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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들deux맘 May 04. 2024

제발 살아만 있어 줘요

우연히 tv에서 독립영화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를 보게 된다.


영화 제목이 조금은 진부해 보이는 듯 하나 나쁘지 않다.


'사랑이 이긴다'라는 제목의 민병훈 감독 영화.


화려한 외모에 빠지지 않는 학벌, 결혼은 했지만 행복은 남의 이야기인 듯 느껴지는 중년의 한 여자.

유일하게 그녀가 기댈 곳은 바로 딸이다.

딸은 그녀의 모든 것이다.

이미 전교 3등으로 성적도 나쁘지 않았지만  딸은  늘 힘들고 외롭다.

도벽에 자학도 서슴지 않는다. 

엄마는 그런 딸에게 무조건 전교 1등을 해야 한다는 말을 밥 먹듯이 한다.


숨 쉴 틈조차 주지 않으며  딸을 매몰차게 옥죄어가던 어느 날,

딸은 엄마가 그렇게나 간절히 원하던 전교 1등 성적표를 가지고 나타난다.

딸의 전교 1등 성적표를 손에 쥔 엄마는 딸에게 말한다.

"진작 이렇게 할 수 있었는데 도대체 넌 그동안 뭘 한 거니?" 그리고는 딸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친다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가방도 내려놓지 않은 채 딸은  아파트 베란다로 전력질주를 한다.

그렇게 딸은 엄마 앞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야 만다.


더 이상 그 영화를 볼 수가 없었다.

이내 착잡한 마음으로 tv를 껐다.

리모컨조차 무겁게 느껴질 정도로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입시학원 강사 10년 차인 서영은 수능이 끝날 때면 늘 마음을 졸이며 잠을 설친다.


학생들과 함께 지낸 세월이 길게는 중학교 때부터 짧게는 고등학교 3년 내 내이다.

짧지 않은 그 시간 동안 함께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공부를 한다.

이제  마지막 단계인 수능까지 끝났으니 속이 후련해야 하는데 늘 그녀의 마음 한편은 가시방석이다.



학생들에게 늘 이런 농담을 한다.

능 수석은 언론에서 인터뷰가 오게 되어 부담스러우니 적당히 차석만 하자고. 

이렇게 있는 힘껏 응원하며  학생들을 수험장에 보내지만 늘 불안함이 엄습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매 년 11월의 연례행사처럼 되어버린 수능 수험생들의 자살 때문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과연 누구를 탓할 수 있단 말인가?  


질풍노도의 시기를 간신히 지나고 부모가 혹은 사회가 정한 각본대로 모든 시험을 겪어낸 그들.

이제 막 성인으로서 새로운 삶의 시작을 앞둔 채 그들은 자의가 아닌 타의로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사람은 태어나 성인이 되면 통과의례처럼 결혼을 한다.


온 세상의 축복을 받으며 단란한 가정을 꾸린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나 이제는 한 집에서 둘이 아닌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것.

얼마나 귀하고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물처럼 귀한 새 생명이 찾아온다.


모가 처음이기에 실수할 때도 있지만 최선을 다해 아이를 키운다.

그리고 키우면 키울수록 아이는 나와 닮아간다.

좋은 점만 닮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점점  내 부족한 모습이 아이에게서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나도 모르던 나의 단점들이 아이를 통해 내 눈으로 보이고, 나는 그 단점들을 하나하나 고쳐가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TV나  영화에 존재하는 건강한 훈육은 내 집에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이상하리만큼 내 아이의 훈육이 힘에 부친다.

내 뱃속에서 나온 내 아이이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훈육이 쉬울 거라 생각했던 내 포부와 자신감은 어느덧 희미해져 간다.


그리고 시작된다.


부모이기에, 널 낳은 부모이기에 가능한 바로 그것.


부모는 그들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물건처럼, 마치 내 스마트폰의 홈 화면을 편집하듯 그들을  조종하려 든다


내가 아니면 그 누구도 통제할 수 없다는 말도 안 되는 착각을 가지고 부모는 아이들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이 시대에 수많은 자살 청소년들을 본다.

들이 떠난 뒤 부모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까?


사랑하는 아들, 딸들이 어느 날 이유도 모른 채 갑자기 내 곁을 떠나게 된다면?


자식을 잃은 부모를 지칭하는 단어가 국어사전에  있던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이 트라우마.

상은 이를 외상 후 애도증후군이라 부른다.


가족이 떠난 빈자리를 바라보며 느껴지는 사람의 첫 감정은 공허함과 허무함일 듯하다.

여전히 집에 남아있는 가족의 체취를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또한 파도처럼 밀려오는 죄책감과 한탄을 그들은 겪어내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자식을 죽였다는 억울한 손가락질 까지도 

오롯이 남겨진 부모의 몫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완전히 달라진 일상으로 결국 돌아가야 한다.


영화 '사랑이 이긴다'의 결말을 보지는 않았지만 잠시 상상해 본다.

켜켜이 쌓여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린 가족 간의 갈등

혹은 부조리한 사회에서 철저하게 외면받던 불합리한 관계


이 모든 것들을 사랑 하나면 다 이겨낼 수 있다는 따뜻한 결말일까?

영화처럼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기길 진심으로 바라보지만

슬프게도 이 공식은 영화에서나 이루어질 법하다.



대한민국 입시라는 무한경쟁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영어강사 윤서영.

그녀는 적지 않은 돈을 받으며 대한민국 수험생들을 서열화, 획일화시키는데 기계처럼 일조한다.

10년 동안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 진절머리가 난 서영.

그녀는 잠시 쉬어 갈까 생각해 보지만 쉽지 않다.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쓰디쓴 사건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지 못한 채


서영은 10년째 여전히 같은 일상 속에

그녀의 삶을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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