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y me ^*^
우리 가족이 오스틴에 처음방문한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즉 동생이 결혼한 지도 어느새 20년이 훌쩍 흘러버렸다.
그러고 보니 오스틴에 처음 올 때 환갑이셨던 아빠가 팔십이 되셨다..
그러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시는 분이시다.
게다가 아빠는 내가 알고 있는 8학년 중에서 제일 쇼핑을 좋아하신다.
오스틴의 날씨가 며칠째 37도에 육박하고 있다.
시차는 적응됐으나 이 도시의 여름더위는 아직 적응하려면 시간이 걸릴듯하다.
이럴 땐 쇼핑몰만큼 시원한 장소가 없다.
게다가 쇼핑을 좋아하시는 팔순의 청년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다.
그래서 선택한 오늘의 일정은 쇼핑몰투어다.
집에서 10분 거리에 LAKELINE 몰이 있다.
게다가 이 몰에는 4개의 백화점까지 입점해 있다.
미국 백화점은 한국과 달리 매장에 고객들을 응대하는 직원분들이 일일이 고객을 쫓아다니지 않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든다.
내 맘대로 입어보고 만져보고 신어보고 마치 내가 백화점을 통째로 대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저 와줘서 고마우니 맘대로 즐기라는 뜻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리 자유로워도 백화점은 쇼핑몰만큼 손님이 많치않다.
오스틴사람들도 백화점보다 활기찬 쇼핑몰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사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쇼핑몰은 여자들에겐 기쁨이다.
그러나 아빠처럼 연세 드신 남자분들에겐 관심 없는 장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를 비롯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게 있다.
나이가드시면 먹고 싶은 것도 많지 않고 사고 싶은 것도 별로 없을 거라고...
특히 연세 드신 남자분들은 더 그럴 거라고...
하지만 우리 아빠는 예외다.
드시고 싶은 것도 많으시고 사고 싶은 것은 더 많으신 분이다.
오늘 아빠의 쇼핑 하이라이트는 BATH &BODY WORKS 바디용품점이다.
여동생은 일찌감치 아빠가 좋은 향기 나는 할아버지가 되실 수 있도록 미국에서 한국으로 이곳 바디제품을 보내주고 있다.
이번에는 미국에 오셨으니 진짜 아빠가 좋아하시는 향기를 찾아보자며 특별히 이곳을 가보자고 했다.
상상해 보라. 한국의 쇼핑몰 바디용품샾에서 80대 남자어르신이 바디용품을 고른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볼까?
그러나 미국은 그런 시선을 느낄 수 없는 곳이다.
그곳은 아빠가 쇼핑을 많이 해주기를 바라는 직원들의 미소만 가득한 곳이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국에 시니어전용 바디용품점 이 있다면 아빠도 한국에서 당신의 향기를 찾기 쉬우셨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한국에서 시니어모델이나 중년연예인들 처럼 좀 시선을 끄는 분들이 바디용품점에 들어가시는 것은 멋있어 보이실 수도 있겠지만 아빠처럼 평범하고 일반적인 노인분들이 젊은이들이 이용하는 바디용품점에 들어가시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예비 노인인데 이런 점은 안타깝다.
마음은 늙지 않는데 말이다.
그래도 한국에서 딸들이 팔순의 아빠에게 바디용품을 골라주는 광경은 흔치 않은 건 사실이다. 우리가 흔치 않은 딸들인 것도 사실이다.
한국에도 곳곳에 노인전용바디샾이 많이 생기면 시니어 분들의 삶에 좀 더 좋은 향기가 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오늘 쇼핑의 하이라이트를 만들어준 주인공이 따로 있다.
바로 묵묵히 할아버지를 따라다닌 우리 조카!
어릴 때부터 착하고 살가웠지만 대학생이 된 지금도 너무 스윗하다.
특히 언제나 할아버지 손을 꼭 잡고 다닌다.
그런데 기특하게도 조카는 바디용품을 고르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께 다가가 TRY ME 라고 쓰여있는 건 제품을 무료로 발라봐도 되는 거라고 설명해 주었다.
즉 알아듣기 쉽게 공짜라고 말해주었다.
그 후 매장의 TRY ME 는 아빠엄마의 손길을 거쳐갔다..
TRY ME 가 샘플인걸 알려준 조카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발라준 공짜 바디로션 덕분에 온몸이 달콤한 냄새로 가득한 청년이 되었다.
TRY ME 쇼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엔 전자제품 전문매장 BEST BY에 들러 조카와 할아버지의 게임도 한판 벌어졌다.
할아버지 단짝 우리 조카덕에 아빠엄마는 TRY ME (공짜)라는 뜻은 절대 잊지 못하실 거라 하셨다.
오늘 쇼핑한 바디용품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며 아빠는 말씀하신다..
"트라이 미는 공짜라 이거지!"
그 후로 아빠의 "트라이 미" 사랑은 계속되었다..
좋은 향기를 가지고 싶어 하는 마음은 나이와 상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