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한 분이 이혼을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내로부터 이혼을 당했다.
지인의 아내는 오래전부터 이혼을 생각해 왔으나, 자식들이 결혼을 할 때 어미 없는 편부의 자식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 싫어 참고 살아오다, 모두 결혼을 마친 후에 실행에 옮긴 것이다.
지인은 아내의 결정을 돌리려 무던히 애썼지만, 한번 돌아선 마음은 깨어진 유리처럼 복원이 불가능한 일이었다.
5-60대 이혼이 급증하고 있다. 최소 20년 이상 살아온 부부들의 이른바 황혼이혼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1990년에는 전체 이혼건수의 5.1%에 불과했던 황혼이혼율이 2000년에는 14.2%로 늘어났고, 꾸준히 증가하여 2021년에는 38.7%를 기록했다. 이혼한 부부 10쌍 중 거의 4쌍이 황혼이혼이라는 얘기다.
작년(2022)에는 소폭 감소하였다지만, 코로나의 영향으로 보인다.
이 중에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노부부가 배우자의 사망 이후 재산을 물려받을 때 내야 하는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서, 혹은 다주택을 보유한 이들이 중과세를 피하기 위해 위장 이혼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이혼 비율이 너무나 높다.
황혼이혼이 증가하는 이유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었고, 고령화로 기대수명이 늘어나며 남은 여생을 독립하여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욕구가 커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에는 아내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것을 염려하여 이혼을 엄두도 내지 못했었는데, 91년 민법 개정과 함께 도입된 재산분할로 절반의 재산을 인정하는 판결이 계속 늘고 있는 것도 황혼이혼을 부채질하고 있는 원인 중에 하나이다.
이혼을 개인의 선택으로 여기는 자연스러운 사회분위기와, 남보기에 창피하다며 부모의 이혼을 적극 말리던 자녀들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크게 달라져 서로 불편한 관계로 살지 말고 자신의 인생을 찾으라고 지지하는 것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랜 세월을 거울처럼 마주 보고 살아온 부부가 갈라서는 이유는 다양하다.
상습적인 폭력, 배우자의 불륜, 도박, 지나친 음주, 알코올중독, 성격이나 취향이 다른 경우, 사사건건 다툼, 이해와 존중의 결핍 같은 이유가 있지만, 가부장적인 사고방식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혼을 당한 지인은 매사에 신중하고 일처리에도 탁월한 능력을 있어 직장에서 존경받는 상사였다. 거친 언어나 폭력적인 행동과는 거리가 먼 유순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술을 지나치게 마시지도 않았고, 여성편력도 없었다.
모든 면에서 나무랄 데 없어 보이는 지인에게 한 가지 결점은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괘종시계의 추처럼 오차 없이 직장과 집 사이만 오가며 평생을 일에만 파묻혀 살아왔고, 동료들과 어울리지도 않았던 지인에게 정년퇴직은 행동반경을 집으로 제한시켜 놓은 결과를 가져왔다.
지인은 거실의 소파를 장악하고 TV나 신문을 보며 시시콜콜한 것까지 아내에게 간섭을 했을 것이다. 주방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라면 한번 끓여 본 적이 없는 지인은 하루 세끼 음식을 준비하여 받칠 것을 요구했을 것이다.
게다가 잔심부름은 얼마나 심했겠는가? 물 좀 갖다 달라. 술상 준비해라. 입이 출출하니 간식 좀 내와라......
아내는 남편이 직장 생활을 할 때와는 달리 퇴직 후에는 자기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갖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남편과의 하루하루의 생활은 누군가가 두 손으로 목을 조이는 것처럼 숨이 막힐 것 같았을 것이다.
아내는 친구들과 만나 브런치 카페에서 우아하게 식사를 하며 정담을 나누고 싶고, 취미활동을 하며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보고 싶고, 맘에 맞는 친구들과 훌쩍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 새로운 공기를 온몸으로 부딪쳐보고 싶었을 것이다. 가끔은 창 넓은 카페에 앉아 커피 향을 음미하며 혼자 조용히 사색하며 휴식을 취하는 시간도 가져보고 싶었을 것이다.
이렇게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은데, 바닥에 달싹 붙어 비로 쓸어도 움직이지 않는 물먹은 낙엽처럼 허구한 날 소파에서 떨어질 줄 모르는 남편이 얼마나 눈에 가시였을까?
이런 남편과 남은 여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까마득한 낭떠러지에서 외줄에 매달려 있는 것보다 더 참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아내는 남편에게 더 이상 종노릇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지옥 같아, 지금부터라도 자신을 위한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단다.
요즘은 중. 장년층 뿐만 아니라 고령의 남성들도 가정적으로 변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족의 건강을 챙기고 아내의 노고를 덜어주기 위하여 요리학원에서 다양한 레시피를 배워와, 집에서 음식을 하는 남성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설거지, 빨래, 청소는 물론 자질구레한 집안일까지 앞장서서 한다.
중년층에서는 좋은 아버지 모임에 나가 자녀의 교육문제, 진로 문제를 위하여 서로 정보교환을 하기도 한다.
이런 추세다 보니 아내의 파워가 막강해지고, 우스개 소리들이 봇물을 이룬다.
나이가 들면 남자들은 이사를 할 때, 아내가 떼놓고 갈지도 모르니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있어야 한다. 50대 남성들은 아내가 외출할 때, 어디 가느냐 묻지 말 것이며, 60대엔 외출하는 아내를 바라보지도 말아야 하며, 70대엔 눈을 감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이혼 사유가 된다. 등등....
지인은 썰렁한 집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다. 가정일이란 오로지 아내의 몫으로 간주하고 손끝 한번 대보지 않았던 그에게 모든 살림을 혼자 도맡아 해결해야 한다는 게 얼마나 성가시고 힘겨운 일일까?
외로움은 또 얼마나 클까?
나이가 들면 아내는 친구가 된다는데, 아내와 친구를 한꺼번에 잃어버렸으니 빈자리가 얼마나 크게 느껴질까? 마음에 커다란 구멍 하나가 뚫리고 계속 찬바람이 몰아치는 것 같지는 않을까?
지인은 지금 어떤 심정일까?
변화하지 않고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아왔던 지난날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지는 않을까?