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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준 Jul 05. 2023

둥지




1999년 9월 초, 런던에서 두 딸의 학교생활이 시작되었다. 작은딸은 초등학교 Year 4, 큰딸은

하이스쿨 (중. 고 과정) Year 9이었다. 영국에서는 중학교(Middle School)란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두 딸의 학교는 방향은 달랐지만 집에서 보도로 10여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통학에 불편함은 없었다.

두 딸이 학교에 다니게 되자, 아내도 발맞추어 랭귀지 스쿨에 등록을 했고 공부를 시작했다. 이제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학생 신분이었다. 

우리 가족은 날이 밝으면 두 딸은 학교로, 아내와 나는 랭귀지 스쿨을 향했고, 일과가 끝나면 둥지를 찾는 새들처럼 집으로 날아들었다. 

익숙지 못한 언어의 불편함, 한국과는 다른 문화와 생활습관 등으로 어려움들이 장애물경기의 허들처럼 곳곳에 산재해 있었지만, 가족이 둥지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영국에서는 만 10세까지의 학생들은 학부모나 보호자(가디언)가 의무적으로 등교 시 동행해야 하고, 하교 시에도 교문 앞에서 기다렸다가 픽업을 해야 했다. 

작은딸의 아침 등교는 주로 아내가 동행했지만, 하교 시에는 아내가 갈 때가 이었고, 내가 픽업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교시간이 되면 학생들이 밀물처럼 교문을 빠져나왔다.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는 것 같았다. 영국에서는 초등학생들도 교복을 입었는데, 작은딸의 학교는 파란색이었기 때문이었다. 전통을 중시하는 나라라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여학생들도 흰색 와이셔츠에 넥타이까지 매야 했고, (일부학교는 넥타이를 생략하기도 하지만) 구두를 신었다. 

교복을 단정히 입은 학생들이 교문을 빠져나오는 것을 보면 삼삼오오 어울려 대화를 나누며 웃고 떠들썩하게 나오는데, 작은딸은 외톨이로 나오다가 나를 발견하고 밝게 웃으며 달려왔다. 

책가방을 받아 든 후, 손을 잡고 집을 향해 걸으며 학교생활에 관한 질문을 하기도 했다.

“오늘은 학교생활 어떻게 했어? 얘들하고 애기도 하고 같이 놀았어?”

“……”

작은딸은 대답대신 머리를 가로저었다.

“선생님 말은 좀 알아 들었어?”

“……”

역시 머리를 가로저었다.

“괜찮아. 처음엔 다 그런 거야. 이제 학교 다니기 시작한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뭐. 외국에 와서 그렇게 빨리 반 애들과 어울리고 선생님 말씀 알아들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지”

이렇게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작은딸이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까 하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먹먹해졌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면서 작은딸은 학교생활에 변화가 있었다. 픽업을 하러 가서 보면 아이들과 어울려 대화를 나누며 웃기도 했고, 표정이 밝아져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내가 묻지도 않은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꺼내어 늘어놓기도 했다. 수학과 과학 시간에 다른 학생이 모르는 것을 대답을 해서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은 이야기. 반애들과 주고받은 이야기, 점심시간에 아이들과 어울려 집에서 준비해 간 런치박스를 먹고 운동장에서 뛰어놀았던 이야기를 끊이질 않고 조잘조잘했다.


큰딸도 언어에 불편한 점이 있겠지만 나름대로 잘 적응해 가고 있었다. 큰딸 역시 수학과 과학시간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질문에 대답을 자주 해서 교사의 칭찬을 받고 있었다. 한국에 있을 때 수학은 그저 그런 과목이었으나 지금은 잘하는 과목 중에 하나였다. 


두 딸이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을 하게 되자 그동안 뒤로 미뤘던 일을 실행에 옮겨야 했다. 바로 운동이었다. 성장기에 신체 발달과 건강에 운동만큼 좋은 게 없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 있을 때 큰애는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줄곧 수영을 해서 선수 못지않은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자유형, 평형, 배형은 물론 접영까지 못하는 게 없었다. 물에 들어가면 물개가 아니라 물새가 되었다. 

스케이트도 선수 못지않은 자세와 스피드를 가지고 있었다. 

작은애도 초등학교 1학년부터 수영과 스케이트를 시작해 2년이 넘었기 때문에 제법 실력이 붙어있는 상태였다


마침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데이비드 로이드 스포츠 센터(David Lloyd Sport Centre)가 있었다. 그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 거대한 공장으로 오인했을 정도로 상상을 초월한 규모였다. 

1층(그라운드 층)에는 볼링장과 여덟 개의 테니스 코트. 그리고 수영장이 있었다. 2층에는 (영국에서는 1층)에는 요가 실, 에어로빅 실, 태권도실이 널찍널찍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엄청난 크기의 헬스장이 있었다. 실내에 그런 체육 시설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건물 외부에는 실외 테니스 코트가 4개나 있었고, 실외 수영장도 있었다. 

생각보다 이용권도 그리 비싸지 않았다. 패밀리 이용권은 할인혜택이 많아 120파운드(약 20만 원) 면 가족이 전부 이용할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주중에 2-3회, 주말에 1-2회 정도 이용했는데, 나와 아내는 주로 헬스장에서 두 딸은 수영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런던에서 생활하며 우리나라와 다른 문화 때문에 당황하기도 하고 충격을 받기도 했다. 

지금이야 우리나라에서도 핼러윈 데이(Halloween Day)가 다가오면 다양한 용품들을 마켓에서 팔고, 당일인 10월 31일은 갖가지 축제를 펼쳐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2000년 이전에는 영어 유치원이나 영어학원에서 원어민 교사들이 주축이 되어 조촐하게 열리던 놀이(?)였고, 이태원 등에서 외국인들이 모여 소규모로 치러지던 축제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축제가 있다는 것 자체를 몰랐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영국에서는 핼러윈 데이 밤에 아이들이 귀신 복장과 해괴한 탈을 쓰고 집집마다 방문하면, 집주인은 과일이나 초콜릿, 과자를 건네주는 풍습이 있었다. 이것을 알리 없는 나는 초인종 소리에 엉겁결에 현관문을 열었다가 기절초풍하는 줄 알았다. 공포감을 극대화한 해괴한 탈을 쓰고 검은 망토를 입은 세 사람(세 아이)이 현관 앞에 저승사자처럼 버티고 서있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두 딸은 학교에서 핼러윈 행사를 준비하며 사전에 알았기에 나와 같은 충격을 비켜갈 수 있었다. 


11월 5일 밤이었다. 갑자기 가까운 곳에서 총성이 울렸다. 한 번으로 끝이 날 줄 알았던 총성은 두 번이나 더 들려왔다. 이게 도대체 무슨 총성일까? 가까운 어느 집에 강도가 침입했다가 가족들이 달려들자 발사한 건 아닐까? 오금이 저리고 몸이 오그라들었다. 

그런데 총성은 멎은 게 아니라 연속적으로 가까이에서 멀리서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필시 이건 예삿일이 아니었다. 전쟁이 난 게 틀림없었다. 

“아빠 뭐 해? 이리 와 저것 좀 봐!” 작은딸의 목소리였다.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한 들뜬 목소리였다. 나는 아내와 두 딸이 있는 방으로 건너갔다. 그들은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하늘을 바라보며 우아- 우아- 탄성을 토해내고 있었다. 창가로 다가서 밤하늘에 시선을 주었다. 깊은 바닷속같이 어두운 하늘에는 무수한 꽃들이 피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불꽃놀이였다. 본 파이어 나이트(Bonfire Night)였다. 


10월부터 기온이 떨어지고 비가 자주 내리기 시작하더니, 11월이 되면서는 점점 더 심해졌다바람도 한껏 사나워져 나뭇잎을 죄다 떨어뜨려 바닥에 쌓아 놓고그것도 성에 차지 안은지 물먹은 낙엽을 이리저리 몰고 다니기도 했다

주말에 시내에 외출을 하면 주로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워터 스톤(Waterstones: 기업형 대형 서점)에 가서 읽고 싶은 책을 골라 서점 안의 카페에서 독서를 하기도 했다

멀티 시네마관인 오데온(ODEON)에서 영화를 보기도 했다. 우리에게 영화는 단순히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영어 공부를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자막 없이 상영되기 때문에 한 문장이라도 이해하려고 귀를 쫑긋 세워야만 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관은 암흑 도서관이었다.  


12월이 되면 삭막하던 런던은 화려한 꽃들로 다른 세상을 만든다.

쇼디치, 코벤트 가든, 뱅크지역, 템스강변, 버러우마켓.....  어디를 가도 거대한 크리스마스 장식물이 설치되어 황홀하게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개인 주택에 사는 사람들도 경쟁적으로 정원과 실내에 크리스마스 장식물을 설치했다. 런던은 축제의 장으로 꾸며 놓은 거대한 무대 같았다.


우리 가족도 크리스마스 장식을 했다. 현관문 앞에 리스(Wreath; 꽃 화환)를 내걸고, 거실에 트리를 세우고 예쁜 장식들을 주렁주렁 매달았다. 집 앞쪽에 있는 창문마다 에는 색전구가 매달린 줄을 촘촘한 간격으로 늘어뜨려 다양한 색들이 반짝이게 했다. 우리 가족과 모든 사람들의 Happy Merry Christmas를 염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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