다.

지금 그 학생은 행복할까?

탄탄대로일 너의 길을 응원한다.


키가 190 넘 짓 되는  보인고 고3 남학생이 급하게 독해질문을 하고 집에 갈 채비를 한다.

서영은 학생에게 뭐가 그리 급하냐며 엄마가 집에 치킨 시켜놨냐고 물었다.

학생은 급하게 짐을 챙기며

빨리 집에 가서 '사랑과 전쟁'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서영도 놓치지 않고 본다.

국민드라마 '사랑과 전쟁'

"너나 나나 사랑과 전쟁을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미래의 훌륭한 배우자가 되자꾸나!"

나직이 읊조려본다.



서영을 거쳐간 수많은 학생들이 있다.

학생들을 생각하면 이름보다 교복이 먼저 떠오른다.

개인의 이름보다는 학생들의 교복으로 학생을 기억하는 것이  편하다.

늘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와서 앉아있는 학생들

학생으로서 최선을 다 하는 그들이 아름답다.

서영은 그저 학생들에게 고마운 마음뿐이다.

열심히 수업준비를 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준비한 서영의 수업을 열심히 들어주고,

나아가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내주는 것.

그것이 서영에게 꽤나 많은 돈을 벌게 해 주기 때문이다.

성취감은 그다음 문제이다.


서영이 교복을 입던 중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본다.

강북구 미아동에 위치해 있는 창문여중고 시절

서영의 집은 학교 3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는데

그 이유 때문에 친구들은 서영의 집을 제집 드나들 듯 다녔다.

서영이 없을 때도 서영의 할아버지는 반갑게 그녀의 친구들을 맞아주었고,

집에 와서 밥을 먹고 가는 일도 잦았다.

서영의 3층집 건물 옥상에서 동심으로 돌아가 물장난도 하며 놀았다.

시험기간이 되면 친구들과 함께 집 앞 곰독서실에서 열심히 공부를 했고,

심지어 친구들은 부모님들의 허락을 받고 서영의 집에서 늦게 까지 시험공부를 한 후

같이 자고 다음 날 학교를 가기도 했다.


교복을 입은 학생으로서

서영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


열심히 일하시고 저녁때나 돼야 집에 오시는 서영의 부모님

서영의 가족은 맛있는 저녁과 과일을 함께 먹으며 그날 하루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았다.

서영을 사랑해 주시는 부모님이 계셔서 서영은 너무나 행복했고

서영의 부모도 동네에서 착하고 성실하다 소문난 서영이 기특했다.


서영은 지난 10년 간 학원강사로서 주어진 몫을 성실하게 그리고 후회 없이 해냈다.

지금 가는 길이 조금은 벅차서 잠시 쉼을 갖고 싶었지만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는데,

어느 날 우연히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고 그렇게 입시강의를 조금 쉬게 되었다.


그러나 이내

학생을 만나게 되었다.


잠시 쉬어가려고 했는데,

너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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