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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들deux맘 Jun 15. 2024

YTN 뉴스 [1보]

이른 아침

서영이 설정해 놓은 YTN뉴스 어플에서 알림이 울렸다.

YTN 속보 1보 -중학생 방화 일가족 사망


서영은 알림을 보자마자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른 채

서영은 쓰러진 그 자리에서 간신히 바닥을 부여잡고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간다.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 없는 서영

서영은 온몸을 떨며 알 수 없는 눈물을 연신 흘린다.

그리고 책상 밑으로 기어 들어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파묻는다.

그렇게 한참을 운다.


제발 아니길 바라며

제발 도연의 이야기가 아니길 바라며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간신히 주워들은 서영


아버지 꾸중에 중학생 방화… 가족 4명 사망
(서울=연합뉴스) 안홍석 기자

"아버지 없으면 다른 가족과 행복할 것" 그릇된 판단
(서울=연합뉴스) 안홍석 기자 = 21일 서울 성동구 하왕십리동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일가족 살해 방화사건은 아버지의 꾸중에 앙심을 품은 한 중학생의 잘못된 선택이 부른 참극이었다.
경찰과 이웃 주민 등에 따르면 이날 붙잡힌 피의자 이모(13)군은 평소 예술을 좋아하고 성적은 반에서 중간 정도인 평범한 중학생이었다.

아버지(46)가 최근까지 의류 관련 사업을 크게 했던 탓에 가정환경도 부유한 편이었다.
하지만 이군과 아버지 사이에는 진로 문제를 놓고 갈등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평소 사진을 찍거나 춤을 추는 것이 취미였던 이군이 예술계 고등학교 진학을 꿈꿨으나 아버지는 이군이 판사나 검사가 돼야 한다며 반대했던 것이다.

점차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의 골은 깊어져 갔고 최근 들어서는 아버지가 "놀지 말고 공부나 하라"며 욕설과 함께 손으로 뺨을 때리거나 골프채로 폭행하는 일도 잦아졌다.

어느새 불만이 극에 달한 이군은 아버지만 없으면 어머니 최모(38)씨 등 다른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그릇된 생각에 범행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범행 이틀 전 근처 주유소에서 휘발유 8.5ℓ를 구입해 자신의 방에다 숨겨놓고 기회를 엿보던 이군은 20일 저녁 꾸짖음이 반복되자 그날 밤 아버지가 자는 안방과 거실에 휘발유를 부었다.

라이터로 불을 지른 뒤 다른 가족을 깨워 밖으로 피신시키려 했지만 순식간에 집안을 가득 채운 불길에 겁을 먹어 포기하고 혼자 아파트 계단을 뛰어내려 갔다.

결과는 참혹했다.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와 여동생(11)의 시신은 완전히 타버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경찰은 전했다.

안방과 거실에서 떨어진 문간방에서 자고 있던 할머니 박모(74)씨는 119 구급대에 의해 근처 한양대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숨졌다.

범행 후 근처를 배회하다 1시간 30분 만에 집으로 돌아온 이군은 신고를 받고 온 경찰과 주민들 앞에서 통곡을 하며 범행을 숨기려 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미 이군이 이틀 전 휘발유가 든 생수통을 가지고 집으로 들어가는 장면과 범행 뒤 생수통을 현관 근처에 버리고 달아나는 장면이 담긴 아파트 CCTV를 확보하고 있었다.

결국 이군은 경찰의 집요한 추궁에 범행 일체를 자백할 수밖에 없었다.

이군이 다니는 성북구 소재 모 중학교 교감은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고 운동을 좋아하는 맑은 성격을 가진 아이였다. 평소 문제를 일으키거나 결석도 없는 평범한 아이였는데 이런 일을 벌이다니 황당하고 가슴 아플 뿐이다"라고 말했다.   ahs@yna.co.kr


서영은 눈이 퉁퉁 부어 앞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간신히 핸드폰을 들어 통화기록을 확인하는 서영

지난주 도연에게 걸려온 세 번의 전화

그 내역이 정확히 기록되어 있다.

서영은 온몸에 힘이 빠졌다.  

학원에 결근을 통보하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TV를 틀어 YTN채널을 틀었다.

도연이다.

뉴스에 도연이 보인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보던 장면

조서를 받는 용의자와 경찰의 구도

그 자리에 도연이 앉아있다.

서영은 두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영상은 모자이크가 되어있지만 분명히 도연이었다.

늘 입던 옷

쓰던 모자

변조된 목소리였지만 분명히 도연이었다.

서영은 다시 한번 정신을 잃어 그대로 잠이 들었다.



서영은 늦은 저녁이 돼서야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자마자 밀려오는 슬픔과 허무함이 서영을 짓눌렀다.

서영은 엄마에게 전화했다.


그동안 있었던 일을 모두 엄마에게 말한 서영은

엄마와 한 시간 정도 통화를 한 후 조금은 진정이 되었다.


"엄마가 지금 갈까?"

"아니 괜찮아요. 그냥 잘래요."

"서영아, 혹시라도 그 집에 갈 생각하지 말아. 다 잊어버리고 살아. 마음은 아프지만 어쩌겠어. 힘들면 엄마한테 전화해. 엄마가 바로 갈게."


서영의 엄마는  딸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보고도 듣고도 믿을 수가 없던 서영은 버스를 타고 도연의 집에 가 볼 생각이었다.

다음 날

241B버스를 타고 그곳으로 출발했다.

분명히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겠다 다짐했었는데

서영은 조금이라도 빨리 그곳에 도착하고 싶다는 알 수 없는 마음을 느꼈다.


2 정거장 전

어제까지만 해도 빨리 와보고 싶었는데

갑자기 감당할 수 없는 큰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분명히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버스에 올라탔는데

서영은 두려워 떨고 있었다.

이내 도연의 집 정류장에 도착했지만 서영은 내리지 못했다.


그대로 앉아 고개를 들어 아파트 단지 그 층을 바라보았다.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비록 몇 초 동안이었지만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며 온통 잿빛이 돼버린 도연의 집이 보였다.


서영은 그렇게 모든 것을 직접 확인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서영의 삶도

도연의 삶도

다시는 예전과 같지 않을 것임을 깨달은 서영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공중파 TV와 인터넷 뉴스에 그 사건이 도배가 되었다.

서영은 식음을 전폐하며

TV뉴스와 댓글들을 확인했다.

하루 이틀 그리고 사흘째가 되니

더 이상 도연의 뉴스가 인터넷에서 보이지 않았다.


MBC의 한 아침방송 리포터가 도연의 집 이웃들을 인터뷰한 내용들이 나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웃들에게 늘 90도로 인사하는 인사성 밝은 학생

엄마를 아끼는 효자였다는 얘기를 한다.

말썽을 부리거나 반항하는 아들이 추호도 아니었다며

그럴 끔찍한 일을 저지를 학생이 아니었다는 말만 반복한다.


서영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연신 끄덕이며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소리로 말한다.


"도연이는 그럴 아이가 아니에요.

제가 도연의 전화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받았었다면..

한 번이라도 도연을 만나 얼마나 힘든지 조금이라도 공감을 해주었으면

일가족의 사망을 막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서영은 아무도 묻지 않은 질문에

그 누구도 듣고 있는 사람이 없지만

혼자 조용히 대답한다.


서영은 도연의 기사를

수십 번 읽었다.


그 기사에 적혀있던 모든 사실들 하나하나가

믿기지 않는다.

내가 아는 도연이

정말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니

얼마 전까지 나와 함께 공부하던 학생이

세상에 끊임없이 회자되는 사건의 한 중심에 있다니


서영에게 일상은 사치였다.


너를 만나고 싶다.

그토록 너를 피해 다녔던 내가

이제는

너를 만나고 싶다.

너를 만나

너의 눈을 보고

너의 손을 잡고

괜찮아.

다 잘될 거야.

우리 함께 노력해 보자.

내가 도와줄게.

도연이 그토록 듣고 싶었던 그 말들을

꼭 해주고 싶다.



영화 '블랙'의

잊고 싶은 기억을 지우는 '기억제거장치'

서영에게 그것이 있었다면


서영은 그 시간들을 지우고 싶었다.


도연의 전화를 애써 피했던

그 시간을 지워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도연아 선생님이 도와줄게!"

"네 선생님 감사해요."


특별한 해결책이 나오지 못했어도

"선생님이 도와줄게!" 한마디로

모든 것을 막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서영은 끊임없이 자책하며

하루하루 피폐해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원의 한 교수님께서

첫 수업 때 읽어주신

시 한 편이 생각났다.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이 시를 읽으며

서영은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은 힘이 났다.


서영을 스쳐간 모든 사람들

그 누구 하나

비록 이름조차 기억이 안 날지라도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구나.


한 영혼이

서영에게 다가온 순간

한 사람의 현재, 과거, 미래라는

모든 인생

실로 어마어마한 것들과의 만남이 시작됨을

서영은 기억하기로 했다.

서영은

앞으로 그녀에게 다가 올

이름 모를

한 영혼 영혼들에 대해

최선을 다해 '함께'하리라 다짐했다.


서영은 그렇게  

God's calling

'사명'을 얻었다.



서영에게

도연의 과거와 현재가 왔다.

그리고 이내 사라졌다.

아직 서영에게 오지 않은

도연의 미래를

도연과 '함께' 기다리고 싶었다.

도연의 과거와 현재가

이미 부서져

흔적조차 남지 않았을지라도

도연의 미래를

'함께'

기다려보겠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은 채

서영은 조금씩 일상을 회복해 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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