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들deux맘 Jun 23. 2024

너를 만날 수만 있다면

서영은 일상으로의 회복을 간절히도 바라본다.


잊으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잊어버릴 수 있는 일이지만

그럴 수가 없다.


웃음기 사라진 서영의 얼굴이 점점 야위어간다.


보다 못한 서영의 절친은 서영에게 골든 레트리버 작은 새끼 강아지를 선물해 주었다.

어린 시절부터 늘 강아지를 좋아했는데 강아지를 키우며 서영의 얼굴엔 조금씩 생기가 돌았다.

내친김에 서영은 강아지 한 마리를 더 입양했다.

양몰이 개 보더콜리


곧 대형견이 될 두 마리 강아지

골든 레트리버 '우리'

보더콜리 '우주'

서영은 우리, 우주를 열심히 키우며 바쁘게 살았다.

우리와 우주가 반려동물 매개치료의 역할을 할 법도 하지만

서영에게 그 일은 평생 치료되지 않을 것만 같이

크고 아프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평범한 삶을 살아온 서영에게

너무나 큰일이 일어났다.

감당하기 조차 벅찬 일련의 이 일들을

모든 이가 그저 '잊어버리라' 말하는 이 일들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마음에 새기는 작업을 시작했다.

잊히지 않으니

차라리 온전히 기억하기로 했다.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릴 수는 없어도

틀어질 대로 틀어져버린 방향타를 바로잡고야 말겠다는 굳은 다짐과 함께


 

우리와 우주는 어느덧 대형견의 모습을 갖추어 갔다.

오후 5시 출근인 서영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우리 우주와 함께 양재 시민의 숲을 정원삼아 뛰어다녔다.

서영이 살던 원룸에서는 더 이상 살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 살만한 집을 찾아보지만 대치동에서는 도저히 대형견 두 마리를 환영해 주는 곳이 없다.


한 달 여쯤 지나

소개를 받아 양재동의 한 집을 찾게 되었다.

양재동 언남중 정문 바로 앞

눈에 띄게 오래된 2층집이다.


특이한 사항은 부엌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는 것.

부동산 사장님은 가스레인지조차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하자를

집을 보러 가서야 조심스레 말씀하셨다.


대형견 2마리 견주 서영에게

가스레인지 미설치는 더 이상의 하자가 아니었다.

어떤 종류의 반려견도 환영이라는 내용이 희망적이었다.


집주인 할머니에게 대형견 두 마리 얘기를 하니

가스레인지를 언급하시며 오히려 미안해하셨다.


서영의 엄마는 과년한 처녀가 시집갈 생각은 안 하고

대형견 두 마리를 키우며 개 때문에 이사까지 간다며

냉장고 가득 채우고도 남을 반찬을 가지고 오셔서

이사 내내 속상해했다.


이사 다음 날

한 60대 초반 정도 돼 보이시는 노신사분이 가스레인지 설치를 위해 서영의 집에 방문하셨다.

깔끔하게 차려입으신 옷매무새와 선한 미소가 인상적인 그분은

근처 인테리어가게 사장님이셨다.


"아가씨 교회 다녀요?"

"아 저 예전에 살던 집 근처 교회 다녔었어요. 모교회는 아니고요. 이제 이사 왔으니 교회 찾아보려고 해요. 집 근처로요. 혹시 장로님이세요?"

"아이고 아가씨 그걸 어떻게 알아요? 내 얼굴에 쓰여있는 것도 아닌데?"

"장로님처럼 생기셨어요. 얼굴에 장로님이라고 쓰여있어요 사장님!"


그렇게 서영은 80명 정도 출석하는 양재동의 한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주중 오전에는 우리 우주와 양재동 시민의 숲을 뛰어다녔고

저녁에는 학원에서 열심히 강의를 했다.

일주일에 2번은 새벽같이 일어나 우리 우주와 산책을 한 후 대학원 수업에 갔다.

그리고 주일에는 서영보다 10살이나 어린 청년들과 함께 예배드렸다.


그저 주어진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괜찮아질 것만 같았다.

하루가 시작되고

하루가 끝이 나고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고

또 다른 하루가 끝이 나고


무료한 일상의 반복이

서영을 다시 웃게 해 주리라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 전도사님이 서영에게 물었다.

"서영자매, 중고등부와 청년부 연합 수련회가 있는데 혹시 갈 수 있나요?"

"네 그럼요. 언제인가요?"

"아 정말요? 정말 갈 수 있어요? 청년부는 많이 참석 못할 것 같아서 걱정했는데 감사해요."


서영의 어린 시절

서영과 서영의 오빠는 중고등부 회장, 부회장이었다.

수련회  시즌이 되면 모든 친구들을 수련회에 초대하느라 바빴고  

3일간 기도하고 말씀암송하고 예배하고 찬양할 수 있음에 기뻤다.  


몰입(말씀+기도)과 열정(찬양)이 합쳐지는 순간

엄청난 시너지(은혜)가 발생한다.


서영은 특별한 계기가 필요했다.


중고등부 학생 8명 그리고 청년부 5명

총 13명이 참석한 수련회가 시작되었다.


전도사님은 모든 일에 열심이셨다.

아이들과 노는 것부터 찬양인도 그리고 설교말씀까지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작은 교회에서 중고등학교 청년부까지 담당해서 사역하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전도사님은 늘 땀을 흘리며 모든 일을 총괄하였다.


중고등학교 아이들과 함께하는 레크리에이션 시간

전도사님과 아이들은 여러 가지 게임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름 머리를 굴려야 하는 게임이자

동시에 상대방의 헤매는 표정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게 포인트인 '바보게임'  

서영은 열정을 다해 중고등부 아이들과 게임을 하는 전도사님을 보며 박장대소했다.

배가 아플 정도로 계속 웃어댔다.

서영은 30분 이상을 눈물이 날 정도로 웃었다.


서영이 웃는다.

평생 다시 웃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서영이 웃고 있다.

다시는 즐겁다 말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바보게임 덕분에 한참을 웃은 서영이 말한다.

"아 즐겁다!"

오랜만이었다.


수련회 마지막 날

전도사님은 여느 때처럼 열정적으로 말씀을 전하셨다.

목소리는 다 쉬어버리고 얼굴에 땀은 비 오듯 쏟아졌다.

땀인지 눈물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열정의 말씀을 전하시고는

마지막 간증을 하신다.


"저는 제 엄마가 친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스무 살 때 알았어요. 여러분들처럼 교회 수련회를 갔는데 어떤 권사님이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전도사님은 엄마에 대한 간증을 이어나가셨고 서영은 집중해서 들었다.

평범한 가정에서 넘치는 엄마의 사랑을 받고 자란 서영은 전도사님의 간증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일이 바빴고 청년들과도 10살 이상이 차이가 나 수련회에 올 생각이 없었는데

먼저 가자고 말씀해 주신 전도사님이 고마웠다.


지난 10개월

서영은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당연히 여겼던 모든 것들에 대하여

감사하기 시작했다.

감격하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그냥'이 없었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하나님의 섭리 (Providence)

바로 그것이었다.


서영의 삶이

'지속'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감사할 이유가

감격할 이유가

충분했다.




전도사님에게 네이트온 메시지가 왔다.

"서영자매, 밥 한번 먹어요."

대형견 두 마리와 직장 그리고 대학원으로 충분히 바쁜 삶을 살고 있던 서영은 전도사님의 메시지를 받고 당황했다.

"밥이요? 왜요?"

"서영자매 덕분에 청년부아이들이 예배와 모임에 열심히 오는 것 같아서 고마워서요. 제가 밥 한번 사려고요."

"괜찮아요 전도사님. 제가 왜 전도사님하고 밥을 먹어요.

저 밥 안 사주셔도 되니 전도사님 맛있는 거 많이 드세요."


그 후로도 전도사님은 서영에게 계속 밥 한번 먹자는 얘기를 했다.

3주 동안 끈질기게

농담처럼 때로는 진담처럼 계속 말씀하셨다.

계속되는 거절이 미안할 지경까지 이르자

서영은 어쩔 수 없이 약속에 응했다.


경기도 하남에 위치한 오리고깃집 '온누리장작구이'

서영도 전도사님도 차가 없는데 왜 그리 멀리 있는 식당으로 예약을 했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강동역에서 만나 시외버스를 타고 하남까지 갔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는데 전도사님이 잠이 들었다.

늘 열심히 사는 분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라도 쪽잠을 주무시나 보다 생각하며 서영은 전도사님을 깨우지 않았다.


밥을 먹으며 전도사님 이야기를 들었다.

어찌나 쉬지 않고 말씀을 재미있게 하시는지 듣는 내내 지루하지 않았다.

전도사님은 선교사비전을 받으셨다고 했다.

"저는 2 때 태국으로 유학을 갔어요. 누나와 함께요."

"태국이요? 태국으로도 유학을 가나요? 처음 들어요."

"태국에 국제학교가 많아요. 저도 국제고등학교, 국제대학교에서 공부했어요. 태국어를 하기는 하는데 잘 못해요. 영어로 공부했으니까요."

 

'유학생 선교사 파송'이라는 특별한 케이스로 태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신 전도사님.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단기선교를 필리핀으로 떠났었는데 그때부터 선교사의 꿈을 키워왔다고 했다.

"대학교 때 교회에서 단기선교를 갔어요. 태국 북부에  농카이라는 지역이었는데. 고아들이 많아요. 학교도 없고 병원도 없어요. 그곳에서 평생 선교하고 싶다는 비전을 갖게 되었어요."


수련회 때 알게 된 전도사님의 새엄마 이야기 그리고 선교 이야기까지

서영은 전도사님의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전도사님의 증조할아버지는 6.25 때 순교하신 순교자였다.

서영이 목격했던 전도사님의 그 열정은

생각보다 더 오랜 시간 흘러내려온

순교자가 흘린 피였다.


함께 예배하며 찬양하며 비전을 나누었다.

조금은 특별하게 서영을 바라보는 전도사님의 눈빛이 때로는 부담스러웠지만 서영도 싫지는 않았다.

그렇게 조금씩

그들은 그들의 특별한 '누군가'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어느 날 전도사님이 서영에게 말했다.


"농카이에는 학교도 없고 병원도 없어요. 그리고 고아가 많아요. 그 아이들을 다 품고 복음 전하며 살고 싶어요. 그게 내가 받은 비전이에요. 서영자매와 함께 버림받은 아이들 입양해서 살아가며 받은 비전을 펼쳐나가고 싶어요."


전도사님이 서영을 좋아한다는 느낌은 받았으나 받은 비전을 평생 함께 할 동역자로 여기는 줄은 생각도 못했다.


섣불리 결정할 수 없었던 서영은

몇 개월 간 기도해 보기로 했다.

기도하면 할수록 서영의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연을 떠올렸다.

부모와 온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도연

남은 세상을 어떻게 살아나갈까?

학교도 병원도 없는

그곳 농카이에

도연을 알아보는 사람도

도연의 삶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도 전무한 그곳.

그곳만이 도연이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유일무이한 곳이라 생각했다.


나와 전도사님이 도연의 부모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점차 확신이 들었다.

세상이 정한 죗값을 충분히 치른 후

도연을 데리고

세상의 인적이 드문 그곳 농카이에서

평생 복음을 전하며 사는 것이

서영이 그 일을 통해 받은 비전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서영은 뉴스를 통해 도연의 마지막 행방을 알 수 있었다.

촉법소년이었던 도연은 서울소년원 즉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고봉중고등학교로 보내졌을 것이다.

서영은 용기를 내어 연락을 해 보았다.

어렵게 본인소개를 한 서영에게 관계자는 가족, 학교 선생님, 교회관계자 외에는 어떠한 정보도 줄 수 없고 면회도 불가하다는 말을 들었다.

서영도 충분히 예측했던 부분이라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차에 교회 관계자는 면회가 가능하다는 말을 떠올렸다.

서영은 주저 없이 신학대학원 입시에 관해 검색을 시작했다.


그 당시 이미 서영은 전도사님과 함께 할 미래를 그리며 살고 있었다.

전도사님이 다니는 경기도 양지에 위치한 한 신학대학원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했다.


신학대학원 1차 시험과목은 국어, 영어(TEPS), 성경

텝스와 국어는 별다른 준비 없이 봐도 될 것 같았지만 성경은 달랐다.


전도사님은 군산에 위치한 38 전대 공군기지로 입대했다.   

연애를 시작하자마자 장거리 커플이 된 둘에게 장애물은 없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특히 내신 휴가를 받을 때마다 서영은 주저 없이 군산으로 떠났다.

 

38 전대 미군부대는 일반 부대와는 전혀 다르다.

군산터미널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20분쯤 가면 그곳에 도착하는데 그곳 전체는 미군부지이다.

입구에 있는 면회소만 지나면 실제 미국의 한 동네를 걷고 있는 느낌이 든다.


PX안에 있는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먹으며 스타벅스의 커피를 마시며

그들은 사랑을 속삭였다.

마음껏 사랑하고 함께 신대원 1차 성경과목 준비도 하며

그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냈다.


전도사님의 길고 긴 군생활도

서영의 곰신생활도

1년이 넘어갈 무렵


서영은 신학대학원 1차 시험, 2차 면접까지

다 치르고

결과만을 남겨두었다.


서영은 출근하여 일하던 학원 교무실에서 나와 아무도 없는 교실로 들어갔다.

학생들이 있을 때는 세상 그 어느 곳보다 시끄럽고 분주하게 돌아가는 곳이지만

학생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

그 시간만큼은

그곳은 적막하고 고요하다.


랩탑을 켜고 신학대학원 웹사이트에 들어갔다.


합격.


서영은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서울고봉중고등학교로 바로 전화를 했다.

도연의 교회 관계자로 소개했다.

서영은 도연의 근황이 너무나 궁금했다.


그러나 도연은 이미 출소한 후였다.

서영은 생각했다.

"일가족이 사망을 했는데 이렇게나 빨리? 그럼 지금 어디에 있는 거니? 어디로 간 거니? 엄마도 아빠도 없는데 대체 도연은 어디로 간 것일까?"


"이모가 주기적으로 면회를 왔었어요. 종교생활도 잘하더라고요. 예배를 매 주 드렸어요. 더 이상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고봉 중 관계자의 말이었다.


서영은 그때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도연과 과외할 시절에 도연이 말하곤 했다.

"이모가 저를 입양시키고 싶어 하셔요. 저도 그렇게 되면 좋겠어요."

부모가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이모가 조카를 입양을 한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길래 그냥 웃어넘겼다.


그때 그 이모가 도연을 면회하고

주기적으로 도연을 챙겼다.

그리고 출소 후 데리고 갔다.


그토록 바라던 도연과의 만남이 시작도 못한 채 허무하게 끝나버렸지만

서영은 내심 마음이 놓였다.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조카를 데리고 집으로 갔을

그 이모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리고 싶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꼭 도연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되뇌었다.


신학대학원에 입학을 하면 당해 입학 전 동계어학특강이 있다.

여전히 학원강의와 대학원 수업으로 바쁘게 살아가던 서영은 과감히 대학원을 휴학했다.


저녁에는 학원강의 오전에는 신학대학원에서 히브리어, 헬라어를 배우며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신학대학원 1학년은 기숙사 생활이 필수였는데

학원을 그만둘 수 없던 서영은

매일 저녁 학원 수업이 끝나면 남부터미널로 달려가 경기도 양지로 가는 마지막 버스를 탔다.


막차에 올라타 피곤한 한숨을 내쉬며 인터넷 뉴스를 보고 있는데

소설가 조정래 씨가 한 인문학 강연 중에 도연의 사건을 언급한다.

대한민국의 잘못된 교육열이 불러온 비극이라며 그 중학생을 끝까지 추적해 보겠다고 했다.

서영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설가 조정래 씨에게 이메일을 써보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도연의 사건이 발생하고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도연

널 만날 수만 있다면...


너를 꼭 만나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 그 하나가

지난 3년 서영을 이끌었다.

옆길 보지 않고

앞만 보며 달려왔다.

그리고 지금도 너를 향해 달려 나가고 있다.  


혼자 이 모든 것을 감당하던 서영

그녀는 이제 혼자가 아니다.

서영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품어주는 사람.

어떤 상황에서도

이보다 더 큰 시련이 닥칠지라도

그녀와 평생을 함께 할

소중한 사람이 있다.


너를 만날 수만 있다면...


그토록 간절한 너와의 만남이

왜 자꾸 엇갈리기만 하는지


널 만나

그저

미안하다는 그 말 한마디

하고 싶을 뿐인데

그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지질 않는다.


서영은 그렇게

마음의 빚진 자가 되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감사한 것은

서영이 홀로 외로이 걸어가던 그 길에

이제는 든든한 버팀목이 함께 있다는 것이다.






 






 


 






 



























이전 07화 YTN 뉴스 [1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