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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들deux맘 Jun 30. 2024

좁은길로의 동행

 

11시가 훌쩍 넘어 시곗바늘은 정오를 향한다.

19개월 첫째와 2개월 둘째가 동시에 잠이 들었다. 

서영은 아이들이 누워있는 침대에서 조용히 몸을 움직인다.

그다지 높지 않은 매트리스에서 내려오는 것은  코어운동을 방불케 한다.

그렇게 바닥까지 안전하게 착지한 후

문으로 살금살금 걸어가 숨죽이며 문고리를 잡는다.

성공이다.

이제 서영에게 허락된 시간은 고작 두 시간 남짓이다.

가끔은 그 마저도 사치다.

그 시간 동안 아침 겸 점심을 포함 여러 가지 일을 해내야 한다.


서영은 서울을 떠나 남편의 전임사역지로 내려와 아이 둘을 육아 중이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독박육아의 고충을 토로하며 힘들어하지만

서영은 두 아이를 키우며 새로운 적성을 찾았다.

그녀에게 육아는 즐거움 그 자체이다.

아이 둘의 모든 몸짓 하나하나가 사랑스럽다.

아이들 사진을 하루에 사진을 몇 백장을 찍어도 부족하다.

서영과 꼭 닮은 큰 아이의 발가락과

아빠를 꼭 닮은 둘째의 종아리까지

구석구석 예쁘지 않은 곳이 없다.

이 두 작은 생명체가 서영의 삶을 이끈다.


불과 몇 년 전

서영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집어버렸던 그 일이

점점 잊혀 가고 있는 것일까?

기억마저 희미해져 가는 듯하다.

그렇게 서영의 일상은 오롯이 아이들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조금은 희미해져도 괜찮을 것만 같다.

결국 잊는다 해도 누구도 뭐라 사람이 없지 않은가?

그렇게 잊고자 노력했는데 잊히지 않았다.

그런데 조금씩 그렇게 되고 있다.

반드시 이루어 낼 사명이라 생각했던 일이

아들 둘 육아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느껴진다.

 


서영의 남편은 한 교회에서 사역하는 전임 부목사이다.

낮에는 교구 심방을 하고 주일에는 고등부를 담당하며 열심히 사역했다.

뜨거운 여름 어느 날

남편은 예비군훈련을 앞두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2박 3일간의 이별이 아쉬워 데이트를 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영화관에 갔다.


그런데 갑자기 서영의 남편에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목사님, 저 지수예요."

"지수? 누구라고?"

"지수요. 목사님 저 이사 가요."

"이사? 지수 맞니? 목소리가 다른데?"

영화가 이미 시작된 터라 잘 들리진 않았지만

확실한 것은

전화상의 그 목소리는 우리가 아는 지수의 목소리가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공부할 시간에 뜬금없이 전화하여 이사한다는 내용을 전할 리가 없다.


우리는 더 이상 영화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찜찜한 전화를 받고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오후가 되어 지수에게 전화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지수는 그런 전화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다음날 지수가 다니던 학교에도 누군가 지수엄마를 사칭하며 전화를 했다고 했다.

곧 전학을 보낼 테니 필요한 절차를 밟아달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일주일 전 버스에 탄 지수에게 낯선 남자가 얼굴을 들이대며 위협을 했다고 했다.

지수는 버스에서 바로 내려 위기를 모면했지만

연일 걸려온 장난전화와 낯선 남자의 등장이 단순히 우연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영의 남편은 여전히 예비군훈련 중이었다.

모든 상황을 맞닥뜨린 서영은 주저하지 않고 지수와 지수의 아버님을 모시고 경찰서로 향했다.

안내에 따라 여성청소년과를 찾아가 자세히 면담하고 필요한 사항들을 준비했다.

서영에게서 난데없이 의협심이 불타올랐다.

도움이 필요한자가 서영 앞에 왔고

서영은 앞뒤 보지 않고 그저 돕고만 싶었다.

도연의 일처럼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도 못한 채

평생 후회하는 일을 다시는 만들고 싶지 않았다.

얼마 후

불가능할 것 만 같았던 신변보호요청이 빠른 시간 내에 받아들여졌고

두려워 떨던 지수의 손목에는 스마트워치가 채워졌다.

언제든 위협이 느껴지면 버튼 하나로 지수의 위치가 112에 신고되고 경찰이 즉각 출동하게 되었다.


서영의 절박함과 간절함이 하늘에 닿았다.  

돕고자 마음먹으면 하늘이 돕는다.

때로는 하늘이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보내주기도 한다.


경찰조사 결과

모든 것은 한 정신질환자의 소행임이 드러났다.


불과 몇 년 전

방관자의 모습으로

애써 모든 것을 외면하던 서영이

돕는 자의 위치에 서있다.

아이 둘을 키우며 온갖 정신은 육아에 팔려있음에도

돕겠다 마음먹으니 도울 수 있었다.  


잠시동안 잊었던 도연의 일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누군가에게는 간절하고 전부였을

도움의 손길

서영이 조금만 손을 뻗어도 닿았을 텐데.

그 손을 뻗는 행위조차

귀찮아하고 어색해했던 참으로 어리석었던 서영이었다.


서영은 오늘 하루도 어떻게 지나갔는지 알 수가 없다.

목회자인 남편의 내조와

1세, 3세 두 아들의 육아에 혼신의 힘을 다하며

그야말로 정신없이 살아간다.


서영은 부목사 사모로 살아가며

에 넘치는 사랑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억울함으로 가슴을 치며 울기도 한다.

좁은 길을 가는 것이 서영의 사명이라 여기며

조금의 불합리함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훈련을 한다.


가끔 서연은 도연의 삶이 궁금하다.

각종 sns를 뒤져보고 흔적을 찾아보려 노력하지만 매번 헛수고다.

도연의 안부가 궁금하지만 동시에 두려움이 앞서기도 한다.


평범하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성인이 되어 평범한 가정을 꾸린 서영과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성인이 되어 결코 평범하지 못한 삶을 살아갈 도연


누구는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고

또 다른 누군가는 불행한 가정에서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이 평범하고 행복한 서영의 삶이 계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불행했고 결국에는 막다른 곳에 봉착한 도연의 삶도 마찬가지

그 어떤 삶도 그 상태 그대로 지속되지 않는다.


주어진 삶을 감사하며 열심히 살아내는 것

그것이 우리들의 존재이유이자 평생의 숙제이다.

함께 살아가며 성장할 가족과 함께

그 귀한 삶의 가치를 배우고 또 전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고귀한 의무를 가진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

서로 협력하며 하나가 되어

동시에 완벽한 독립체로 성장해 나가야 한다는

본질적인 의무를 잊은 채

많은 가정들이 무너져 가고 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고쳐나갈 고민 조차 하지 않는다.

태어날 때부터 의도치 않게 무한경쟁 레이스에 참여하여

죽을 때까지 남과 자신을 비교하며 살아간다.

그 결과는 심히 참혹한 것임을

그들은 모른다.

자살 또는 타살

이 극단을 겪고 나서야

그것이 잘못된 길임을 '잠시' 고민한다.

그리고 예전보다 더 무장하여

마치 나에게는 그런 일이 절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

장담하며 그 고립된 경쟁의 길을 다시 나선다.

누구를 탓할 수 있을 것인가

한탄해 보고 탄식해 보아도

이것이 현실이다.


나도 죽고

남도 죽이며

끊임없이 경쟁해 나가는 삶만큼

끔찍하고 어려운 일이 없다.


나도 살고

남도 살리며

그저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는 삶만큼 

아름답고 쉬운 일이 없다.


최선을 다해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몫을 감당해 내며

'혼자'가 아닌

'함께' 살아내는 것.

그것을 가르치는 것이

부모의 존재이유이다.

어른들의 존재이유이다.

부모인 우리가

어른들인 우리가

다음세대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함께 손잡고 가는 그 길의 가치와 아름다움'

그것을 몸소 보여주며 가르쳐야 한다.



아이들을 간신히 재우고 거실로 나온 서영은

오늘도 산적한 집안일을 생각하며 찬양을 튼다.


내가 너를 빚었단다

나는 너의 토기장이

내가 너를 만들면서 얼마나 기뻐했는지

너의 눈을 만들면서

너에게 눈을 못 뗐지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지금도 기억한단다

너의 손을 빚으면서

하나하나 세어봤지

이 세상 너밖엔 없는 지문을 넣어주면서

너의 심장을 빚으며 호흡을 불어넣어 줬지

너의 첫 심장 소릴 들은 그날을 잊을 순 없지

너를 다 빚은 그날에 누구에게 널 맡길지

한참을 돌아본 후에 너를 보낼 수 있었지

오늘 내가 널 바라보는 마음은 어떨 것 같니

나는 널 단 한순간도 사랑치 않은 적 없지

나는 널 단 한순간도 손에서 놓은 적 없지

나는 널 단 한순간도 눈에서 땐 적도 없지

내가 너를 빚었단다 나는 너의 토기장이


토기장이 by 시와 그림


그리고 서영은

평소처럼 빨래를 개며

전하지도 못할 말들을 속으로 되뇐다.


"도연아! 너는 방식대로 그곳에서, 나는 방식대로 이곳에서 최선을 다해 남은 우리의 삶을 살아내자.

언젠가 우리가 우연히 만나더라도 지난날의 원망이 아니라 서로의 열심을 자랑할 수 있도록.

비록 좁은 길이지만 우리 함께 가자!"


앞으로 그들이 걸어갈 그 길은

단연코

'좁은 길'이길 바라본다.


넓고 평탄한 길이 아니라

누구나 주저하고 우회해서 가고 싶어 하는

좁디좁은 그런 길이길 간절히 바라본다.


그 좁은 길을 힘들게 걸어갈 때에

비로소

타인의

아픔이 보이고

고통이 느껴질 것이다.


그러한 숭고한 삶을 살아낼 때에

그들 삶의 존재이유가

더욱더 명확해질 것이고

그 고귀한 삶은 세대를 거쳐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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