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로마제국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시절에 태어났다. 만약 예수가 기원전 4년에 태어난 게 맞다면, 로마제국의 철학자 세네카와 동갑내기다.
세네카는 “지옥 같은 건 없어, 신이 굳이 만들 이유가 없지”라고 했다. 왜냐고? 이 세상이 이미 지옥인데, 신이 더 지독한 지옥을 만든다고? 말도 안 된다는 거다. 근데 어느 사제가 사람들 겁주려고 지옥이라는 개념을 창조했다. 결과는 대박 성공! 사람들은 사제들 말을 잘 듣고, 재물도 갖다 바쳤다. 근데 현자들은 지옥을 믿지 않는단다.
구약 성경에 지옥이라는 개념은 없다. 신약에 나오는 그 지옥, 구약엔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지옥이라는 생각이 어디서 왔나? 이건 조로아스터교 영향을 받았다는 게 정설인데, 그 얘긴 너무 기니까 패스한다.
바울은 지옥에 대해 별 말이 없다. 죄인은 그냥 주님 앞에서 쫓겨나 “영원히 멸망하는 벌”을 받는다고만 했다. 요한복음의 예수는 아예 지옥에 입도 뻥끗 안 한다.
마가복음에선 예수가 지옥을 딱 한 번 언급한다. “지옥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 죄지으면 지옥에서 영원히 타야 한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는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를 통해 지옥을 보여준다. 거지 나사로는 천국으로 가고, 부자는 지옥에 가서 불타는 고통에 시달린다. 부자는 물 한 방울만 혀에 적시게 해달라며 아브라함에게 애원하지만, “너는 세상에서 이미 행복 다 누렸잖아?”라는 답만 돌아온다.
마태복음은 마가의 지옥에 종말론을 추가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과 몸을 지옥에서 다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라.” (10장)
“심판의 날에는 소돔이 너희보다 덜 고통스러울 것이다.” (11장)
“내가 천사들을 보내 죄짓게 하는 자와 악행자들을 불구덩이에 던져 넣겠다. 그들은 거기서 이를 갈며 통곡할 것이다.” (13장)
“'저주받은 자들'아, 마귀와 그 부하들을 위해 준비된 영원한 불로 들어가라.” (25장)
‘저주받은 자들’이 누구냐고? 그들이 “언제 우리가 그랬냐”라고 따지면 예수가 이렇게 대답한다. “너희가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다.”
마태복음의 예수는 지옥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심판의 날이 오기 전에 구원받지 못하면 멸망하고, 멸망한 사람들은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 끔찍한 불에 들어간다. 이런 얘기를 한 사람이 정말 사랑의 예수인가?
처음엔 나도 마태복음의 지옥 얘기를 믿었다. 근데 신학 공부하면서 깨달았다. 사랑과 비폭력 투쟁의 예수가 이런 말을 했을 리가 없다는 것을. 그러면 어디서 잘못된 걸까?
예수는 어록이나 저서도 하나 안 남기고 메시아적 삶을 살다 갔다. 복음서 4권이 그의 말과 행적을 전하고 있지만, 가장 먼저 쓰인 마가복음조차 서기 66년 이후에 쓰였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니까 예수가 십자가 처형을 당한 후 최소한 30년이 지난 뒤라는 얘기다.
근데 바울의 서신은 마가복음보다 훨씬 전에 쓰였다. 서기 64년에 로마 대화재가 있었고, 네로가 바울을 방화범으로 체포해서 참수한 게 65년이니까, 당연히 바울의 글들이 복음서들보다 앞선 거다.
문제는 바울이 인간 예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거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에 대해 주워들은 얘기에 자기 신학을 덧입혀 그리스도를 그려냈다. 근데 바울이 만든 그리스도는 진짜 예수와 너무 달랐다. 그 반발과 보완으로 마가복음이 쓰이고, 또 그에 대한 반발과 보완으로 마태와 누가, 그리고 요한이 복음서를 쓰게 된 거다.
예수가 떠난 지 꽤 된 상황이라, 복음서 저자들도 그 시절 예수를 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러니 결국 자기 신학적 색깔이 복음서에 녹아들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복음서마다 지옥 묘사가 다르고, 지옥의 끔찍한 정도가 점점 심해진 거다. 요한복음은 마태복음의 지옥 묘사가 충분하다고 느꼈는지 지옥 얘긴 한 마디도 안 했다.
예수가 사랑과 지옥을 한 입으로 말할 수 있나? 이걸 확인해보려고 성경 형성 과정을 요약해 본 거다.
나는 예수가 지옥이나 심판으로 협박했다고 믿지 않는다. 예수의 비전은 하늘나라가 아니라 이 땅에서 ‘하느님 나라’를 이루는 거였다. 그래서 온몸으로 인류를 사랑하고, 불의한 체제에 맞서 싸우다가 결국 십자가에 처형당했다. 예수의 비전이 사후의 천국이었다면, 그는 싸우지 않고 그저 사랑만 했을 거다.
4권의 복음서는 사람들을 지옥과 최후의 심판으로 협박했다. 왜 그랬냐면, 예수가 처형당하자 많은 신자들이떠나갔기 때문이다. 예수의 '하느님 나라'는 하늘로 옮겨지고, 떠난 자들에 대한 복수로 지옥이 도입된 거다.
지옥 개념은 2천 년 동안 종교적 협박의 도구가 됐다. 면죄부는 지옥 덕분에 팔렸고, 종교재판, 마녀사냥, 이교도 박멸은 지옥 개념을 이 땅에 옮겨온 거다.
나는 지옥이 싫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근데 나는 지옥은 없다고 믿는다. 얼마나 축복인가! 지옥이 있다면 여기 이 세상에 있는 거다. 아니 사실 이 세상 자체가 지옥이다. 그래서 예수가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세우려 했던 거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지옥의 예수가 아니라, 사랑의 예수를 믿어 평안을 누리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