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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글 May 09. 2024

강박증이 가져온 불행 2

연애를 하다 보면 이상하게 여자친구와 유독 자주 다투거나 의견이 안 맞는 시기가 있다.. 나도 그럴 때가 있다고 느끼는데, 최근에 그런 일이 있었다. 근데 이번엔 그중에서도 유독 좀 더 많이 싸우고 진짜 좀 삐그덕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여자친구도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먼저 시간을 갖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다.. 사실 예전부터 계속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말한 거겠지만.. 일단 이런 결정을 촉발한 사건은 일명 ”에어팟 사건“


여자친구가 에어팟을 잃어버렸다고 급하게 문자가 왔다. 그래서 나 역시 걱정이 되고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는데.. 여자친구도 어디서 잃어버린 건지 도저히 잘 모르겠다고 했다. 여자친구가 에어팟이 두 개였어서 하나는 나한테 쓰라고 줬었는데, 나는 충전하는 걸 귀찮아하는 편이라 자주 쓰진 않았었다. 여자친구가 혹시 못 찾게 되면 이번주에 에어팟 좀 줄 수 있냐고 묻는 질문에 나는 당연히 여자친구 것이기에 준다고 했다.

그리고 한 이틀 정도 지났나? 여자친구가 마지막으로 에어팟을 쓴 것 같은 카페에 가서 분실물을 확인해 보니 에어팟이 있었다고, 너무 기쁘고 다행이라고 전화가 왔다.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남자친구로서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은가? 평범한 커플이라면, “와..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너무 다행이다!! 찾아서 행운이야” 뭐 이런 식이겠지만.. 이놈의 강박증이 또 찾아와 버리는 바람에.. 난 기쁜 마음보다는 걱정되는 마음이 앞서기 시작했다.


‘그 에어팟이 진짜 여자친구게 아니면 어떡하지?’ ‘누가 분실물 신고하기 전에 에어팟을 썼거나 막 해킹했으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이 들었다. (해킹? 그건 바로 내 두 번째 강박증상인 ‘여자친구와의 사생활이 노출되면 어떡하지?’이다) 근데 그날따라 유독 너무 걱정이 많이 되고, 강박 증세가 조절이 안 됐다. 그것 때문에 여자친구도 많이 힘들어하고, 잠시 연락을 안 하던 중에 여자친구가 전화가 왔다..

‘오빠 우리 요즘 너무 자주 싸우고, 조금 지치는 게 사실인 거 같아.. 나도 좀 생각을 해보고 싶은데, 다음 주에 만나기 전까지는 연락 안 하고 지낼 수 있을까?’

그 말은 좀 충격이었다... 조금 안 맞고 싸우더라도 길어봐야 하루 이상 가지 않았고, 항상 서로 대화하고 사랑해라고 하며 마무리하고는 했는데, 이렇게 일주일 동안 연락을 안 하고 깊게 좀 생각해 보겠다고.. 마음을 잘 모르겠다고 한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문득 보내줄 때 보내주더라도 갑자기 하고 싶은 말이 생겨 전화를 끊기 전,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눈물이 주르륵 떨어지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주 요지는 "고맙다는 것". 그리고 여자친구가 나에겐 정말 큰 행운이었고, 언제나 잘되길 바랄 거고 안 아프고 힘들었으면 좋겠다는 것. 나는 그녀를 잡을 수 없었다. 내가 얼마나 많은 빚을 그녀에게 지고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녀는 정말로 말 그대로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그리고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 그녀가 계속 내 옆에서 불행한 것보단 나와 떨어져서 더 행복한 삶을 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자친구는 내가 이렇게 말할 거라고 이미 예상하고 있었나 보다. ‘나쁜 자식 차라리 붙잡기라도 하지..’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나 역시 그날 밤에 깊게 생각을 해보고, 다음날에 혼자 있으면 너무 기분이 안 좋을 것 같아서 밖에 나가서 좋은 카페에서 음료도 마시며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글을 좀 써봤다. 그때 썼던 글이 "미련하다"였다. (제 글에 가보면 있는데.. 아실지 모르겠어요ㅎㅎ한번 읽어주세요~) 그리고 혼자 있긴 싫어서 엄마와 만나 카페에서 고민 상담도 좀 하고, 같이 맛있게 밥을 먹으며 너무 우울하지 않게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무너지지 않고 긍정적으로 삶을 보내고 있던 탓일까.. 뜻밖의 일이 펼쳐졌다. 그다음 날 아침, 갑자기 여자친구에게 장문의 카톡이 와있었던 것이다. 카톡 미리 보기로 내용이 다 보이지가 않아서.. 나는 무슨 말이지? 그래서 헤어지자는 건가.. 이렇게 가슴 조마조마하며 내용을 눌러보았다. 그녀가 보낸 메시지를 다 보여주고 싶지만.. 그러기엔 너무너무 길어서 간단하게 요약해서 주요 구절만 보여주도록 하겠다.


'누군가를 이렇게 마음속 깊이 담는 데에 고작 1년 3개월이라는 시간밖에 걸리지 않다니.. 아무튼 내가 힘들다고 하면 넌 나를 놓아줄 것이 뻔했기에 난 언제나 매번 용기내야 했다.'

'선택지가 있다는 생각조차 굉장히 이기적이지만... 기다리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없는 오빠의 마음을 내가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또 혼자서 내 주변 사람들은 날 다 떠나. 이런 생각하고 있으면 머리를 콩 쥐어박아줘야지. 다시 그렇게 동굴로 들어가는 선택을 하면 나랑 보낸 1년 3개월. 내가 한 노력과 사랑은 다 무용지물이 되는 거야... 진심으로 아프지 않길..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길 바란다.'


정말 긴 내용을 나에게 말했지만, 아직까지도 내 가슴 깊이 남아있는 말들이다. 그렇게 힘든 시간 속에서도 그녀가 본인보단 나를 얼마나 생각하고 신경 쓰는지 알 수 있었고, 아주 짧은 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 1년 3개월 동안 내가 3년 넘게 살던 동굴에서 빠져나오게 해 준 그녀가 새삼 대단하고 너무 고맙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는 “연애를 하면서 타협할 수 없는 지점이 오면 결국 다시 싸우고 헤어질 위기가 올 거야..”라고 말하며 나와 이야기하고 타협해보고 싶은 지점들을 말했다. 내가 놀란 것은 여자친구는 오빠의 강박증 때문이 아니야 오히려 우리가 안 맞는 다른 부분도 많아..라고 했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는 그 모든 것이 강박증이 배경이 되어있기에 나오는 성향이었다. 즉, 내 강박증이 얼마나 내 삶의 전부에 침투해 있는지를 몸소 느꼈던 것 같다.


그녀가 말한 타협 지점은 총 세 가지.

1.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미련하다" 글을 보면 좀 더 도움이 될 텐데.. 이것도 놀란 게..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녀와 나는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다르다. 나는 이 세상이 어둡다고 믿으며 그런 부분만을 보고 믿으려고 한다. 반면, 그녀는 이 세상에 아름다운 게 정말 많다고 믿고, 그런 부분만을 보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어두운 나는 밝아져야 하지만 그녀는 어둠에 잠식될까 봐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2.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

나는 사랑을 표현하는 데 정말 서툴다.. 어릴 때부터 아빠가 경상도 남자셨지만 나는 부정하며 근데 난 서울 남자야. 아주 표현 잘해. 츤데레 이런 거 싫어.. 이랬는데 알고 보면 부전자전이라고 나도 똑같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직설적으로 미안해. 사랑해. 이런 워딩으로 표현하는 건 참 잘 못한다. 반면, 여자친구는 직설적으로 사랑 표현을 잘하는 편이다.. 그리고 나도 그래주기를 좀 바란다. 근데 내가 매번 툴툴대면서 표현하니 좀 힘들었겠지..?


3. 내가 그리는 미래가 오빠가 그리는 미래와 많이 다른 것

이것도 강박증에서 비롯된 걱정병이 한 몫하는 부분인데... 그녀는 정말 낙관적이고 도전적이다. 마라톤 대회 나가기, 몽골 여행 가기, 스쿠버다이빙, 스카이다이빙 뭐 번지점프 등 정말 다양한 활동을 도전해보고 싶어 한다. 그런데 나는 매우 보수적이다. 새로운 시도를 안 하는 건 아니지만... 변화를 그다지 싫어하고 또 도전하기 전에 정말 많은 위험요소를 제거하려고 하거나 다 생각하고 고려한다. 그러니 자연스레 나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해보지 못한 적이 참 많았다..


이 지점들을 해결해 나가려면, 결국 강박증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날 나는 결심했던 것 같다. 그녀를 사랑하는 만큼 필사적으로 정말 죽을힘을 다해 다시 나아가야겠다. 이 강박증에서 벗어나야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 수 있겠구나... 그래서 나는 강박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선 강박이 뭔지, 벗어나는 방법이 있긴 한지 등에 대해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녀는 아주 오래전부터, 즉 나를 만날 때부터 나를 더 잘 알고 사랑해 주기 위해 강박증을 공부하고 있었고... 그녀가 나에게 가장 먼저 추천한 책은 "강박증의 증상과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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