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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들deux맘 May 12. 2024

3호선 대치역과 분당선 한티역 사이 그 어디쯤

서영이 학원계로 발을 들인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성인이 되어 부푼 꿈을 가지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서영.

외갓집 친척들이 다 미국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영국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한 한 가지

영어를 진짜 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영의 영어사랑은 35년 전,

그녀의 국민학교 시절로 올라간다.

서울시 강북미아4동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쭉 성장한 서영.


그 시절, 서영의 부모는 꽤나 깨어있는 부모였다.

무조건 공부만 시키는 부모가 아니라 서영의 적성과 재능을  찾기 위해 단히 노력하던 부모였기 때문이다.

전 과목 학원은 물론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미술, 태권도까지 다닌 이유는 부모가 원해서가 아니라 바로 서영이 원해서였다.


서영은 원하는 학원을 다녀보고 언제든지 적성에 맞지 않으면 더 이상 다니지 않으면 되었다.


서영이 살 던 곳과 걸어서 약 10 거리에  위치했던 영훈국민학교 

그곳은 소위 '열린 교육'으로도 유명했던 사립국민학교였다.


그들이 추구하는 '열린 교육'이란 어린이들이 각자 지니고 있는 '능력''적성'을 바탕으로 지도하는 '개별화된 학습자 중심교육'이다.


서영의 부모님은 열린 교육의 취지를 자세히는 알지 못했지만 접근성의 이유와 서영의 재능을 찾기 위한 작은 바람 하나로  학교를 선택하게 되었다.


각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 '재능'을 바탕으로 맞춤교육을 시킨다는 것은 그 당시 참으로 획기적이었다. 동시에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했을 것이다. 아이들 하나하나의 능력과 재능을 발견하고 존중하며 나아가 그 방향대로 학습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위대한 일들이 그렇듯 '열린 교육'이란 제도 역시 초반에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한 예로 영어와 산수시험을  정기적으로 본 후 '우열반'을 가렸던 것.

고등학교도 아닌 국민학교에서 시험 성적으로 우열반을 가른다?

낮이나 밤이나 주중에나 주말에나

신나게 놀고만 싶은 어린 학생들에겐 말 그대로 청천벽력과 같았다.


그 시절 여학생들에게는 고물줄놀이가 유행했다.

5학년 치고는 상당히 큰 키를 자랑했던 서영은 늘 고무줄놀이의 선두에 있었다.

쉬는 시간 그리고 점심시간 내내  친구들과 고무줄놀이를 했다.

'장난감 기차가 칙칙 떠나간다 과자와 사탕을 싣고서~'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열심히 땀을 흘리며 높게 올려진 고무줄을 가뿐히 뛰어넘었다.

그렇게 틈만 나면 높이 더 높이 뜀박질하기를 간절히 원하던 어린 윤서영이었는데


서영과 친구들은  '열린 교육' 여파를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들은 고민 끝에  친구들과 함께  소위 말하는 '스터디'를 하기 시작했다.


서영은 매일 학교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함께  학교 근처 미아삼거리역 맥도널드에 갔다.  

그곳에서 열심히 영어와 산수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맥도널드에서 서영과 친구들이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는데 건너편 자리에서 어떤 아저씨가 그들을 유심히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두려움이 앞선 서영은 대낮에 맥도널드에서 무슨 일이 있겠나 라는 생각으로 그 아저씨의 자리를 당당히 지나 주문을 하러 갔다.


그런데 갑자기  그 아저씨가 서영 쪽으로 다가왔다.


잔뜩 겁이 나 별의별 상상을 다 하고 숨죽이며 있던 서영에게 그 아저씨는 통 크게 빅맥 세트 6개를 주문하시고 계산해 주시고는 유유히 떠났다.


마냥 어리기만 해 보이는데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니 참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다면서 기뻐하시면서 말이다


고등학생도 아닌 국민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이 귀여워서 이런 호의를 베푼 것이다.


이때부터였다.

서영이 영어에 푹 빠지게 된 계기가.

산수는 열심히 공부를 하고 학원에 다녀도  늘 유지 또는 하락세라면  영어는  고공행진이었다.


서영에게 영어 단어 암기는 하루 세끼 엄마가 차려주는 맛있는 밥을 먹는 일처럼 당연하고 기뻤으며, 특히 영어 문장을 읽을 때면 서영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사람이 되는 듯했다.


산수시간에는 선생님 눈에 띄지 않게 최대한 노력했다면 영어시간에는 제발 저 좀 시켜달라며 최대한으로 눈에 띄게 많이 움직이곤 했던 서영이었다.


서영에게 영어는 즐거움 그 자체였고 특히 노래 부르듯이 영어를 읽을 때면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행복해했다.


그러한 '열린 교육'의 최대 수혜자였던 윤서영

그렇게 서영은 재능을 찾게 되었고 영어는 서영의 평생의 절친이 되었다.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영어라는 언어를 좋아하고 영어로 인해 늘 행복했던 서영은 영어의 본고장인 영국에서 계속 공부할 계획이었다.

외할머니, 삼촌들, 이모가 있는 미국이 아닌 '이역만리'영국에서  친척들과 함께가 아니라 '혈혈단신' 열심히 살아가고 싶었지만 그 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갑자기 찾아온 아버지 사업의 부도로 어쩔 수 없이 입국해야 만 했던 것이다.

서영은 한 때 공기업 입사를 꿈꾸며 준비했으나 쉽지 않았다.

한국 사회에서 그나마 진입장벽이 낮은 곳이 바로 학원이었고, 서영은 목동 학원가에서 아이들의 시험지를 채점하고 질문을 받아주는 파트타임 선생님으로 처음 학원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서영은 채점 선생님이 아니라 언젠가는 강의를 맡아서 할 생각으로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나 영어를 좋아하는 것과 학생들이 학교 영어시험에서 100점을 받을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예를 들어, 영화 Once의  OST, Falling slowly의 첫 가사는 이렇다


I don't know you but I want you all the more for that


'영어를 좋아하는' 서영은 이 팝송 가사를 듣고 조용히 따라 부르며 눈을 감는다.

그리고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더블린 한 길가에서 버스킹을 하다가 우연히 만난 그들, 서로를 잘 알지 못하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끌리게 된다. 그리고 음악을 통해 각자의 자리에서 꿈을 실현해 간다.


반면 '입시학원 강사' 서영은 전혀 다른 Approach를 사용해야 한다.

우선, 이 가사를 칠판에 크게 판서한 

학생들에게

'비교급 앞에 난데없이 the가 왜 붙어있는지!'

'문법적 오류가 아닌지!'를 설명하며

최상급에만 the가 붙는 줄 알았던 몇몇 학생들에게

예외적으로 비교급에 the가 붙는 3가지 경우를 기출예문과 함께 설명해야 한다.


1. The 비교급  + of the two 두 가지를 딱 대놓고 비교할 때

ex) Which one is the bigger of the two? (보통 of the two와 함께 쓰임)


2. all the 비교급 +for, because, because of

(앞에 언급된 이유)때문에 더욱더 , 한결 더

ex) The fact that he had written the play himself made it all the more impressive.


마지막으로 3번은 (학생들의 집중을 위한) 의도된 pause와 온갖 형형색색의 분필을 들고 한껏 격앙된 목소리로 설명해야 한다. 바로 수능, 내신 단골!! 필수!! 구문이기 때문


3. The 비교급 s+ v, the 비교급 s+ v.

-> 더 ~하면 할수록, 더 ~하다

이미 칠판은 형형색색으로 판서가 돼있을 것이며 10개 이상의 수능, 내신 기출 예문들과 함께 문장 전환까지 완벽하게 마스터시켜야 한다.


내신 서술형으로 나오면 단 하나의 실수 없이 완벽히 써 내려가는 학생들이 되도록

수능 어법유형으로 나온다면 보기 5개 중 눈을 감고도 맞출 수 있도록 빈틈없이 완벽하게 마스터시켜야 하는 것이다.


 Falling slowly의  도입 부분 가사는 the 비교급 용법 3가지 중 2번의 경우에 해당한다.

원어민들도 정확히 모르는 'the + 비교급 용법'을 한국 수험생들은 기계처럼 외우고 외운다.

이는 수십 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수십 년 후에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3호선 대치역과 분당선 한티역 사이 그 어디쯤에서는 영어를 영어로 가르치지 않는다.


흔히 대치동 학원가라 불리는 이곳에서는 영어를 좋아하다가도 영어와 손절하게 만드는 기이한 기술을 연마하며 가르친다.


영어를 언어와 문화로서가 아닌 고등학교 3년 동안의 내신, 수능 1등급을 맞기 위한 수단으로 가르친다.


사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길고 길었던 도합 12년 학교생활의 종지부를 찍을 무언가가 필요하긴 할 것이다.

그것이 한 개인의 다양성과 재능이 실현될 학생들의 개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꿈의  설계도'가 되면 참 좋으련만, 

슬프게도 12년 학교생활의 성적과 업적을 총망라한 개성은커녕 등급으로만 나뉜 '종합성적표' 밖에 되지 않는다.


캐나다의 고등학교 졸업식은 기본 소요시간이 3-4시간이라고 한다.

이유인즉슨, 그날은 학생들이 길고 길었던 학교생활을 마치고 사회로 첫 진출하는 너무나 소중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교장선생님이 수여하는 졸업장을 받으러 강단으로 나올 때 보통 학생 자신이 자신을 어떻게 소개할 지에 대해서 미리 자세히 적어낸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나의 학교 생활은 어떠했고 앞으로 내가 원하는 나의 꿈을 어떻게 이뤄나갈지에 대하여 교장선생님께서 한 명 한 명 다 자세히 읽어주신다. 길게는 3분까지 지속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 누구도 그 순간을 방해하지 않는다. 존중하며 함께 들어주며 공감해 준다. 전교생 모두의 개성과 꿈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소중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이들 하나하나의 개성과 꿈을 존중하고 공감해 주고 집중하기보다는 입시 '결과'에 모든 포커스가 맞춰질 수밖에 없는 것이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이다.


아이들 하나하나 마다 지음 받은 이유가 다르고 타고난 재능이 다른데 이 사회는 그저 한 길만 바라보며 직진만을 요구한다. 그리고 다른 길을 가려고 과감히 '시도'하는 아이들에게 이 사회는 '아웃사이더'라는 낙인을 선물한다


부모가, 선생님이, 세상이 노력해야 하는데 그 누구 하나 앞장서는 이들이 없다.


서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실 일개 개인이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서영은 열심히 일해서 부모님 도와드리기에 바빴고

아이들 하나하나의 성적이 서영의 월급과 비례하기에 성적 유지시키기에 혈안이 되어있었다.


목동에서 채점  선생님으로 일하던 서영은 강사로써 우뚝 설 훗날을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우연히 인터넷에서 강의 하나를 듣게 되었다.


가정법을 저렇게 설명한다고?

생각지도 못했던 방법으로 답답하기만 했던 영어 문법을 속 시원하게 명한다. 

심지어 지적인 유머로  문법 강의가 재미있기까지 하다.


바로 전국 영어강사들의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일타강사(일등 스타강사)

'김찬휘'의  'Orthodox Grammar'



엄청난 카리스마와 열정으로 가득한 김찬휘 강사의 강의를 보고 서영은 무작정 그가 원장으로 있는 학원에 지원을 했다.


그리고 그의 수업을 듣는 고3학생들을 관리하고 학생들의 질문을 받아주는 일명 '새끼강사'가 되어  


3호선 대치역과 분당선 한티역 사이 그 어디쯤에 있는 학원으로 서영은 매일 출근하게 되었다.


서영의 재능을 찾기 위해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노력하며 애써주신 부모님.

부모님 덕분에 찾은 그녀의  재능으로 부모님을 재정적으로 도와드릴 수 있어서 서영은 너무나 기뻤다.


서영은 8개월 정도의 '새끼 강사'의 기간을 잘 마무리하고 영어강사로 '등단'하여 받은 첫 월급날을 잊지 못한다.
비율제 강사였던 서영의 급여명세서에는 서영의 수업을 들은 학생들의 이름과 학원비 그리고 서영이 가져가는 퍼센티지가 자세히 나온다.
한티역 근처에 차를 세우고 서영의 엄마 아버지와 함께 두꺼운 급여명세서를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자세히 읽어가던 그날, 그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한다.


3호선 대치역과 분당선 한티역 사이 그 어디쯤에는 인간사 모든 희로애락이 있다.


인간이라면 태어나서 당연히 겪어 내야 하는 감정인 희로애락.


내신 점수, 수능 점수가 생각보다 혹은 예상한 만큼 잘 나와서 기쁜() 학생들도 있을 것이고

끊임없이 변해가는 입시정책에 더 이상 마루타가 되기를 거부하며  분노(怒)하는 학생들도 있을 것이고

죽을힘 다해 노력했는데 생각만큼 결과가 나와 주지 않아 깊은 슬픔(哀)에 빠진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서영은 그녀가 가르치는 모든 학생들이 행복하고 즐겁기를(樂) 진심으로 바란다.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님이 찾아주신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며 즐겁게 살아가는 그녀처럼

서영이 가르치며 만나는 모든 학생들도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가 주길 바란다.


오늘도 3호선 대치역과 분당선 한티역 사이 그 어디쯤에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 한 채 무거운 가방을 메고 학교에서 학원으로 또는 학원에서 집으로 걸어가는 학생들이 있다.


오후 4시 

서영은 학원으로 출근하는 길에  옆에 걸어가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그리고 나지막이 속삭여본다.


너희들 참 귀하다.

기억해 줘.

너희들 하나하나가 참으로 귀한 '걸작품'이라는 것을.

너희들의  '존재'만으로도 참 귀하고 귀하다는 것을.

그러니 부디 너희들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즐기며 살아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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