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친척이 있기를 바랐었어...
내가 어린 시절 가장 부러워했던 친구를 꼽는다면 미국에 친척이 있는 친구였다.
게다가 친척이 보내줬다는 각종 선물들을 자랑하는 애들을 보면 왜 나에겐 미국에 사는 이모나 삼촌이 없는지 슬프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내 마음을 뺏어버린 건 금발머리에 허리가 잘록했던 미녀인형이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아니 앞으로도 가볼 수 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왔다는 그 미녀인형은 어린 나에게 아메리칸드림을 꿈꾸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인형은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70년대에 미국 여자아이들에게 가장인기 있었던 '바비인형'이었던 것 같다.
바비(Barbie)는 미국의 완구회사 매텔(Mattel)이 1959년에 처음 출시한 인형으로 창립자 루스 핸들러(Ruth Handler)는 여자 아이들이 어른이 된 자신을 상상할 수 있는 인형을 만들고 싶어 바비인형을 고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에 친척이 없어도 그 당시 좀 산다 하는 집 여자애들은 '마론인형'이라 불렸던 바비인형과 비슷하게 생긴 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마론인형은 그 당시 미국의 바비인형에 착안하여 국내 한 업체가 만든 인형이었다고 한다.
마론(Maron)이라는 이름이 그 당시 미스유니버스의 이름이었다는 말도 있고 프랑스어로 갈색머리라는 마론( Marron)에서 유래됐다는 이야기도 있다지만 어쨌든 바비인형처럼 날씬하고 갈색머리를 한 한국버전의 바비인형이었음은 사실이었던 것 같다.
여동생과 나는 그 당시 철이 일찍 들었는지 고생하시는 부모님께 비싼 마론인형을 사달라고 할 생각을 히지 못했다.
대신에 문방구에서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그나마 제일 마론인형과 흡사한 인형을 샀는데 바비도, 마론 도 아니었던 이름 모를 문방구브랜드 인형은 우리 자매에게는 막냇동생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솔직한 마음은 나에게도 산타할아버지가 마론인형을 선물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미국에 친척이 있기를 꿈꿨고 바비와 마론인형을 부러워했던 자매는 전 세계를 누비는 여행인솔자가 되었고 미국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어른이 되어 오스틴에 살고 있는 새로운 인형을 만났다.
바로 아메리칸걸 돌이었다.
물론 동생보다 인형을 더 좋아했던 내가 미국에 와서 첫 번째로 좋아했던 인형은 'Cabbage Patch Kids'라는 양배추인형이었다.
미국에서는 아이들이 "엄마 나 어디서 데리고 왔어?"라고 질문하면 우리나라 엄마들이 "다리밑에서 데리고 왔지"라고 말하는 것처럼 미국엄마들은 "양배추 밭에서 주워왔단다"라고 얘기한다고 한다.
인형을 판매할 때 입양증명서까지 주는 너무도 귀여운 양배추인형을 나도 입양해 볼까라고 고민한 적도 있었다.
이렇듯 인형에 진심이었던 내가 처음 아메리카 돌 베이비를 접하게 된 때는 바로 나의 여조카가 돌 무렵이었다.
여동생 가족과 친분이 있던 미국할머니께서 조카에게 선물한 인형이라는데 까만 눈동자와 까만 머리를 가진 아가조카가 너무 귀여워 아메리칸 돌 중에서도 '아메리칸 돌 베이비'를 선물해 주신 거라고 들었다.
그런데 오늘 나는 그 당시 잠깐 봤었던 그때의 그 베이비 인형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동화 속 이야기 같지만 여동생은 조카의 방에서 오래된 가방하나를 가지고 나오며 잊고 있던 동양아가와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었다.
그 당시 유난히도 여조카를 귀여워하셨던 할머니는 인형을 선물하신 이후에도 손수 인형아가의 옷을 직접 여러 벌을 만들어 주셨었고 조카가 자라는 것을 오래오래 보고 싶어 하셨었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는 하늘나라로 바쁘게 떠나셔야 했다...
세월이 흘러 아메리칸 돌 베이비는 아가모습 그대로인데 까만 눈동자의 동양아가는 이제 예쁜 고등학생이 되었다.
미국할머니가 만들어주신 추억의 옷을 아가에게 다시 입혀보니 정말 사랑스러웠다.
동생이 가지고 나온 가방 안에는 할머니께서 만들어주셨던 인형옷들과 소품들 그리고 액세서리가 가득했다.
하나하나 옷을 펼쳐보니 아가조카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셨던 미국할머니의 사랑이 느껴졌고 그 사랑을 아이에게 기억하게 하고 사랑을 주는 아이로 자라기를 바라며 추억의 물건들을 소중하게 보관해 준 동생이 참 좋은 엄마라 느껴졌다.
어느새 고등학생이 된 조카는 몇 년 전 뉴욕에 갔을 때 아메리칸 돌 매장에서 산 자기 닮은 인형을 보여주었다.
아기였던 조카를 떠올리며, 나와 동생이 인형놀이하며 놀았던 그 시절을 추억하며 동생과 나는 어릴 때처럼 인형놀이 삼매경에 빠졌다.
비록 그렇게 갖고 싶었던 바비도 비싼 마론인형도 아니었지만 우리 자매에게는 문방구에서 산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졌던 인형이 정말로 소중했었다.
옷을 갈아입히고 머리를 빗겨주고 정성을 듬뿍 담아 사랑해 주었던 그때 그 시절 추억을 떠올리니 왠지 가슴속이 뭉클해졌다.
가난한 날의 행복 이어서일까...
한국과 미국에 따로 살기에 자주 볼 수 없지만
오늘 동생과 내가 인형놀이를 하는 이 시간들이 언젠간 또 우리 자매에게 추억의 시간이 될 거라 생각하니 나란히 앉아있는 인형들의 모습이 마치 나와 내 동생인 것 같다.
인생은 조금 부족했을 때 더 많은 추억을 가져다준다.
미국에 친척이 있어 바비인형을 보내줬다면 엄마에게 마론인형을 사달라고 졸랐었다면
지금 우리 자매에게 없었을 추억...
채워져 있음보다 채워가는 것이 더 행복임을 느끼는 오스틴에서의 오늘 하루가 사랑 가득히 흘러간다.
가족이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어깨를 감싸주는 듯한 따뜻한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다음 회차부터는 별책부록이라는 이름으로 아빠의 팔순기념으로 오스틴에서 하와이로 여행 간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솔자 가족의 하와이여행기도 재미있게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